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만약 당신이 책을 출판한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흥행의 요소를 뭘로 해야 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가장 저렴하게 먹히는 것은 하렘의 도입이 있겠고, 그 연장선으로 의미 없는 판치라가 있다. 그다음으로는 내가 못하는 것을 주인공이 대신해주는 이세계 치트물이 있고, 하렘과 이세계 치트까지 합쳐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탄생한다. 사실 이런 설정들 때문에 라노벨이 욕먹는 게 아닐까도 싶은데 솔직히 필자 알 바 아니다. 아무튼 저런 장르 외에 다른 장르를 꼽으라면 이 작품처럼 '기믹'을 이용한 트릭이라 하겠다. 하렘과 의미 없는 판치라를 과감히 버리고 독자들의 몰입도를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독자들 스스로 답을 도출할 수 있게끔 재료를 투하하고 작가는 답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독자들은 작가가 흘린 복선이나 사건의 개요를 접하고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근데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적당히'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적당히'를 모른다. 이미 3권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페이지 건너 기믹과 복선과 사건을 투하한다. 거기에 해답 편을 공개하지 않아 독자들을 더욱 발광하게 만든다. 일례로 '11년 전 그 사건'을 들 수가 있다. 이 사건은 작품의 여주인공인 '레티시아'가 깃든 '도로셀'의 과거에 있었던 일로 이 사건으로 인해 도로셀의 현재 입지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레티시아가 전생을 거쳐 현재 공작가 영애 '도로셀'의 몸에 깃들었고, 도로셀의 기억을 레티시아는 이어받지 못했다. 그래서 레티시아는 왜 학대를 받는지,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 받는지 이해를 못한다. 비단 여주인공만이 아니라 읽는 독자들도 그녀가 왜 학대를 받는지 모른다. 이점이 매우 답답하게 흘러가게 되는데, 작가는 그녀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진행하면서 '기믹'을 엄청나게 심어 놓게 된다. 그래놓고 이런 기믹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라고 한다. 이건 코난이 와도 못 풀 거 같은데 말이다.

 

처음엔 그저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처럼 가족에게 학대받는 소녀가 그 시련을 딛고 일어나 자신을 학대했던 가족을 벌하는 권선징악형인가 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녀의 전생은 우연이 아니었고, 그녀를 이용해 무언갈하려는 '백의 결사'라는 중2병식 집단에 의한 거대한 그림에 불과했다는 복선이 투하된다. 이 무슨 백합 같은 분위기의 제목을 뽑아놓고 내용은 음모와 스릴러라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 여기까지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독자들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쓰이는 설정이라고 치부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독자들의 머리가 터지도록 했던 기믹과 복선과 사건의 결말은 매우 단순하다는데 있다. 작가는 4권을 1부 마지막으로 잡고 그동안 여주인공이 왜 학대를 받아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여주인공은 도로셀의 기억을 찾으면서 11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1천 년 전에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게 우연일까? 이것도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복선이 된다.

 

결국 백의 결사라는 흑막이 그녀의 가족과 주변을 이용해 도로셀의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그 사건을 통해 자신(여주인공)의 존재가 무엇인지 깨달아라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담 이 백의 결사는 뭐 하는 놈들인가라는 의문이 떠오르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작가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저 여주인공을 노리며 그녀의 어떤 능력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굳이 1천 년 전의 사건과 겹치게 했다는 것은 그때 그녀의 곁에 있었던 누군가가 그녀를 잊지 못해 줄곧 그녀를 찾았고, 마치 스토커처럼 그녀에게 집착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도서관에서 책에 끼여 있던 '줄곧 너를 기다렸어' 같은 구절도 있는 걸 보면 1천 년 전 그녀의 남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남편은 지구에서 이세계로 건너간 전생자), 그녀가 마술을 배울 때 같은 스승에게서 배우던 어떤 소년이 아닐까도 싶은데 지금은 기믹을 너무 많이 심어놔서 쉽게 답이 도출되지 않는다.

 

결국 4권까지 있었던 일들은 무엇이었나 하는 황망함이 남는다. 위에서 언급했던 기믹을 구체적 언급해보면, 상당한 분량을 소모해서 성녀와 성유물을 보여주며 마치 여주인공이 성녀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영지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성녀 전설도 있어서 결론을 추론해보면 1천 년 전부터 여주인공은 계속해서 전생을 되풀이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을 보살피는 등 성녀로서 이름을 날린 게 아닐까 하는 답이 도출된다. 백의 결사는 그런 그녀를 노리는 것이고. 그러나 이건 추론일 뿐 답은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기믹이고 현실인지 이제 분간하기도 힘들어진다. 아무튼 여주인공은 11년 전 사건을 조사하면서 백의 결사에 대해 알아가고 그들과 대치하는 형국이 되어 간다. 이번 4권에서는 11년 전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자신의 괴롭혔던 동생과의 화해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의 주변에서 암약했던 백의 결사와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을 알린다.

 

맺으며: 이번 4권은 여주인공이 왜 학대를 받아야만 했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보면 여주인공의 마음이 너무 여린 것에서 비롯된 주변의 시기와 질투의 산물이었고, 이 시기와 질투가 11년 전 사건과 합쳐지면서 그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게 되었다는, 가족이라는 게 가족을 지키지 않고 매도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라고 할까. 11년 전 사건은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들지만, 여주인공에게 있어서 그리고 백의 결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된다. 결국 그녀가 받았던 학대는 11년 전 사건으로 인해 기인되었고, 그 사건이 밝혀지면서 조금은 황망함이 남는 그런 이야기다. 그 사건을 여주인공은 기억하지 못했고, 그 기억을 찾기 위한 조사를 하면 할수록 마치 거대한 음모가 도사린 게 아닐까 하는 기믹과 복선을 마구 심어 놓는 통에 독자는 된통 속게 된다. 결론을 보면 그동안 심었던 기믹과 복선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데라는 마음 밖에 안 든다. 그리고 남은 건 백의 결사라는 흑막이다. 일본은 이런 흑막을 정말 좋아하는 듯하다. 보는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하기 그지없는데 5권부터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제 쉽게 추론하지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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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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