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주인공은 이세계에 왔을 때 분명 부모님의 발자취를 쫓는다고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부모님의 출신지이자 마족 점령지인 켈류네온을 탈환했긴 한데 겸사 겸사였나, 이젠 부모님은 안중에도 없다. 참고로 주인공 부모님은 이세계에서 지구로 전이했다는 특이한 설정이다. 아무튼 뭘 찾아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먹고 살아야 해 시작한 장사는 용케도 순항 중이다. 사실 그 바탕엔 유능한 부하들이 있고, 그 부하들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부도나서 길바닥에 나앉았을 것이다. 근데 장사보다 말도 안 되는 마력으로 모험가를 해도 충분히 먹고 살 텐데 뭐 하러 머리 아프게 장사는 해가지고, 하려면 평범하게 하던가 나름대로 차별이랍시고 듣도 보도 못한 제품들을 쏟아내니 온 동네 소문이 다 퍼지게 되고 당연히 호구 잡으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애(주인공)가 겉으로 보면 정말 멍청해 보이거든요. 사고관도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약간 꼰대 기질도 있어요. 상도덕을 지키지 않아 상업 길드에서 호되게 당하고, 이번에는 그리토니아 제국의 용사 '토모키'를 만나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가 꼰대 소리를 듣게 되죠.

 

아무튼 마족에 의한 변이체 소동이 끝나고 초토화된 학원도시 롯츠갈드의 부흥에 힘쓰는 이때, 리미아 왕국의 용사 '히비키'가 찾아온다. 찾아와서 상업 길드에 쳐들어가 대뜸 우리나라(리미아 왕국) 부흥에 필요하니  내놔라 하며 용사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리미아 왕국과 그리토니아 제국은 마족의 침공으로 도시가 많이 부서졌다. 특히 리미아 왕국 전역에서 '히비키'는 주인고이 아니었다면 목이 달아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한 상태였다(이때 히비키는 변장한 주인공을 못 알아보고 그냥 특촬 오타쿠 같은 놈이라고 여긴다). 히비키는 주인공의 2년 선배다. 그녀는 여신에 의해 이세계로 소환되었다. 주인공은 지구에 있을 때부터 그녀를 향한 뭔가 아련한 마음을 품고 있었나 본데, 정작 그녀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학생 A 그 이상은 아니다. 그녀는 상업 길드에서 뽕을 뽑고 나오다가 우연히 주인공과 마주친다. 자, 여기서부터 주인공의 미래가 정해지는 순간이다. 세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쿠즈노하 상점'의 대표가 주인공이라는 걸 알게 된 그녀는 여기서도 용사답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이야기는 마족의 전면적인 침공에 의해 정체되었던 각 나라에 본격적으로 분점 만들기에 나서는 주인공 일행을 그리고 있다. 그냥 시작의 도시 츠이게나 학원도시 롯츠갈드의 한구석에서 내 입에 풀칠할 정도로만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지. 뭐 그랬다면 이야기가 성립 안 되겠지만, 주변에서 자신(주인공)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보는지 주인공은 이해를 못하고 있다. 학원에서 맡은 학생들의 실력 향상이라는 업적, 변이체 소동에서 활약했던 엄청 강한 부하들을 보유하고 있고, 상점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으니 돈과 권력이라면 환장하는 위정자들의 눈이 싯뻘개지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여기서 그 정점이 주인공의 2년 선배 히비키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주인공을 그저 학생 A로 보는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자신의 목적(휴만 지키기)을 위해 주인공의 가치를 알자마자 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 대목에서 주인공을 하나의 인격체나 동등한 위치, 동향 사람이 아닌 그저 이용 대상일 뿐이라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연민이나 미안함은 일절 없다.

 

특히 주인공이 마족과 싸우다 같이 죽어 줬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그녀는 주인공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 문제는 불쌍하게도 주인공은 이런 그녀의 본심을 알아채지 못하고 헤벌쭉해서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다 까발려버린다는 거다. 주인공은 힘만 추구해서 성장했을 뿐, 내적인 성장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의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순수한? 하지만 현실을 보는 부하들이 그녀(히비키)를 견제하는데도 동향 사람이랍시고 그녀의 편에 서서 감싸는 모습은 나중에 등에 칼 맞았을 때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심 궁금해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계속해서 주인공의 단점을 열거하자면, 히비키를 대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남을 잘 의심하지 않는다. 부조리를 당하는데도 대갚음해주지 않는다. 가령 변이체 소동에서 주인공이 활약하여 공을 쌓게 되는데 학원장이 숟가락 얹는 것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던지. 변이체 소동에서 마족이 자신을 이용했고, 도시를 부숴버려서 재건에 뭐 빠지게 되었는데도 탓하기 보다 마족의 나라에 분점 내기를 희망한다.

 

얼핏 보면 사람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대갚음해주지 않는 모습에서 타인이 상처받는 걸 두려워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희한한 캐릭터랄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을 들라면 이런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웃는 얼굴로 부조리를 당해도 대응하지 않는다고 호구라며 얕잡아 보다가는 큰일 난다는걸, 주인공은 길드장 '루토'의 심부름으로 그리토니아 제국에 가게 된다. 그리토니아 제국에는 '토모키'라는(얘도 여신에 의해 이세계에 소환되었다), 지구에서 왕따 당한 경험에 입각하여 힘이 곧 진리라는 걸 깨달아버린, 토모에의 말을 빌리자면 힘에 취해 인생 막장의 길로 들어선 그런 느낌이란다. 자신 이외의 사람은 물건 취급이고 합리성을 따지면서 상대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말로가 주인공의 부하인 '토모에'에 대한 집착이다. 그녀를 빼앗기 위해 매료 스킬 수련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전에 토모에에게 매료 걸려다 비 오는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아 놓고 뜻을 굽히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이번에도 주인공에게 토모에 내놔라 했다가 그야말로 또다시 비 오는  먼지 나도록 맞는다. 

 

사실 주인공의 성격은 멍청이가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성이 무너지는 걸 두려워하는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이런 성격이 되어 버렸는지, 아마 지구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으로 타인이 상처받는 걸 극도로 꺼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모습에서 관계성이 무너질 바엔 저자세로 나가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일본 특유의 국민성이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가 계속 멍청이라고 언급은 했지만, 이번 11권에서는 나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보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참 피곤한 스타일이다. 이것도 일종의 소심함의 극치라서 호감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람에게도 건드리지 말아야 될 영역은 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이 영역은 가족이다. 가족은 현재의 부하들이다. 몇 권인지는 잊어버렸는데 아공에서 모험가에 의해 주민이 죽자 엄청나게 분노한 일이 있다. 그리토니아 제국의 용사 '토모키'는 흙 발로 이 영역을 침범하려 했다가 실컷 얻어맞게 된다. 즉, 주인공은 무감각한 인간 아닌, 기본적으로 타인의 상처엔 민감하지만 내 영역을 지킬 때는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며 오기만 해봐라 확 물어버릴 테다 하는 개와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주인공은 주변이 보내오는 편치 않은 감정을 먹으며 조금식이지만 내면 성장을 이뤄간다. 그 성장이 더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근데 사실 주인공이 성장 안 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왜냐면, 이세계에서 주인공의 부하들 토모에, 미오, 시키, 이들을 당해낼 자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총의 안전장치처럼 걸쇠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이세계는 이들에 의해 멸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부하들은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는 주인공을 곁에서 봐야 하니 이보다 짜증 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라도 정신 차리고 있자고 하는 부분은 코믹이 따로 없다. 그리고 이들 말고도 주인공 본거지인 아공에는 용사급에 버금가는 인력들이 바글바글 거린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이용해 먹기 좋은 먹이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주인공의 역린(가령 토모키처럼 토모에에 집착한다던지)을 건드리면 그 순간 멸망 당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들에서 이 작품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 서로가 주인공을 자기 진영에 끌어들이고 이용하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의 감정 포인트가 어디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흥미가 솟는다고 할까.

 

여담이지만, 주인공의 2년 선배 히비키는 휴만(지구로 치면 인간)을 지키기 위해 이용 가능한 건 뭐든지 이용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리미아 왕국의 위정자들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직접 나서서 휴만을 지키기 위해 차곡차곡 준비해나가지만 녹록지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용사답게 오로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주인공까지 무덤덤하게 이용하려 하고 마족과 싸우다 죽길 바라는 정신이 어딘가 망가진듯한 모습을 보여 차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굉장히 기대된다고 할까. 주인공은 히비키를 동향 사람이자 연심을 품은 사람으로 대하면서 그녀를 감싸기만 하니, 나중에 적이 되어 만났을 때 볼만해지겠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성격상 적으로 만난다고 해도 주인공은 싸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토니아 제국의 '토모키'는 재활용되지 않는 불연성 쓰레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지구에서도 그랬고, 이세계에서도 믿을 놈 없어서 매료 스킬로 내 쪽 사람을 만들 정도로 사람을 믿지 못하는 습성을 보여줘서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한 인물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마왕을 만나는 등 이전에는 간간이 흘러나왔던 인물들이 11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맺으며: 이전부터 느껴오는 거지만, 누구보다 힘(능력)은 있는데 정치적으로는 말 빨, 그러니까 상대와 대화가 성립 되지 않는 주인공이 참 답답한 흐름이다. 상대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어어~ 하며 밀릴 뿐이다. 누군가가 부조리한 요구를 하는데도 되받아치지를 않는다. 경험 부족일 수는 있으나 초반이라면 이해가 가는데 벌써 11권째다. 사실 부하들이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무리들을 견제해주며 저놈 나쁜 놈이라고, 주인공 알게 모르게 접근을 막아주고 있으니까 길바닥에 나앉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이 말은 이런 부하들 덕분에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걸까 하는 측면도 있다. 거기에 걸어오는 싸움에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그냥 찍어 눌러 버릴 뿐이다. 그래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 상황 판단이나 시류를 읽지 못하는 게 아닐까도 싶다. 요컨대 작가가 주인공을 멍청이로 만들고 있다고 할까.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늘 비슷한 처지에 놓이니 이걸 어째야... 아무튼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를 액기스로 보여주는 11권이다. 특히 그리토니아 제국의 왕녀 '릴리'가 용사 토모키를 이용하여 뭔가를 저지르려는 광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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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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