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마녀의 여행 7권 리뷰 -돈 독 오른 인정 많은 마녀의 이야기-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게 돈이다. 한자리에 머물러 살아도 들어가는 게 돈인데 하물며 여행 중일 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애초에 마녀니까 모험가처럼 의뢰를 받아 처리해주면 어느 정도 돈벌이는 될 테지만 돈이라는 게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거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동화 한 개짜리 조화(가짜 꽃)를 도매점에서 떼와 금화 1개에 내다 파는 사기꾼 같은 짓을 저질러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밥은 먹어야 하고, 잠은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야 건강을 챙기는 것이기에.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일레이나'는 마녀가 된 이후 줄곧 세상을 여행하며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자선 사업으로는 살아가지 못한다. 일을 했으면 돈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이기에 공짜 노동은 누구보다 싫어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돈을 가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마녀를 보면 도와 달라고 한다. 하지만 돈에 깐깐한 일레이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하고, 끈질긴 사람은 척추를 접어 버릴까 보다 하며 흉흉한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 이전 이야기에서 그녀의 어록 중 하나가 "반으로 접히고 싶으세요?"다. 그런 그녀가 이번 이야기에서는 자선 사업을 많이 하게 된다. 아무래도 뒤에서 칼 맞기는 싫었겠지. 짝퉁 마녀를 만나 도적들을 소통하러 가서 짝퉁에게 엄청 휘둘리는 모습은 유쾌하기 짝이 없다.
보통 같으면 일언지하에 거절했을 일을 왜 도와주는 걸까. 마녀를 동경하는 어떤 소녀의 우쭐한 모습에 그만 흥미가 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만하게 조수로 써주겠다느니 날 도와줄 수 있게 기회를 준다느니 허무맹랑한 소녀의 행동에 일레이나는 늪에 빠지듯 휘둘려 가는데, 일레이나는 마녀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소녀가 안타까웠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녀를 동경하는 소녀는 마법에 소질이 없다. 그럼에도 마녀를 동경해서 코스프레로 치장하고 세계를 여행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자기 주제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 소녀는 도적을 퇴치하면서 자기 주제가 뭔지 알아간다.
때론 돈을 위해 아무렇게나 의뢰를 받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세상의 진실 따윈 알고 싶지 않은 일도 알아가게 된다. 사람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아 폐촌으로 향했던 일레이나는 의뢰주의 추악한 이면을 보게 된다. 평화적으로 이용하겠다며 마법사들을 속여 전쟁에 이용했던 의뢰주는 전쟁이 끝나자 마법사들을 내쫓아 버린다. 토사구팽이라는 거다. 그래놓고서는 다시 전쟁이 발발하자 이 마법사들을 불러들이려고 하는, 이 작품은 동화 같으면서도 때때로 잔혹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마법사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의뢰주는 강경책까지 준비하던 차에 일레이나에게 이들의 소환을 의뢰한다.
여기서 시사하는 건 일레이나는 의뢰주를 배신할 것인가 아니면 눈 감고 의뢰주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냐다. 이것은 업계의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레이나는 마법사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의뢰주의 추악한 이면을 듣게 된다. 마법사들은 선량한 사람들로 자기들의 능력이 전쟁이 이용될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능력을 없애면 의뢰주는 다시는 자신들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이다. 일레이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신뢰를 해치지 않고 서로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일레이나는 이런 번거로운 일은 싫어한다.
그리고 이번 7권의 최대 하이라이트, 잠에서 깨어난 고룡(古龍)의 이야기다. 400년간 봉인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 고룡이 자신이 안심하고 잘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처럼 무리에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다 있을 곳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겁에 질린 사람들로 인해 배척 당하고 마녀에 의해 쓸쓸히 봉인되어가는 이야기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그렇게 400년간 봉인의 끝에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있을 곳은 없다. 일레이나는 고룡과 마주한다. 고룡은 배가 고파 쓰러진다. 그렇게 일레이나는 고룡에 휘둘리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일레이나는 이번 이야기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 그냥 언제나처럼 내버려 두고 가면 될 일을 마지못해 손을 내민다. 수전노 일레이나가 어쩐 일인지 고룡이 입을 옷을 사주고 밥을 먹여 준다. 아마도 혼자라는 쓸쓸함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활달한 고룡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봉인한 마녀를 찾는다. 하지만 마녀는 400년이나 살지 못한다. 마녀의 흔적을 쫓으며 여전히 자신이 있을 곳은 없다는 걸 고룡은 깨달아 간다. 그저 나는 있을 곳이 필요했을 뿐인데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족에게서도 인간들에게서도 배척을 당하는 모습이 여간 짠한 게 아니다.
고룡은 왜 마녀를 찾고자 했고, 마녀는 왜 400년 전에 고룡을 봉인할할 수밖에 없었는가. 인연은 4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잔잔하고 개그스럽게 엮어간다. 모습이 다르다고, 나와 다르다고 배척 당한 건 고룡만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저 곁에 있고 싶었을 뿐인데 모두에게서 배척 당하고 있던 건 고룡만이 아니었다. 마녀와 고룡은 서로의 본질을 본 것일까 하는 의미 있는 물음을 던진다. 400년 후 인간의 모습이 된 고룡은 인간의 틈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 물정이라고는 하나도 몰라서 일레이나에게 기대기만 했던 고룡. 그런 고룡을 이끌고 일레이나는 어떤 도시의 고서점에 들린다. 그 고서점의 주인은...
이렇게 이 작품은 옴니버스식으로 진행이 된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이야기를 여러 개 엮여 있다. 동화 같은 이야기와 기묘한 이야기도 있고, 때론 가슴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머리와 정신이 사차원인 사람이 등장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일레이나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가 엮이고 엮여 일레이나와도 인연이 닿는 그런 이야기다. 자기애가 강하고 돈이 안 되는 일은 못 본척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도 들어 있지만 어쨌거나 결국 도와주고 마는 심성 착한 마녀의 이야기다.
맺으며: 백합이 횡행하는 작품이다. 이전부터 그냥 대놓고 백합의 길로 가는 작가의 능력이 좋다고 할까. 아무튼 권선징악형이라기보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가는 그런 이야기다. 잔잔하면서도 때론 섬뜩한 시리어스가 있다. 이번에 사람 잡아먹는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일레이나는 당분간 고기를 못 먹는 거 같았고. 은근히 패러디도 있다. 명탐정 코x 같은 거라든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라든지. 돈만 되면 뭐든지 파는 일본 엔터테인먼트를 교묘히 비꼬는 듯한 그런 이야기도 들어 있는 게 입에 착착 맞다. 아무튼 개그물에 어울리지 않게 고룡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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