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이세계 전이, 지뢰 포함 1권 리뷰 -함정에 빠진 아이들-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소미에서 이번에 발매한 신작입니다. 주된 내용은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사고로 몽땅 죽게 되고 사신(死神)을 만나 그의 배려(?)로 아이들은 이세계로 전이해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인데요. 여기까지 보면 여느 이세계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신에서 사신으로 바뀌었을 뿐, 그동안 학급이 통째로 전이하는 작품이 더러 있었고 이 작품도 궤를 같이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망설이긴 했습니다만. 시놉시스를 보면 '치트는 없지만 지뢰 스킬은 있는 이세계'라는 구절에서 흥미를 느껴 본 작품을 구매하게 되었군요. 솔직히 이제 치트 하면 식상하잖아요? 아무런 노력도 없이 능력을 손에 넣어 고생도 안 하고 살아가는 인생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그래도 뭐 필자는 로또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그동안 따돌림당하는 주인공이든, 사회 부적응자든 이세계에만 가면 치트를 얻고 근본 없이 강해지는 것에 식상한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이런 작품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리뷰 끝!
..라고 하고 싶지만 조금 더 노력해서 써볼게요. 이 작품의 특징을 들라면 일단 치트는 있지만 없습니다. 이 작품이 파격적인 게 이 부분이죠. 이세계하면 치트, 하렘, 미인(미남, 미녀)은 기본이 되는데 작가는 그게 식상했는지 아니면 그런 풍조를 비꼬려는지, 애들이 요구하는 가령 '스킬 강탈' 같은 치트 스킬 전부 들어주게 돼요. 이런 스킬은 사실 이세계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능력이죠. 이 작품에서는 그런 스킬을 요구하고 선택한 아이들을 과감 없이 탈락 시켜 버립니다(이게 함정). '있지만 없다'의 뜻은 여기에 있어요. 요컨대 이런 부분이 이 작품에서 지뢰가 되는 요소입니다. 노파심에서 쓰자면, 지뢰라고 해서 이 작품 자체가 지뢰라는 뜻은 아니고, 치트 스킬 = 지뢰라는 뜻이니 오해 없길 바라고요. 멋에 취하고, 노력도 안 하고, 편하게 살아 가려는, 남을 탐하고 해하려는 자에게는 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노력을 하라는 교훈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주인공 '나오'는 '하루카(히로인)'와 '토야'(이하 주인공 일행)와 함께 이세계로 전이합니다. 이들은 물속에 드리워진 낚싯바늘(치트 스킬)에 걸리지 않고 견실하게 무난한 스킬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그 스킬을 바탕으로 이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힘을 합쳐 노력을 하게 되죠. 모험가 등록을 하고, 약초를 채집하고, 열매를 따다가 팔아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여관을 잡고 장비를 장만하는 등 맨땅에 헤딩 수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실 치트 이세계물이나 하다못해 온라인이든 PC든 게임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캐릭터 성장물과는 꽤 벗어나는 이런 이야기에 질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약초를 뜯고, 멧돼지를 잡고,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는 게 재미없을 수도 있어요. 그걸 바탕으로 보존식 만든다고 열매를 말리고, 멧돼지를 회(?) 떠서 육포로 만드는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을 겁니다. 스킬과 스테이터스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요. 그럼에도 필자는 이 작품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는데요
우선 치트니 스킬이니 그런 것보다 주인공 일행이 살아가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모습이 참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돈을 벌지 않으면 노숙을 해야 하고, 사회 안전 보장(보험, 치안 등등)이 되지 않는 이세계에서 무사히 살아가기 위한 걱정도 해야 하는 현실 미가 매우 와닿는다고 할까요. 이런 이야기들은 여타 이세계물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부분이죠. 또한 현실적으로 이세계에 간다고 의식주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듯, 특히 여자의 경우 잘 곳과 의복은 현대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이세계라면 더욱 가혹하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방 얻을 돈이 없어서 주인공 일행(남자 둘, 히로인 하나)은 방 하나에 같이 묵는다던가, 그런 환경에서 사고(S로 시작하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부분을 제대로 인식 시켜서 그렇고 그런 환경을 차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꽤나 신선했군요. 그리고 음식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꼬치구이 등 여타 이세계물에서 등장하는 맛있는 음식은 이 작품에서는 없어요.
그럼 이쯤에서 이 작품의 장점과 단점을 열거해보겠습니다. 장점은 스킬을 받았지만 마구 성장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파워 인플레나 캐릭터간 능력 차이로 오는 괴리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게 좋습니다. 스킬을 바탕으로 주인공 일행은 살아가지만 이걸로 뭔가 마왕을 무찌른다 같은 이야기는 적어도 1권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어요. 드래곤 볼 계열을 싫어하는 분들이라면 딱 맞는 조건이죠. 이들의 당면한 과제는 이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버는데 있어요. 그러니 강한 몬스터와 싸우고 그 과정에서 치트가 발현되고, 마을에서는 모험가들과 트러블이 일어나는 클리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틀에 박힌 이야기를 배제하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보여주는 게 특징이자 장점입니다. 왠지 좀 응원하게 된다고 할까요. 주인공 일행은 사이도 좋고, 각자 맡은 역할에도 충실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범적인 모습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점으로는 역시나 스킬이 되겠습니다. 치트는 없다고 했지만, 이세계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스킬을 쓰는 주인공 일행은 치트 덩어리라 할 수 있어요. 물론 주인공 일행은 대놓고 사람들에게 밝히지는 않지만, 가령 어떤 열매는 아무나 채집 못해서 상당히 비싸게 팔려요. 근데 주인공 일행은 힘들이지 않고 채집해서 팔아대죠. 약초 구분도 스킬에 의존해서 양질의 약초로 많은 돈을 번다든가, 전생(지구)의 기억을 바탕으로 육포를 만들고 과일을 말리는 등등. 이세계 주민이라면 많은 노력을 해야 겨우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주인공 일행은 이세계에 온 지 며칠 만에 다 해버리거든요. 사실 필자는 한가지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치트가 없고, 스킬을 받았다곤 해도 현실적으로 이세계에서 살아가려는 이들을 보며, 보다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보여줄까 기대를 했었거든요. 가령 위생문제는 당장 우리네를 보더라도 20여 년 전만 해도 푸세식(재래식) 화장실을 쓰는 가정이 제법 많았고, 시골에는 지금도 정수한 수돗물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많아요.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세계라면 어떨까요. 당장 화장실 문제만 해도 큰일일 것입니다. 수돗물은 언감생심이고 하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을 리가 없고, 그로 인해 각종 오물이 스며드는데도 우물물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부분은 현실 미가 많이 떨어집니다. 사실 푸세식 화장실과 우물물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의 작가라면 모를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런 점이 아쉽죠. 이런 부분을 조사해서 집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그래서 작가는 스킬로 다 때웁니다. 떼를 없애고 더러움을 '정화'하는 스킬이 있고, 병에 안 걸리는 스킬이 있고, 회복 스킬도 있어요. 이걸로 퉁처버리니 잘 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더라고요. 결국 이런 게 치트지 뭐가 치트일까 싶죠. 그리고 그놈의 쌀, 된장, 간장은 좀 언급 안 하면 안 되나요. 이 작품의 작가는 좀 다른가 싶었는데 여지없이 이런 걸 언급해서 스스로 이세계물 클리셰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는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재와 환상의 그림갈처럼 인생 시궁창 같은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결국 여느 이세계물처럼 스킬로 생활을 개선하고, 채집하는 노력은 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이세계 주민은 못하는 돈벌이를 하는 등 중후반을 넘어서면 제법 벌이도 좋고 잘 살아가게 돼요. 근데 작가도 양심은 있었는지 스킬 수련에 애를 먹는다 같은 약간은 고생한다의 느낌을 심어주고는 있습니다만. 시행착오를 겪게 하는 것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 그런 시행착오를 겪든 뭐든 돈을 제법 벌게 되어서 스킬을 성장시키지 않아도 이제 주인공 일행은 걱정 없이 잘 살아가게 되었죠. 그리고 이제 여유가 생기니까 이세계물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 박스(시공간에 무한으로 넣을 수 있는, 도라에몽 주머니)도 언급되고 시작은 다른 라인에서 출발했는데 도착은 같은 라인으로 골인하는 마라톤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그래도 뭐 일러스트도 잘 나왔고, 그동안 이세계물에서 잘 볼 수 없는 부분도 보여주니까 나쁜 말만은 하지 못하겠군요.
맺으며: 이 작품은 그리 심각한 이야기도 없고, 머리 아픈 복선도 없고, 뭣보다 의미 불명의 하렘이 없다는 것에서 큰 점수를 줄만 합니다. 특정 신체를 부각 시켜 어필하여 눈살 찌푸리게 하는 것도 없어요. 그로 인한 근본 없는 호감도 맥스도 없어서 좋고요. 어째 단점으로 들리지만, 요컨대 이런 요소들을 넣어 날로 먹으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정신건강상 매우 좋다는 뜻입니다. 주인공 혼자 다 해 먹지도 않죠. 주인공 '나오, 토야, 그리고 매인 히로인 하루카' 이렇게 세명이서 각자 역할을 맡아 생활하는 모습이 정겹다고 할까요. 특히 하루카는 누나 행세하며 챙겨주려는 장면들은 귀엽기까지 합니다. 아무튼 스킬과 능력으로 보면 여타 이세계물과 다를 바 없지만, 생활에 있어서 자칫 까딱 잘못하면 시궁창 직행이라는 현실미를 보여주고 있어서 이런 부분으로 접근하면 이 작품은 나름대로 수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여자의 경우 매/춘까지 해야 한다는 언급도 있어서 더욱 현실미를 띄죠.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7점. 2권부터는 하루카의 친구 찾기 등 이들의 세계가 조금 확장되지 싶은데, 하필이면 소미에서 발매가 되었을까 싶더군요. NT노벨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사실 잘 팔리지 않으면 후속권을 내줄 출판사는 많지 않습니다만. 부디 잘 팔려서 2권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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