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주의, 긴 글 주의

 

 

 

 

 

이건 마치 풍선효과를 보는듯하다. 한쪽을 틀어막으면 반대편이 볼록 튀어나와버리고 또 이쪽을 막으니 반대편이 튀어나는 바람에 버틸 제간이 없다. 주인공 '데닝'은 드디어 '샬롯'에게 고백을 하였고 남들에겐 비밀인 연인 관계가 된다. 이제 남은 건 부모님을 설득해 공식 연인이 되는 길만 남았지만 애초에 평민인 샬롯이 공작가의 자재와 결혼한다는 건 어불성설, 고백과 동시에 그냥 야반도주나 했으면 해피엔딩인 것을 뭔 미련이 남았다고 계속 미적대더니 돼지 꼬리가 밟히고 개목걸이를 차게 생겼다. 주이공은 이전생에서 샬롯과 결혼하겠다고 공작이라는 지위를 버리고 망나니 짓을 했다가 정나미가 떨어진 샬롯이 엄한 남자에게 가버리는 전생을 거쳐 이번엔 제대로 돌아보게 하겠다며 개과천선하여 구국의 영웅이 되었더니 이번엔 집안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하란다.

 

나라의 멸망이 걸린 굴직한 사건을 해결하고, 여왕이 마음에 들어 하고, 방구석 폐인 왕녀가 찾아와서 마음을 열고 기대는 남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다. 시대는 영웅을 바랐고 주인공은 영웅이 되었다. 어릴 적 바람의 신동이라 일컬어지며 마법에도 특출났던 주인공, 집안에서도 장남이 아닌 셋째 주인공에게 공작가를 물려줄 만큼 나라에서도 큰 기대를 받았던 주인공이 어쩌다 망가져서 쌩양아치가 되어 버렸던가. 그건 한눈에 반한 '샬롯'과 맺어지기 위한, 쌩아치를 하다 보면 집안의 기대를 받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쫓겨 날 테니 평민인 샬롯과 맺어질 수 있다는 얄팍한 어린애 다운 생각에 따라 행동한 결과다. 그 결과 쫓겨났고, 꿈에도 염원하던 샬롯에게 고백도 성공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바로 주인공 어릴 적 정략결혼 상대였던 이웃나라 서키스타의 왕녀 '알리시아'다. 주인공이 속한 나라와 알리시아가 속한 나라는 동맹의 의미로 둘을 결혼 시키려 했는데 그만 주인공이 샬롯에게 꽂혀서 양아치 짓을 하는 바람에 파혼이 되어버렸고, 그 비난은 오롯이 알리시아가 뒤집어써야만 했다. 보는 안목 없다 운운은 성장한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그녀의 흑역사다. 그러니 알리시아가 주인공을 미워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주인공이 구국의 영웅이 된 지금 세상은 다시 둘을 엮으려고 한다. 세상 참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그 좀 양아치 짓 했다고 내쫓을 땐 언제고, 지금에 와서 바람의 신동의 귀환이라는 둥 자기들(집안) 멋대로 본인(주인공과 알리시아)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일을 추진하니 기쁠 리가 있나.

 

이번 이야기는 돼지(주인공)와 결혼하기 싫어하는 알리시아의 고군분투기를 다룬다. 정확히는 싫어한다기보다 집안에서 본인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멋대로 정해주는 정략결혼이 싫다고 해야겠다. 주인공이 정신을 차린 후 알리시아를 몇 번이나 구해주게 되면서 알라시아는 딱히 주인공이 싫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알리시아는 멋대로인 집안에 반발할 겸 그렇다면 결혼보다 더 중요한 걸 찾아 주면 결혼은 유야무야되겠다 싶어 대미궁(던전) 깊숙이 처박혀 있는 국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알리시아는 행동파다. 한번 정하면 일사천리로 진행 시키고 그게 무엇이든 관철 시키려는 노력파다. 그런데 그걸 관철 시킬만한 능력은 없다. 누군가가 그녀의 곁에 서서 같이 행동해주어야만 시너지 효과를 얻어 성공시키는 타입이랄까. 그동안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슈야'가 그 몫을 해주었다.

 

사실 이전생에서 샬롯을 빼앗아간 남자가 바로 또 다른 주인공 '슈야'다. 알리시아 또한 슈야에게 가버리게 된다. 이걸 알고 있는 주인공이라면 슈야를 어떻게든 알리시아에게 붙여줘서 둘을 맺어지게 하고 자신은 샬롯을 붙들면 될 것이다. 문제는 작가가 이번 9권 집필에 매우 귀찮아했지 않았나 하는 티가 역력하게 묻어난다는 거다. 한마디로 이번 9권에서의 주인공을 표현하라면 쓰레기다. 일단 알리시아는 드래곤도 혼자서 때려잡으며 구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주인공을 대미궁에 들어가는데 동행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모든 속성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고, 상황 판단도 뛰어나다. 그런 주인공에게 알리시아는 대미궁에 들어간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알리시아와 결혼하게 되고, 그렇다면 샬롯하고 맺어지는 건 불가능해진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절박함이 없다. 8권까지 그토록 샬롯 앓이를 해놓고 알리시아가 하는 일은 자신에게도 유익한 것이 건만 그녀가 대미궁에 들어간다는 첩보를 입수 했음에도 소 닭 보듯이 한다. 국가 보물을 탈환해서 국가에 반환하면 결혼은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나서서 알리시아의 손을 이끌어줘도 모자랄 판에 야밤에 행동을 개시하는 알리시아의 뒤를 밟아 나도 가겠다고 껴든다. 준비는 알리시아가 다 해놨는데 숟가락을 얹을 뿐이다. 알리사아가 고용한 모험가와 사사건건 시비를 틀고, 모험가가 잡아온 식량을 얻어먹는 주제에 반찬 투정을 해댄다. 야영에 있어서 손이 많으면 편해지건만 가만히 있는다. 애초에 남의 일이 아닌, 주인공 본인의 일이다. 알리시아의 행동에 따라 주인공은 샬롯과 맺어질 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는 걸 작가는 표현조차 하지 않는다. <- ​작가가 집필하기 얼마나 귀찮아 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까.

 

나아가 알리사아가 고용한 모험가의 실력을 보겠다고 알리시아를 습격하는 도적을 일부러 막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최악이 아닐 수 없다. 알리시아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 그래놓고 모험가에게 왜 알리시아를 구해주지 않았냐고 타박한다. 순간 미친놈이 아닌가 했다. 애초에 알리시아가 하는 일은 주인공과도 무관하지 않다. 결혼을 무효화 시키는 일은 원래 주인공이 더 나서서 해야 될 일이다. 알리시아에게 있어서 절박함은 크지 않다. 집안에서 정해주는 남편감은 고를 수가 있으니 그녀에게 있어서 여지는 있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있어서 샬롯 이외엔 여지가 없다. 남여 평등 어쩌구를 떠나 '일부러' 도적을 통과시켰다는 것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모험가가 가만히 있자 왜 가만히 있었냐고 대든다. 웃긴 건 알리시아도 뭔가 한마디쯤 해줄만 한데 그런 거 없다. 작가는 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이대로 대미궁 공략이 실패하면 주인공은 알리시아와 결혼해야 하고 이것은 샬롯과의 이별을 뜻한다. 그러니 절박함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크다. 그런데 절박함은 온데간데없고, 반찬 투정이나 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투정하고, 모험가에게 시비나 터는 주인공이라니. 결국 대미궁에 잠입해서 일은 터지고 만다. 알리시아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 그런 그녀가 대미궁에 들어온다는 건 그만큼의 각오가 필요하다. 대미궁은 상위 모험가도 마구 죽어나가는 마굴이다. 거기서 뿜어지는 독기는 일반인이 감당하기엔 버겁다. 그럼에도 미궁에 발을 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의지, 그 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어야 할 주인공은 소 닭 보듯이 한다. 그러니 그녀는 몸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작가는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주인공에게 마물에게 잡혀가는 알리시아를 구하려 애를 쓰게 하긴 한다. 안 하면 어쩔 건데 싶긴 했지만.

 

홀로 서고 싶다는 마음, 집안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에 분하다는 마음, 하나의 인격체보다 물건 다루듯 다른 나라에 시집보내려는 것에 오는 반발심, 그런 그녀가 주인공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하나도 알아주지 않는 주인공, 애초에 자신을 선택하지 않고 모험가를 고용해 대미궁에 들어가는 것에 의문 하나 느끼지 않는 게 말이 되나 싶다. 버림받았다는 걸 모르는 무골충이가 따로 없다. 고생 끝에 대미궁의 안쪽, 드디어 목표로 하던걸 눈앞에 뒀다. 그리고 주인공을 막아서는 마물은 인간족에게 있어서 당대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왕의 수호자 가디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슬라임이다. 순간, 전생슬(전생 했더니 슬라임)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는데 작가가 어지간히도 아이디어가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맺으며: 운명과 맞서 싸운다. 내 운명은 내 것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주인공을 어느 에피소드보다 빛나게 할 수 있었는데 다 말아 먹는다. 의욕 없는 주인공은 내다 버리고 알리시아를 위해 발품을 팔아준 '슈야'를 집어넣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남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는 것도 모자라 반찬 투정이나 하는 주인공이라니 최악이다. 남의 일이 아닌 주인공 자신에게 들이닥친 일인데 왜 주인공은 자기기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은 걸까.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알리시아가 고용한 모험가에게 일일이 시비 걸기 바쁘고, 대미궁에 내려와서도 끝에 조금 활약할 뿐이다. 마지막 보스전에서도 뭔가 근본이 없는 전투신을 보이는데 주인공의 의욕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의욕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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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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