[스포주의] 약사의 혼잣말 9권 리뷰 -사랑을 위해서 모든걸 포기 할 수 있나요?-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긴 글 주의
처음엔 그저 따분할 일상을 벗어나게 해줄 새로운 장난감으로 여겨 심술을 좀 부려봤다. 얼굴엔 주근깨 투성이고 피죽도 못 먹었는지 빼빼 마른 몸으로 후궁을 쏘다니고(일이 힘든데 잘도 견딘다는 의미),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 자신의 미모와 권력에 반해서 어프로치를 해오는데 저 궁녀는 자신을 소 닭 보듯이 하니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와중에 상급 비(妃)가 낳은 동궁(왕자)이 병으로 죽고 그 상급 비마저 병을 얻었는데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런데 저 궁녀가 대수롭지 않게 해결해버리니 호기심이 충만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쿡쿡 찔러봤다. 돌아온 반응이 재미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과 히로인 '진시'와 '미오마오'의 이야기다. 진시는 후궁 전체를 관할하는 책임자고, 마오마오는 노예로 붙잡혀 황궁에 팔려와 2년을 의무복무해야 되는 궁녀다. 아니 이젠 '였다'라고 해야겠다.
여기서 사족을 좀 쓰자면, 마오마오가 노예로 팔려 왔을 때 그녀의 친아빠가 몰랐길 망정이지 알았다면 내란이 일어나고도 남지 않았나 싶다. 마오마오의 친아빠는 나라의 군사(그러니까 대충 국방 장관을 보좌하는 참모? 그것도 황제의 신임을 얻고 있다)다. 권력은 없지만 군부를 쥐고 있어서 황제도 어찌하지 못하는 게 그녀의 아빠다. 다만 마오마오는 엄마와 어린 자신을 버린(바림 받았다고 오해 중) 아빠를 죽도록 싫어한다. 그러니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듯 마오마오의 집안은 나름대로 잘 나가는 상류층인 반면에 마오마오는 자신을 길러준 양아버지(친아빠의 숙부)과 함께 창관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움막에서 사는 조금은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은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은 진시의 배려로 부녀는 황궁에서 살아가고 있다.
마오마오는 벌써 20세가 되었다.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 마오마오는 궁녀로써 2년 의무복무가 끝이나 창관으로 다시 돌아갔으나 진시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이번엔 의국(병원)의 관녀(간호사 보조)로 황궁에 입궁 시켜버렸다. 진시로서는 처음엔 호기심이었던 게 어느 날부터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그녀를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볼을 콕콕 찌르면 다들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는데 마오마오는 있는 짜증을 다 내며 질겁을 하니 이보다 신선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야 진시는 황제의 동생이라는, 황제 다음가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대놓고 인상을 쓴다는 건 내 목을 잘라달라는 거와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궁에 빠질 거 같은 사건을 가져와 던져 놓으면 약사 주제에 탐정처럼 해결해버리니 이보다 유능한 부하도 없다. 근데 문제는 마오마오 그녀 입장에서는 진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죽도록 귀찮다는 것이다.
도망가면 잡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라고 했던가. 보고 있으니 정이 들고, 정이 드니 손을 잡고 싶고, 마음에서 감정이 싹트는데 정작 상대는 도망가기만 하니 미치고 졸도할 일이다. 자신이 가진 권력 때문에 주변은 가식만 가득하고 솔직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마오마오는 허물없이 대해주는데다 가려운 곳(사건 해결)까지 긁어주니 마음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부딪히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된다. 근데 그녀는 일절 대답을 안 해주니 진시로서는 겉몸이 달아갈 수밖에 없다. 마오마오는 자신이 원하는 관심 분야 이외는 그저 귀찮을 뿐이다. 그녀 마오마오가 관심 있는 건, 단 하나다. 약과 독.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녀는 독을 자신의 몸에 주입해 실험할 정도다. 황궁에서는 툭하면 그녀에게 기미 상궁 역할을 맡긴다. 양아버지의 영향으로 약사의 길을 들어섰고 그게 좋아서 약에 환장하게 된, 조금은 어디가 아픈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진시는 이런 괴짜 같은 그녀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이번 이야기는 사랑을 쟁취하려면 모든 걸 포기할 때도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단 하나의 사랑을 쟁취하려고 진시는 특단의 조치를 하게 된다. 사실 진시는 자신이 명령만 하면 마오마오는 수청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까. 거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슬프게 했다고 친아빠가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렇담 대신에 자신이 모든 권력을 버리면 어떨까. 황제의 동생이라는 직함을 말이다. 진시가 선택한 방법은 황족을 버리고, 황후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불에 달궈진 낙인을 스스로 몸에 찍어 버린다. 황제의 동생이라는 간판으로 결혼하게 되면 부인은 황후와 정치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사실 마오마오는 황제, 황후, 상급 비등 황궁 실세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진시는 이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황후의 사랑을 독차지 중인 마오마오가 대립은 안 하겠지만 정치적으로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만큼 진시가 얼마만큼 마오마오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다.
이제 상황은 역전되어 마오마오가 미치고 졸도할 일이 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자신 때문에 진시가 황족이라는 지위를 버렸고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스스로 낙인을 몸에 찍어 버렸으니 그의 인생은 끝장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오마오는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는다. 그것도 황제와 황후가 보는 자리에서 마오마오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겠다는 선언하고 일을 저질렀으니 도망도 못 간다. 결국 진시의 멱살까지 잡는다. 이제 진시가 낙인을 찍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주변에서 엄청난 소란이 일어날 테니 공공연하게 타인(궁녀나 시녀)에게 몸을 보여줄 수도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마오마오만이 그를 보살필 수 있게 되어서 마오마오는 완전히 코가 꿰인 꼴이 되어 버린다. 사람이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올가미를 깔아놓고 도망갈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일을 저지르니 마오마오가 그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이제 도망가고 싶어도 못 간다. 진시는 사랑을 쟁취했을까?
그렇담 이제 맺어지는 일만 남았나? 그렇진 않다. 9권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이제야 겨우 마음을 부딪혔는데 이제 와서 일사천리로 진행될 리가 있나. 마오마오는 아직도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하지만 조금은 진시의 마음을 깨닫게 되고, 거기에 동하는 모습도 보이면서 앞으로 진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녀의 마음에 가속도가 붙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공략법은 나와 있다. 하악질 하던 고양이에게 츄르 먹여주면 얌전해지듯 희귀 약재료만 쥐여주면 마오마오도 얌전해진다. 황궁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대파란이 일어났는데, 진시를 치료하며 방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약재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에서 그녀의 괴짜 같은 일편단심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마오마오는 목이 달아나도 몇십 번은 달아났을 일이 건만, 평소에 이미지 관리는 현실이나 픽션이나 매우 중요한 게 아닐까도 싶은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마오마오도 진시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앞으로 조그만 더...
그 외 자잘한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진시가 그 꼴(낙인 찍기)이 된 후 외과적으로 치료 기술(낙인 치료)이 필요하다고 여긴 마오마오가 외과 의술을 배우려 하나 남존여비인 세상에서 여자가 의관(의사)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약간은 보수적인 이야기도 들어 있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남자도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려는 모습에서 그녀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오마오는 진시가 싫지만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책임을 지려 한다. 이런 부분에서 가정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다. 양아버지는 상냥하면서도 엄격하게 마오마오를 됨됨이 있는 사람으로 키워냈다. 그런데 이제 진시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서 한시름 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 생긴다. 진시가 그 꼴이 된 걸 모르는 주변에서 진시에게 장가를 들라며 유력자의 여식을 입궁 시키려 하면서 사태는 이상하게 흘러간다. 둘의 사이를 더욱 단단히 하려는 복선일까. 게다가 서쪽에서 불온한 움직임도 보인다. 또다시 진시가 서쪽으로 시찰을 떠나게 되면서 둘의 이야기는 잠시 미뤄지게 된다.
맺으며: 필자는 웬만해서는 추천하지 않는데 이 작품은 필자가 추천하는 몇 안 되는 추천작이다. 리뷰는 진시와 마오마오 사이의 러브러브 한 이야기를 그려놨지만 이건 결과론일 뿐이다. 그 과정, 가령 진시는 들이대고 마오마오는 욕하는 식이 매우 흥미진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마오마오는 진시를 소 닭 보듯이 하고, 진시는 약재를 그녀 앞에 살랑살랑 흔들면 거기에 낚여서 마오마오는 홀랑 넘어간다던지. 그녀의 주변 이야기도 흥미롭고, 그녀의 친아빠의 괴짜 같은 행동으로 인해 마오마오가 질려 하는 모습 등도 유쾌하다. 그 아빠의 그 딸이라고 딸도 괴짜 같은 모습을 보이는 장면들은 몰입도를 높여 준다. 이런 장면들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한다. 이런 요소에 미스터리한 사건을 가미해서 진시와 마오마오 사이에 암운이 걸리게 하는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이 좋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황후의 친가 쪽 가족들이 뭔가 꿍꿍이를 펼치며 둘을 무슨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10권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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