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재와 환상의 그림갈 14권 +(플러스) 리뷰 -인생을 살면서 최선의 선택이란-
매우 강한 스포일러가 들어 있으니 주의 하세요.
어디서 흘러 들어왔는지조차 잊어먹고, 떨어진 대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도 모를 때. 나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하고 진지하게 고찰하면 이런 작품이 태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누가 도와주길 바라고,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길 바라는 새끼 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끈질긴 생명력으로 잎을 피우는 잡초처럼 밟혀도 밝혀도, 시궁창을 기어도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인가. 이 작품은 사람의 생명력이란 덧없이 연약하면서도 강하다는 걸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어리바리한 사람들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을 먹어도 새끼 새처럼 올망졸망 따라오는 사람들을 내치지 못해 결국 어미새가 새끼 새를 길러내듯 길잡이 역할을 했던 사람의 최후. 세상은 착한 사람부터, 용기 있는 사람부터 죽어 나간다고 하죠.
이번 +(플러스)의 이야기는 외전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세계로 전이하면서 반드시 인간으로 전이한다는 개념을 비꼬듯 인간 외의 생물, 가령 판타지에서 흔히 등장하는 잡몹 고블린으로 전이(혹은 환생)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고블린으로 전이한 주인공 일행이 정석적으로 전이한 주인공 일행(1)과 마주하게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라고 해도 그렇게 진지한 고찰은 없고, 고블린으로 전이해도 인간으로 전이해도 배 굶는 건 똑같다는 개그가 들어가 있을 뿐이군요. 오히려 고블린 일 때가 더 처절해서 풀을 뜯어먹고 날 버섯을 먹고 그러다 아무거나 주워 먹고 배탈 나는 전형적인 거지 팔자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서글플 따름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편은 시호루와 유메가 각각 직업 길드에 들어가서 의용병으로써의 기술과 스킬을 배워가는 7일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시호루는 자칭 마법사로써 세계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나잇살 제대로 먹은 영감에게 매번 성희롱(추행)을 당하면서도 도망가기 보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런 남자는 조심해야 된다는 진리를 알아 가죠. 아마 전세에서 시호루는 왕따 당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은 게 그 나이대의 전형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뚱뚱하고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의 기분보다 남의 눈치를 살피는 등 있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보다는 유감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은 참 안타깝게 합니다. 이 성격은 좀처럼 고쳐지지가 않아서 하루히로 파티가 어두침침해지게 만드는데 일부분을 일조함에도 본인은 자각을 못하고 있으니.
유메는 사차원 그 이상을 보여줘서 온통 잿빛투성이뿐인 이 작품에서 한줄기의 빛과도 같게 합니다. 귀가 어두운지 아니면 마음이 항상 4차원 속에 살아서 그런지 사람 말을 사차원적으로 풀이하는 통에 듣는 사람을 황당케 하죠. 길드에 가면서 버젓이 문이 있는데도 힘들게 담을 기어오른다던지. 7일간 자신을 가르쳐줄 사부의 권위 따윈 기르는 개에게 줘버리는 성격은 좋게 말해서 넉살에 좋다고 할까요. 권위를 울부짖는 사부의 마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비집고 들어가서 앉아 버리는 대범함이랄지 상냥함이랄지 천연 기질이랄지 유메의 사차원은 사람을 물어 버린다는 늑대개조차 온순하게 만들어 버리죠. 그렇게 7일간 사부와 지내면서 서로의 마음을 다 들어내면서 이러다 끝에 맺어지는 건 란타가 아니라 사부가 아닐까 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지는 게.
음... 그리고 '마나토', 하루히로 일행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될 길을 제시하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길잡이 역할을 해줬던,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의 첫 이미지는 전세에서 아마 사기꾼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림갈로 날려 오면서 기억을 모두 잃었지만, 사람은 기억을 잃어도 몸에 밴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그런 느낌. 덤으로 남을 믿지도 않고, 기억도 없는 낯선 곳에 떨어져 그래도 살아 보려고 노력을 해보고 싶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진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인재로 보이는 사람들은 지들끼리 뭉처서 떠나버린 시점에서 마나토는 자신이 살려면 어찌해야 될까.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찌끄레기만 모인 하루히로 일행이었다는 것.
그래도 지끄레기 인생이어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리더를 자처해서 이들을 이끌게 되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게 이놈들 의욕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시키는 것만 하고 시키지 않으면 안 하는, 굶어죽게 생겼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니 내(마나토)가 나설 수밖에요. 모욕을 당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고블린을 잡으러 가서 개고생을 하고 그럼에도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나날, 파티는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그래도 잘 살아 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하나하나 성격을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던 어느 날, 조금은 무리해도 좋겠지. 하나뿐인 속옷을 빵꾸나도록 세탁해 입는 것도 지겨웠는데(이건 본편의 이야기), 마침 돈 좀 있어 보이는 고블린 두 마리를 잡아 보겠다고 했던 게 분수를 초과했던 거겠죠.
언제나 파티에서 분란만 일으켰던 똥 덩어리 '란타'가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늘 입만 열었다 하면 성희롱에 타인을 멸시하고 깎아내리고 욕하고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흐름을 타는 갈대보다 대쪽같은 대나무가 되어 부러지지도 못하고 꺾여버릴 거 같았던 그 란타가요. 그는 다룽갈에서 나와 어디더라 사우전드 벨리던가에서 기어이 하루히로 파티와 갈라져버렸더랬죠. 사실 란타는 입은 험해도 참 올곧고 올바른 성격이랄까요. 남의 눈치를 살피는 시호루와는 정반대로 누구나 입 밖으로 꺼내길 꺼리는 상황을 대신 말해서 상황을 직시하게 만들고 그럼에 자신이 모든 비난을 짊어지었던. 원래는 주인공이 해야 될 대사들을 란타가 대신해줬다고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듣는 사람에게 잘 전달 되도록 조리 있게 말해야 되는데 너희는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속을 벅벅 긁는 투로 말하니 좋아질 리가 없었죠.
그런 란타가 사우전드 벨리에서 찢어진지 1년 만인지 3년 만인지(본문에서 1년과 3년을 언급하는데 어느 시점인지는 안 나와서 헷갈림)만에 등장해서는 엄청 성장한 모습을 보이지 뭡니까. 단순히 실력적으로가 아니라 성격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마치 나루토가 소년 시절에서 갑자기 나뭇잎 마을 촌장이 된 모습이랄까요. 입만 열었다 하면 똥만 내뱉었던 성격(2)은 둥굴어져서 타인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딴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란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는 사우전드 벨리를 떠나 하루히로 일행과 마찬가지로 오르타나로 여행 중인데요. 이세계는 혼자서 여행해도 안전하다 할 만큼 그리 녹록한 게 아니죠. 그런 여행이 란타로 하여금 성장하게 한 것일까요. 여행의 일부분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직시하고 자신의 마음에 무언가를 묻는 장면은 정말 가슴 먹먹하게 하였습니다.
맺으며, 앞의 내용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동안 똥 덩어리 혐오감 일색이었던 란타가 사람이 되어 돌아온 부분은 정말 이 작품에 있어서 최대의 백미가 아닐까 했습니다. 스포일러라 조심스러운데, 파토라는 오크와 인간 사이의 혼혈의 아이가 나와요. '구모'라고 인간에게도 오크에게도 멸시를 당하는 종족이죠. 구모는 오크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힘들게 살아가야 되는데 그런 구모의 아이와 란타가 만나요. 이미 예상은 했습니다만. 란타를 쫓아온 건지 아이를 쫓아온 건지 오크의 추적자들이 쏜 화살에 아이가 맞아 버립니다. 가망은 없어요. 예전의 란타였다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의사도 약도, 회복술사도 없어요. 그저 화살을 맞은 아이를 들쳐 업고 여행길에 오르죠. 그는 아이에게 희망에 찬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저 평소대로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아주 맛있게 구워진 물고기를 먹여 줍니다. 또 그리고 언덕에 올라 노예로 지냈다면 못 보았을 풍경을 보여주려 하죠. 하지만 아이는...
필자가 이렇게 가슴 먹먹해지기는 정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이것이 란타에게 있어서 성장의 원동력이었을까. 이런 죽음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복선, 그는 빌어먹을 세상이라고 욕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있을 테니까요. 그저 자신은 자신의 마음에 잘 따르고 있냐고 반문하고 있을 뿐. 정말로 란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크엘프라고 일컬어지는 회색 엘프와의 여행, 그 회색 엘프와의 여행 종착점에서 본 또 다른 인생을 보며 란타는 또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이 남자가 사는 법은 강자에겐 꼬리를 살랑살랑, 약자에겐 매도를 퍼부으며 늘 자신만을 생각하던 모습에서 타인을 위해 움직일 때. 그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면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는 걸 여행 중에 깨달은 것인지 란타도 조금은 이성이 다가올 여지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정말로 하루히로 일행의 여행보다 란타의 이 단편이 100배는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더군요. 덕분에 마나토의 최후가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마나토의 최후도 참 먹먹하게 만드는...
- 1, 그러니까 한 명의 주인공을 분할해서 고블린도 주인공이고, 인간의 모습으로한 주인공도 출연 시켜서 둘(자신)이 마주보게 하는 것
- 2, 노파심에서 쓰지만 나루토가 이렇다는 소리가 아님, 성격적으로 성장하였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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