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취향으로 인해 이세계의 주민은 미남, 미녀만이 존재한다. 주인공 '마코토'는 이세계 여신 기준으로 추남이다. 부모가 미남, 미녀다 보니 여신은 선입견을 가진 게 틀림이 없다. 그래서 마코토의 부모와 한 약속으로 자식 중 하나를 넘겨받았는데 첫 대면에서 하필이면 추남일게 뭐냐는 반응을 보인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지만 알게 무냐는 식이다. 여신은 그를 꼴 보기 싫다며 이세계 끄트머리에 던져 버린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인간에 대한 외모와 마음에 선입견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이세계 전이물의 공통점인 이세계 언어(이 작품에서는 공통어)를 주인공은 받지 못한다. 그로 인해 세계 끄트머리에서 말도 통하지 않아 길을 물어볼 수가 없었고, 이세계 기준으로 추남인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오크급으로 차별을 받아 간신히 찾은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다.

 

말도 통하지 않고 인간이면서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에 떨어진다면, 이런 주제로 이 작품은 초반부터 굉장히 난이도 높은 세계관을 주인공에게 들이민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어종 중 하나, 가시가 많아 먹기 힘들지만 맛은 있다)라고 마물과 아인(수인?)과의 소통은 가능하다. 이 말은 결국 주인공은 인간에게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거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여신에게서 변변찮은 치트 하나 못 받은 그에겐 마력 하나는 무궁무진하다. 이 마력 덕분에 신(神)급으로 추앙받는 드래곤(토모에)과 걸어 다니는 재앙으로 신화급 취급을 받는 검은 거미(미오, 글자 그대로 거미다.)를 종자로 들이게 되면서 개똥밖에 없는 세계에서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게 된다.

 

부모에게 버림받다시피 여신에게 팔려가 이세계 끄트머리에 떨어진 주인공, 이 정도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주인공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살아는 보겠다고 추남을 거부하면 가면을 써서 정체를 숨기고, 말이 안 통하면 마력으로 공중에 글자를 쓰면 되지 같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금은 어느 도시에 정착했다. 중간에 위기에 빠진 '토아'라는 모험가 파티를 구해줘서 친구로 들이고,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상인으로 위장해 지금은 도시 귀퉁이에 상점 터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이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도시에서 제일 가는 유력 상인을 도와 뒷배로 뒀고, 토모에의 능력 중 하나인 아공(이공간)을 개선해 살 곳을 마련했다. 사막 한복판에 떨어진 씨앗이 말라죽지 않고 싹을 틔워 언젠가 오아시스를 만들듯 주인공이 뿌린 씨앗은 이렇게 조금식 발아하여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미남, 미녀만이 있는 이세계에서 추남인 주인공으로서는 언제나 이물질이다. 공중에 대사를 띄워 소통은 한다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답답함, 지나가는 거지도 미남, 미녀인 세계에 섞여 들어가지 못한다는 조급증은 마음에 틈을 만들어간다. 도시에서 부쩍 두각을 나타내는 그와 그의 종자 둘을 이용하기 위한 주변의 음흉한 시선들. 토모에와 미오라는 힘이 있으니 당연히 자신들을 도와 야 된다는 쓰레기 같은 가치관. 날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사실 주인공 마코토는 살아가는 데만도 벅차다. 그래도 바보는 아니기에 조심은 한다지만 작정하고 덤벼오는 놈들을 당해낼 수는 없다. 그래도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주인공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얻어먹기 위해 자신의 뒤를 밟는 모험가 파티를 처음부터 내쳤더라면, 그러지 않은 우유부단함과 무신경은 주인공 마코토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겪게 한다.

 

인간은 잃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안다고 했던가. 이번 에피소드는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세계는 인간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 이미 여신이 미남, 미녀만으로 구성한 세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이세계는 제대로 된 세계가 아님을 반증하는 거와 같았다. 그런 세계에서 마물과 아인(드워프와 엘프등등)들은 중세 시대 노예만도 못한 차별을 받는다. 주인공은 인간들과 소통은 불가능해도 이런 마물과 아인들과는 소통이 가능하다. 이 말은 그의 주변엔 마물과 아인들이 주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소리다. 토모에가 만든 아공(이공간)에 터를 잡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어디서든 차별을 받는 그들과 주인공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마물과 아인은 가족과도 같다. 그런 가족이 모험가들에 의해 유린 당한다면, 그것도 주인공이 이세계 질서를 간과한 것에서 시작된 비극이라면? 

 

본질적으로 인간과 어울리지 못하는 주인공이 본질적으로 마물과 아인과 어울린다는 의미는 매우 깊다. 보통 이세계 전이물이 현실성이 없는 것 중 하나가, 현실에서 사람은 고사하고 벌레 하나 못 죽일 거 같던 주인공이 이세계에 오자마자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간혹 수사 드라마를 볼 때 칼에 찔려 죽은 사람을 검시하면서 주저흔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뜻은 글자 그대로 찌를 때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는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 주인공 마코토는 처음으로 사람을 헤치게 된다. 죽을 위기에서 구해줘 아공(이공간)에 피난 시켜놨던 모험가 파티들이 벌인 잔혹한 짓. 이세계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 이외에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주인공을 대해줬던 하이랜드 오크의 희생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마음의 브레이크를 망가트리게 한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을 죽였다곤 해도 살인은 살인이다. 여느 이세계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게 현실성이라는 것이다. 살인으로 인한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무서움과 타인의 생명을 빼앗았다는 두려움. 그런 고뇌와 번민을 보여주는 대목은 소름이 다 돋는다. 인간으로서 있기 위한 최저의 조건, 그 길을 벗어나게 된다면 나는 인간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주인공은 현실에 두고 온 친구들에게 묻는다. 필자가 살면서 이렇게 마음을 움켜지는 묵직한 라노벨은 처음 본다. 사실 가볍게 보고 가볍게 구입한 작품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접할 때의 기분은, 이런 느낌 때문에 필자는 라노벨을 끊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새로운 3번째 종자인 '리치'를 들이면서 아공(이공간)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주인공의 마력에 반응해 아공이 더욱 확장하면서 세계를 창조하는 클래스로 발전하는 등 한편으로는 이세계 먼치킨이라는 클리셰도 동반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에서 눈여겨볼 것은 위의 경우도 있지만 주인공이 거느리고 있는 종자들이다. 토모에와 미오, 인간의 개념이 탑재되어 있지 않은 마물로서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는 통에 주인공 머리를 대머리로 만들뻔했던 이들이 이번엔 주인공을 도와 아공을 조사하고, 상점을 내는데 발품을 팔고, 아인들을 돌보는 등 유능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배움에 적극적이고, 주인공에게 모든 걸 받치는 모습에서 섬뜩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세계 사람들이 배척하는 마물에게 사랑받는다는 아이러니.

 

맺으며: 여러 가지 복선이 나왔지만 이건 차차 앞으로 언급하기로 하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포인트는 주인공의 마음이다. 이세계에서 붕 떠있는 감각 때문에 일에 집중을 못하면서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그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면서 겪는 고뇌는 정말 애절하기 짝이 없다. 이로써 주인공은 인간을 차별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그래도 뭐 기본적으로 개그를 깔고 가다 보니 그렇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여전히 자신의 욕망대로 사무라이와 쌀을 획득하기 위해 움직이는 토모에와 어째서인지 얀데레가 되어 가는 미오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아무튼 인간과 마물로 만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고 할까. 필자에게 있어서 빨리 다음 권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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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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