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은 중세 중국풍을 기반으로 한 호러 & 추리 판타지다. 주술을 이용하여 사람을 저주할 수 있고, 혼백(유령)을 정화해서 낙토(저승)로 돌려보내는 이야기를 그린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일도 하고 여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며 억울한 사람의 원혼을 달래주기도 한다.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오비 '수설'은 궁궐에서 황제가 거느리는 수많은 비(妃)중 하나다. '오비'란 까마귀 '오'자에 왕비'비'를 지칭한다.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타인과의 접점을 멀리한다. 황제의 수청을 거부할 수 있으며, 건국 때부터 내려온 관습에 따라 황제조차도 그녀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황제를 들먹이며 '이놈, 저놈, 그놈'이라고 할 때마다 유쾌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게 그녀의 매력 포인트다. 먹는 건 또 얼마나 밝히는지 황제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항상 간식거리를 들고 와 풀어 놓게 되고, 수설은 그게 못마땅하면서도 다람쥐가 도토리 갉아먹듯 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귀여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얼핏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리는가 싶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만의 고유 신화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옛날 '오의 신'과 '오련낭랑'이라는 두 신(神)은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무승부로 끝난 이 싸움은 두 신을 깊은 바다에 봉인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오의 신'은 부활의 징조를 띄게 되고, '오련낭랑'은 갈수록 쇠퇴하게 되는데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수설'은 오련낭랑을 모시는 무녀이자 오련낭랑을 품고 있는 당사자다. 그래서 건국 이래 아무리 폭군 황제라도 '오비'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오련낭랑은 겨울의 왕으로서 여름의 왕인 황제와 쌍(페어)이 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여름의 왕이 존재하려면 겨울의 왕인 오련낭랑이 필요하다. 오련낭랑이 없어지면 황제도 없게 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상당히 난해한 게 이 작품이 가진 특성이다. 얼핏 주술로 사람들을 저주하고, 구원하고, 없어진 물건을 찾는 호러틱한 판타지를 보여주지만 실상은 신화(픽션)를 기반으로 한 매우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오의 신'을 따르는 신도들의 암약으로 '수설'은 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오련낭랑'은 1천 년이라는 시간 속에 차츰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그 신이 가진 힘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이 말은 수설이 약해지고 있다는 말과 상통하게 된다. 수설은 몸에 오련낭랑을 품고 있다. 그 옛날 초대 오비가 인간의 몸에 오련낭랑을 봉인한 게 유래되어 대대로 오비를 맡는 소녀의 몸에 오련낭랑이 깃들게 된다. 그런데 오련낭랑은 완전한 게 아닌 절반만이 오비의 몸에 깃들고 나머지 절반은 아직 바다에 봉인되어 있다. 이게 오비 '수설'이 가진 비밀이고, 이걸 풀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런 비밀에 더해 그녀는 전(前) 왕조의 피도 잇고 있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머리 터지게 할 요량인지 설정을 너무 과하게 잡아서 매번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 보통 왕권이 바뀌면 전(前) 왕조의 피를 말살하는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진다. 수설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도망의 나날을 보내나 뒤쫓아온 관군에 의해 어머니는 수설이 보는 앞에서 참수되고 만다. 이게 수설에게 있어서 커다란 트라우마가 된다. 오비로서 거둬지고 전(前) 왕조의 피의 증거를 숨긴 채 살아가는 수설에게 있어서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왜냐면, 그녀가 살아 있다는 게 밝혀지만 전(前) 왕조파들이 그녀를 주축으로 해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황제 고준은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호해준다. 이것이 이번 4권에서 발목이 잡히는 결과로 이어지고 결국 수설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수설은 왕족의 피를 잇고 있어서인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주술로 사람을 구하고,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 구천을 떠돌 일 없이 낙토(저승)로 보내면서 많은 이들을 구원하게 된다. 이에 따라 그녀를 추종하는 세력이 늘게 되는 건 필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곧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를 못마땅히 여기는 부류가 생겨나고, 수설을 없애기 위해 움직이는 자가 생기는 것 또한 필연이 되고 만다. 정작 황제 '고준'은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다. 오히려 수설을 어떻게 하면 오련낭랑을 모시는 무녀의 자리에서, 그녀의 몸에서 오련낭랑을 빼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련낭랑이 가진 본질에 접근하게 되면서 황제와 대립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서 선대 오비는 수설로 하여금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번 이야기는 수설을 추앙하는 이들을 역으로 이용해 수설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비단 수설만이 아닌 '오비'의 직함을 가진 자는 황제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여기에 수설은 전(前) 왕조의 피를 잇기도 했으니 보기에 따라 매우 위험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이 작품은 주술이 횡행한다. 주술엔 저주도 포함된다. 주술은 수설만이 가진 전매특허가 아니다. 수설보다 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주술사가 수설이 아끼는 사람을 이용해 그녀(수설)의 목을 죈다면, 수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선대 오비가 입이 닳도록 충고했던 사람들과 인연을 맺지 말라는 의미,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 도우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던 수설은 댓가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다. 어머니를 눈앞에서 보내야만 했던 지난 과거, 다시 그런 과거를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리고 굴레와 같았던 오련낭랑을 몸에서 빼낼 수 있다는 단서를 잡게 되면서 수설이 가진 운명을 벗어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긴다. 오비를 버리면 그녀는 평온하게 지낼 수 있게 될까. 황제 고준은 그녀를 구원하고 싶어 한다. 오비는 새장이나 다름없는 궁에 갇혀 평생을 보내야 하고, 오련낭랑을 품고 있는 괴로움은 필설로도 형용하기 힘들다(오비를 맡은 자는 대부분 단명한다). '오의 신'이 대두되고 그 신자들이 준동하고, 오비를 견제하려는 자들이 나오면서 수설은 궁지에 몰려간다. 오련낭랑의 힘은 날로 쇠약해지고, 적은 강대해지면서 수설은 주술 하나 튕겨내는데도 벅차게 된다. 결국 그녀가 전(前) 왕조의 피를 잇고 있다는 것까지 들통나게 되면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황제가 그 권위를 이용해 그녀를 지켜줄만도 하겠지만 이런 부분은 현실 고증을 잘 따르고 있다. 정치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마음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고, 기승전결이 없어 안타깝기도 하다.

 

황제 고준이 보내준 종이를 버리기엔 아깝고, 있으니까 편지를 보내는 것뿐이라며 애써 자기 합리화하는 츤데레 같은 모습도 보인다. 그동안 마음을 닫고 살아왔던 그녀에게 작은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이번 4권에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녀올게'라는 말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을까. 자연스럽게 하게 된 그녀의 변화. 쓸쓸했던 궁에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부쩍 늘어서 활기를 띤다. 이제 이런 활기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선대 오비가 충고했던 사람들과 연을 맺지 말라는 것을 거부한 변화, 그 변화에 맞춰 마치 등가교환하듯 찾아오는 위기. 그 위기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그 죽음을 보면서 수설은 무슨 마음을 먹게 되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세상 풍파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15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감당하기엔 힘이 많이 부칠 것이다. 그런 그녀를 지탱하려는 사람들이 늘게 되고 그럴수록 수설의 목을 죄는 악순환. 이 모든 것이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자 흥미요소들이다. 

 

맺으며: 귀여움과 시리어스가 공존하는 참 특이한 작품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메시지도 던지고, 세상 밖으로 나올수록 위험해지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아픔을 겪듯, 수설 또한 그런 아픔을 견디려는 모습은 참으로 애틋하기 짝이 없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가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일, 누군가가 웃으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 감정에 일희일비하고 소중한 것이 늘어나고, 세상의 넓어진다는 것.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는 수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독해력을 제법 요구하면서도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작가의 능력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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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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