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천신만고 끝에 고향이나 다름없는 '오르타나'에 돌아왔더니 마물들에게 물리적으로 궤멸된 모습을 보았을 때의 황망함이란.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기억이 소실되어 난 누구?! 여긴 어디?! 할 겨를도 없이 왕도에서 파견된 변경군에 붙잡혀 개같이 조리 돌림 당한다면 인생사 참 거시기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는 세상에서 까라면 까야 되는 하루히로 일행은 변경군을 이끄는 장군의 강제적인 명령에 따라 오르타나 탈환과 고블린과의 동맹을 무사히 끝마쳤습니다. 이제 한숨 돌리고 인질로 붙잡힌 '시호루'를 탈환해서 냅다 도망가려고 했지만 안 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요. 하루히로는 폼으로 몇 년을 의용병(모험가)을 해온 것이 아니지만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는 듯 인생 참. 찌끄레기는 찌끄레기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명언(?)처럼 시호루를 붙잡고 있던 장군에게 덤볐더랬죠. 결과 개같이 두들겨 맞고 얌전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이야기는 오크를 위시한 마물들이 점거하고 있는 '탄식의 산' 공략 편입니다. 오르타나에서 마물을 몰아내긴 했지만 곁에 있는 산성(山城)에서 농성 중인 마물들도 어떻게 해야 될 판이죠. 하루히로 일행 및 몇몇 의용병들에게 산성 내부로 들어가 교란하라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죠. 찌끄레기 인생이라도 마나토와 모구조를 떠나보낸 이후부터는 나름대로 운빨은 따라줬던 하루히로 일행이지만 이번에도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작가가 작 초반에 등장인물들 몰살 시킨 것에 대한 반성인지 이후 하루히로 일행에게선 사망하거나 탈락하는 캐릭터들은 나오지 않고 있거든요. 란타와 유메도 합류해서 전력도 보강되었고요. 그렇게 산성 공략에 나서는데 매우 치열한 전개가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공략 전보다는 개그로 승부 보려는지 서커스가 펼쳐지는군요. 성도착증 환자, 스토커, 중2병 환자, 사호루가 빠진 자리를 메꿀 독설가가 펼치는 하모니는 작중 재미를 배가 시켜줍니다(반어법 아님).

 

시놉시스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과 강적의 등장이라고 되어 있던데 정작 그런 건 안 나옵니다. 같이 동행한 의용병 파티들이 너무나 강해서 하루히로 일행은 업혀가는 신세죠. 그래도 나름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입니다만, 하루히로는 이래저래 생각이 많고, 란타는 내면적으로 성장했나 싶었더니 여전히 똥 덩어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유메도 이제 나이 먹을 대로 먹었을 텐데도 사차원 기질을 보여주죠. 이런 것들이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지라는 느낌이 들어 좀 반가웠군요. 특히 몇 권인지 까먹었는데 하루히로를 짝사랑하는 미모리(히로인)와 4차원 독설가 안나(히로인)의 재등장 또한 매우 반가웠습니다. 자칫 우중충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밝게 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분위기를 띄워주고 있어서 사실 별 내용이 없음에도 이들 덕분에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죠. 좋아하는 남자(하루히로)를 만나기 위해 지름길이랍시고 해자(성 주변 함정)를 헤엄쳐 건너오는 히로인(미모리)은 참으로 드물지 않을까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 언제 어떻게 하루히로에게 푹 빠지게 되었는지 모를 '미모리'가 보여주는 하루히로 일편단심은 사실 많은 걸 내포하고 있습니다. 미모리는 하루히로가 몇 년간 엄한 곳에서 삽질할 동안에도 기억해주고 기다려줬죠. 동정들만 모인 파티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이성 간 거리를 미모리를 이용해 대신 표현함으로써 하루히로에게 이성관계는 이렇게 하는 거라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4차원 독설가 '안나'는 마물과의 난전 중이든 휴식 중이든 마이페이스로 당당하게 가슴 펴고 할 말 다하는 모습에서 언제까지 생각만 하고 살래?라며 하루히로에게 지적하는 게 아닐까 했고요. 근데 동정인 우리의 주인공 하루히로는 오는 골 다 쳐내는 반데사르처럼 오는 호감 다 쳐내고 있어서 안타깝다고 할까요. 덕분에 매리는 이번 17권에선 거의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버렸군요. 이번 17권은 시종일관 이런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맺으며: 이 작품이 재미있는 점은 등장인물들 특유의 말 솜씨를 들 수 있습니다. 안나가 보여주는 4차원 독설도 재미있고, 란타가 똥 덩어리 행동을 하면 쓰레기 취급하는 쿠자크도 은근히 재미있죠. 꾸며졌다기 보다 스스럼없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시궁창 같은 현실을 외면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만큼 이 작품의 분위기는 어둡다고 할 수 있죠. 그건 그렇고 진퉁 독설가 '시호루'가 빠지니까 팥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녀의 독설이 그리운데  시호루는 어디서 뭘 하나 싶었더니 아무래도 최종 보스가  듯합니다. 처음 그림갈로 넘어와 그래도 마음 줬던 마나토를 떠나보낸 이후 타인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았던 시호루의 존재 의의를 이렇게 만들어가는군요. 주인공 하루히로는 이번 공략전을 거치며 파티 리더로서의 성장을 조금 보여줍니다. 성장이라고 해도 여전히 생각이 많아서 고생 많이 하고요. 그리고 열리지 않는 탑(하루히로 일행이 최초 도착한 곳)의 주인에 대한 정체가 조금식 밝혀지면서 이 작품도 곧 끝나지 않을까 싶었군요. 이건 16권 리뷰에서도 언급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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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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