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초보 연금술사의 점포 경영 1권 리뷰 -영리와 비영리의 차이-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장르: 판타지, 백합, 여성향
현실에서 "사"자가 들어간 직업이면 일단 성공한 사람이라고 봐야겠죠?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천하장사 등등... 이걸 판타지에 빗댄다면 어떤 직업이 있을까요. 마법사, 검사, 기사 이런 직종이 있겠지만, 사실 이런 직종은 돈을 많이 번다는 이미지는 아니죠. 뭐 모험가가 되어 일확천금을 노리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날 벌어 그날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직종은 뭘까, 이 작품은 그 대답을 보여주죠. 바로 연금술사 되겠는데요. 서양 판타지에서 연금술사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 듯, 보석을 만들고 호문쿨루스를 육성하는 조금은 신비주의라면 일본 판타지에서 연금술사의 이미지는 어찌 된 일인지 골렘이나 지형을 바꾸는 연성과 재료를 모아 포션 만들기가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이 작품도 그런 이미지에 따라 포션이 메인이 돼요.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사라사'가 연금술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시골에 점포를 열고 포션을 팔아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연금술사는 국가에서 엄격히 통제 중으로 아무나 도전은 가능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종이죠. 10명이 도전에서 1명만이 자격을 얻는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연금술사 자격을 얻으면 앞으로의 인생을 탄탄대로나 다름없어요. 마치 현실의 공무원처럼 정년과 노후가 보장되거든요(근데 이젠 아니라는 말도 있긴 합니다). 주인공은 15살 나이에 자격을 취득해서 시골에 내려가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본의가 아닌 스승의 농간에 빠져 희귀 재료 셔틀이 된다는 것이군요. 원래는 왕도에 남아 다른 선배 연금술사의 제자나 직원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더 성장하려고 했어요.
왕도에서 한 달이나 걸려 시골에 도착한 주인공을 반겨준 건 허름한 가게였죠. 이제 이걸 수선해서 번듯한 가게로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서 포션을 팔고, 숲에 채집하러 오는 모험가(채집자)들에게서 재료를 매입하고 포션을 파는 등 현실 의학계에 빗대 보자면 인턴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업의가 된, 어쩌면 15살에 벌써 인생 승리자가 되었죠. 물론 연금술사 자격을 따기 위해 5년이란 시간을 고생이란 단어로는 부족할 만큼 노력했고, 억척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개업하는데 필요한 밑천을 장만해야 했으니 그 과정은 참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기구한 인생이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폐해로 동년배 친구는 하나도 없고, 아는 사람이라곤 아르바이트하며 자신을 가르쳐준 상점 사장이자 스승인 '오필리아' 한 사람뿐이랍니다.
이제 성공한 삶을 살며 느긋한 슬로라이프를 즐기는 걸 보여주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요. 이 작품은 굉장히 현실적인데요. 이제 연금술사가 되었으니 편하게 놀고먹는 인생, 이익률이 높으니까 필사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벌 수 있다 등등 돈 독 오를 대로 오른 주인공이 눈을 희번뜩 부라리고 돈을 긁어모으는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죠.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를 바라고 이 작품을 접한 독자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려 줍니다. 물론 사업하는 데 있어서 리스크를 감안해야 되는 건 있지만, 가령 포션 한 병에 500 레어(화폐 단위)짜리가 있어요. 여기서 빈병을 가져오면 반값에 판매해 준다고 하니까 250 레어에 판매 중이죠. 근데 마진이 200 레어라는 것입니다. 결국 정상가(500 레어)에 판매하면 마진율은 90%라는 건데요.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아기자기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닌, 경제관념으로 접근해야 흥미롭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재료 매입해서 가공하고 판매하는데 들어가는 품과 리스크에 따른 손해를 감안해서 이익을 붙여야 하는 동시에 누구나 구입(그래도 누구나 구입 못함)이 가능한 가격을 책정해야 되는 고도의 수학적 계산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죠. 이렇게 가격을 책정해도 구입 못하는(가격 때문에)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면 시장이 붕괴(저번엔 공짜로 해주더니? 같은)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면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들이라 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다곤 해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생명 중시보다는 이익과 시장을 우선시하는 모습에서 비영리와 영리의 차이를 이 작품이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걸 느꼈군요.
이 작품의 단점은, 아가 자기 한 동화 같은 이야기는 둘째치고 주인공이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공이나 연성하는데 실패하면 매입한 재료가 몽땅 날아가니까 그에 따른 손해가 발생한다는 리스크만 볼 뿐, 그 리스크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없다고만 하죠. 희귀한 재료라면 이해는 가겠는데 재료를 비교적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상처 치료 포션조차 리스크가 있다며 높은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통제 중이라지만 보다 폭넓게 누구나 이용 가능한 포션의 개발은 등한시한 채 말이죠. 1권 이후는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작품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1권에서 이런 모습들은 독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런 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일 수 있을 테니,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적이라고 해야겠군요.
맺으며: 초반엔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번다고 해놓고, 실제로 그렇게 벌고 있으면서도 정부가 통제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에 따라 나 나름대로의 성장하기보다는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변화를 바라지 않는 기득권자 같아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건 가지 못한 자에 대한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초반에 자신은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 성장하고 싶다는 주인공의 마음에 배치(背馳)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꼬여가다 보니 놀고먹을 수 있다라고 해놓고, 결국 구입할 돈 없는 사람은 죽으란 소리와 같은, 수지 타산이 안 맞다고 말을 바꾸는 설정으로 이어지고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좀 어이가 없어요. 특히 완전히 수전노가 아니라는 듯, 돈 계산만 하는 건 아니라는 듯, 친구가 된 '로레아'에겐 한없이 베풀기도 하는 등 약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둔다는 것에서 질이 더 안 좋게 느껴졌군요.
사실 필자는 벽난로가 있는 서양 판타지인가 했습니다. 주인공이 처음 시골 낡은 가게로 내려와 그 가게를 바라보며 여기서부터 내 인생이 시작된다 같은 부품 마음과 설렘을 보여주지 않을까 했습니다(주인공의 첫마디가 이건 너무하잖아!!).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고, 밤에는 불 피운 벽난로가에 앉아 '로레아(서브 히로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낮에는 만화 '카페 알파(일본명: 요코하마 매물 기행)'처럼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서정적이 되는 그런 판타지인가 했습니다. 대체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군요. 이런 기대가 있었던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뭐 완전 딴판이라고 해서 비판하거나 회의적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마음의 성장과 변화는 하지 않은 채, 가격을 낮출 수 없다면 연구를 하면 좋으련만 그저 자기 합리화하며 그러지 않는 현실 기득권 같은 모습에 약간 실망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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