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강한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설 주의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죠. 주인공도 이제 어느 정도 이세계에 적응해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맨땅에 헤딩하듯 일어서는 인생 역전극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런 가볍게 보는 소설에서 문학적이기보다 흥미 위주가 더 잘 팔리니 어쩔 수는 없겠죠. 주인공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500년이 흐른 현재, 고렙 유저들이 로그아웃한 탓에 마치 외국 자본 빠져나간 개발도상국 마냥 낙후된 세계가 되어버린 이세계에서 주인공의 능력은 한마디로 개사기급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엔 게임하던 감각으로 이세계 사람들을 대했다 상식에서 괴리감이 상당하여 고생은 하였지만 이제 말 조심도 제법 하게 되었군요. 많은 사람과 만나 인연(주로 히로인들)을 맺었고, 플래그도 다수 세웠습니다. 역시 인싸는 어딜 가나 환영받는 법일까요. 그래도 작가는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남자 캐릭터를 등장시켜 주인공과 친구 하도록 유도해주는군요. 이번 2권에서 둘은 쿵작이 잘 맞아서 앞으로도 좋은 친구가 될 듯한 분위기입니다.

 

숲에 갔더니  사당이 있고, 안에 새끼 여우가 있군요. 다 죽어가는 새끼 여우를 주워다 보살폈더니 길고양이에게 간택당한 집사마냥, 새끼 여우는 집사가 좋다고 달라붙습니다. 알고 봤더니 새끼 여우는 엘레멘트 테일이라는 최상위 몬스터라는, 성체는 주인공도 이길까 말까 할 정도로 매우 강한 마물로서 굴 삶아 먹다가 진주 발견한 행운을 주인공은 얻어 버립니다. 주인공 행운 스탯치 낮다고 했던 거 같은데? 어쨌거나 테이밍 형식으로 계약을 맺고, 이름도 붙여주고 둘이서 아주 콩 볶아 먹듯이 행복한 나날(약속된 전개마냥 새끼 여우는 암컷 모습)... 이때 필요한 짤이 잡았다 요놈 포돌이 사진, 새끼 여우를 머리에 얹고서 도시로 돌아온 주인공은 새끼 여우의 위기를 알렸던 고아원의 꼬마 히로인을 찾아갑니다. 이번 이야기는 게임에서 퀘스트의 시작을 알리듯, 꼬마 히로인에게서 시작된 고아원 지키기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1권에서 메인 히로인 '슈니'가 나온다고 필자가 언급했던 거 같은데, 미안하게도 꼬마 히로인과 새끼 여우에게 밀려 버렸습니다. 안습.

 

일러스트도 그럭저럭 잘 뽑혀서 꼬마 히로인과 새끼 여우를 보고 있으면 아주 귀여워 죽습니다. 이러니까 덕후는 밥맛이라고 하겠지만 뭐 어떠리오. 아무튼 간에 새끼 여우가 왜 숲에서 갇혀 있어야 했는지, 그리고 고아원을 노리는 돼지 녀석(작중에 돼지 녀석이라고 언급 됨)을 막기 위해, 차기 고아원 원장(히로인)에게 필요한 스킬을 가르쳐 주기 위해 책 표지에도 나와 있는 망령 평원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힐! 힐! 힐! 아픈 좀비를 낫게 하기 위해 힐! 힐! 힐! 온라인 게임을 해본 분들이라면 이게 뭔 뜻인지 아시겠죠. 히로인(차기 고아원 원장)은 광렙을 표로, 눈은 뱅글뱅글, 속은 우웩! 자고로 물량전을 이길 장사는 없다 했는데 이길 장사는 있습니다. 주인공 리밋 해제! 이 작품은 안 그럴 거 같았는데 주인공 모습이 중2병 같아 멋있군요. 근데 작가가 이 싸움에 너무 몰입했나 약간 분량 조절에 실패한 듯한, 얘들 왜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지 잊을뻔한 전개 끝에 목적보다 수단이 앞서버린 조금은 황망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집니다.

 

결과적으로 목적은 달성하지만 새끼 여우가 왜 숲에 갇혀 있었는지는 밝히지 못한, 돼지 녀석을 혼내주는 카타르시스도 바랐는데 이건 다음에 나오려나요. 그것보다 새끼 여우와 꼬마 히로인에게 밀려버렸던 메인 히로인 '슈니'가 드디어 등장합니다. 슈니는 500년 전, 주인공이 사라진 이후에도 줄곧 '달의 사당(주인공이 운영하는 상점)'을 지키며 이제나저제나 주인공이 오기만을 기다린 서포트 캐릭터(NPC)였죠. 가끔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NPC에게도 감정이 생기면 어떨까 싶을 때가 있는데 '슈니'가 딱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세계는 게임 세계관임과 동시에 NPC가 감정을 가지고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은 오타쿠들의 바람이랄지 희망이랄지 이상향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자신의 주인과 감동의 재회, 500년간 줄곧 기다렸던 주인공을 드디어 만났을 때, 정형화된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감정이 생기고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텍스트의 안타까움은 시각적인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군요.

 

맺으며: 꼬마 히로인 '미리'가 치고 나오는 게 심상찮습니다. 이러다 메인 히로인 자리를 꿰차지 않을까 싶을 정도군요. 이제 9살이라고 하는데 잡았다 요놈, 철컹 소리가 들리는 듯한. 아무튼 이 작품의 흥미 포인트는 틀에 박힌 스케줄이 아니라 어디 마실 나가듯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것이군요. 자세히 설명은 힘든데, 오늘을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각박한 삶보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타인을 도와주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현실적인 분위기로 대화를 하는 장면 장면들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뭐 꼬아서 말해보면 주인공이 먼치킨이니까 가능한 것이겠죠. 이미 '달의 사당(주인공이 운영하는 상점)'은 국내외적으로 인지도가 상당히 높고, 메인 히로인 슈니는 각 나라에서 서로 모셔갈려고 하는 인재(人材)인데다 주인공 자체적으로도 돈이 엄청나게 많이 보유하고 있으니 이걸 두고 여유 부린다고 하는 걸까요. 여유가 있으니까 주변을 돌아볼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라도 꾸밈없는 모습들이라서 더 와닿는 거 같습니다.

 

사실 슈니를 자주 언급한 이유는 그녀가 나오면서 주인공의 대단함으로 모두가 무릎 꿇고 우러러보는 시추에이션이 나오면 어쩌나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클리셰 중에 클리셰고, 어떻게 보면 카타르시스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죠. 주인공이 이세계에 처음 왔을 때 기사단들에게 괄시를 당했던 부분이 있어요. 근데 주인공이 운영하는 '달의 사당'과 주인공의 부하인 '슈니'가 가진 파워는 이세계에서 그 누구도 간섭하지 못할 성역 같은 걸로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주인공이 '달의 사당'과 '슈니'의 주인으로 밝혀진다면? 이런 부분에서 작가가 독자들이 바라는 게 뭔지 잘 아는 듯하다고 할까요. 주인공을 싸구려 같지 않은 대단함을 히로인으로부터 찾는 능력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일단 히로인을 누구나 자신의 수하로 들이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으로 키워놓고, 그 히로인의 주인이 주인공이라는 걸 들이밀 때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하시라 같은. 이세계물이 넘쳐나고 있는 요즘에야 식상한 설정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그런 설정에서 묘한 두근거림이 있다고 할까요. 물론 주인공도 그에 따른 능력도 출중해서 히로인을 욕되게 하지 않는, 이런 점들이 흥미로워서 몰입도를 높여주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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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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