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책벌레의 하극상 제5부 여신의 화신 1권 리뷰
노골적인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은 사람이 자기의 취미에 심취하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데요.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마인'은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바람에 그녀는 책에 깔려 죽고 싶다는 뜻대로 현실에서 책에 깔려 비명횡사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이세계로 전생합니다. 그런데 죽었다고 해서 제 버릇 개주지 못하고, 책에 깔려 죽었다면 그 트라우마로 책을 멀리할 법도 한데 현실 부모에게는 이별의 말도 전하지 못했으면서, 이세계의 부모와는 생이별한 것도 모자라 눈앞에 두고도 부모를 부모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은 위치에 놓여 있음에도. 되레 출판문화가 없는 이세계에서 맨땅 헤딩으로 인쇄 시스템을 구축해버렸죠. '마인'에게 있어서 책은 가족과 생명을 넘어 그 무엇쯤? 그러니 책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주변에 온갖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치고 그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고, 만악의 근원이 있다면 그녀가 아닐까 싶은 그런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죠.
이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운은 '마인'이 이세계로 전생했다는 것일 겁니다. 비단 책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지식(현대 신문물)을 마구 퍼트리는 바람에 그녀를 지켜주는 주변 사람들의 위장을 빵구나게 만들기 일쑤고, 거기에서 오는 이득을 노리고 하이에나가 들러붙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으면 좀 자중하면 좋으련만 오히려 영주의 양녀라는 범에 날개까지 달리게 되니 영지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영주를 적대하는 파벌을 숙청하는 발단까지 이르게 하니 지옥 염라대왕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드는 이 무슨 해괴한 캐릭터가 다 있나 골이 지끈. 그러거나 말거나 '마인'의 책 만들기는 더욱 가속화되어 이제 영지의 특산물이 되어 버렸고, 귀족원(귀족 사관 학교쯤?)에서 특유의 공부법으로 애들 성적 쑥쑥 올리고, 이런 여러 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나라(國) 내 여러 영지 중 그녀가 속한 에렌페스트는 졸지에 영지 순위(파워)가 껑충.
그러니 반대 작용으로 납치미수부터 해서 두 번의 독살 미수가 일어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입만 열었다 하면 왕족까지 말려드는 대참사로 이어지니 내가 양부모였다면 진즉에 유폐하거나 암살해버렸을 듯. 자신 때문에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인 '페르디난드'가 마음에도 없는 옆 영지 에렌스바흐에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녀는 이제야 겨우 자신 때문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페르디난드는 에렌페스트에 없어선 안 될 최중요 전력(물리적으로)이죠. 게다가 몇 년이나 같이 부대끼며 있는 정 없는 정 다 나눴으면서 귀족의 사정이 있다곤 해도 데릴사위로 잡혀가는 그에게 연정 하나 없다는 것에서 페르디단드는 의문의 1패. 애초에 잡혀가는 이유가 마인 자신에게 있음에도 반성의 기미가 없으니 더 문제.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적지나 다름없는 에렌스바흐에서 외모와 음악으로 여심을 울리며 입지를 다져가는 페르디난드가 더 무섭게 다가오는 아이러니.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동안 마인의 암살 미수와 더블어 에렌페스트를 접수하려고 수작질 중인 에렌스바흐에 붙었던 귀족들을 숙청하고 그 숙청 대상이었던 귀족들의 아이들을 '마인'이 거두면서 마인은 또다시 성녀 전설에 한 발 더 나아가 되고요. 여전히 귀족원(귀족 사관 학교쯤?)에서 여러 가지 일을 저질러 주는 등 마치 벌집 쑤신 듯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걸로 끝이 아니고 이전에 '마인'이 왕의 증거 '구르트리스하이트' 를 어디선가 접하였는데 이게 또 말썽으로 이어지는데요. 지금의 왕은 이걸 소지하고 있지 않아 쭉정이 취급 당하고 있죠. 왕의 자리에 오르려면 이 왕의 증거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왕의 증거를 혹시나 '마인'이 가지고 있거나 정보를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받으니 그녀의 앞 길은 순탄치 않다는 예고를 하죠. 특히 제3왕자의 경우엔 약혼자가 있는 마인에 푹 빠져서 그녀를 어떻게 해보려는 광기는 참 안타깝게 합니다.
항상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고 하죠. 마인이 벌인 사업들로 인해 그녀의 영지 에렌페스트는 나날이 발전하고 나아가 왕족까지 관심을 보이자 다른 영지에서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어 갑니다. 만년 꼴찌 시골 영지가 갑작스레 치고 올라오니 다른 영지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한 것이고, 옛날부터 에렌페스트가 마음에 안 들었던 이웃 에렌스바흐는 이제 대놓고 공작질을 하고, 그 덕분에 에렌페스트에서는 피의 숙청이 일어나는 등 이세계 판타지물 치고는 상당히 고어 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에렌스바흐는 이렇게 에렌페스트의 최대 전력인 페르디난드와 마인(마인의 마력은 세계 최강)을 갈라 놓는데 성공하였으니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건만 '마인'은 그저 책만 바라보고, 양부모가 그토록 왕족과 어울리지 말라고 했는데도(일이 커지니까), 제2왕자의 말재간에 넘어가서 결국 제1왕자 결혼식에까지 참여하게 되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수렁에 빠져만 가죠.
맺으며: 여전히 책 관련 이야기가 절반을 넘지만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마인이 온갖 저지래 하는 것보다 그녀를 이성적으로 쟁취하기 위해 맛이 가는 인물들이군요. 눈 돌아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귀족의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빼앗겠다는, 그런 살벌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특징인데 이걸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페르디난드의 약혼녀는 머리가 비었다는 것과 '마인'의 성녀화에 박차를 가하는 열혈 신도 2호가 등장하는데 이건 좀 재미있었군요. 그리고 나라 전체, 특히 에렌페스트에 전운이 살살 돌기 시작하는데 뭔가 콕 집어서 어디쯤이다라는 건 언급하기 힘들지만 작가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이 꽤 좋은데요. 다만 의식을 치를 때 등장하는 신(神)들 관련 이야기는 노골적인 게 많아서 거부감이 좀 있었군요. 이전부터 그래왔지만 결국 주인공을 신격화 내지는 그에 준하는 인물이 된다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어쨌거나 이 작품은 마법을 가미한 현실판 중세 시대 같은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왕족 간 왕좌를 두고 피바람이 불고, 귀족 간의 위계질서는 철저히 지켜져야 하고, 평민은 발톱의 떼만도 못한 존재죠. 보통 여느 판타지라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장면들도 이 작품에서는 여지없이 피바람이 불어댑니다. 암살이 횡행하여 보호구는 필수, 음식은 기미 상궁이 반드시 따라붙고, 형제끼리도 때론 호위 기사를 두지 않으면 만나지 못합니다. 친구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정보 캐내려는 첩자. 그래서 이 작품은 개그 같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 제법 묵직한 블랙 코미디 같은 모습을 보이죠. 역모의 가능성까지 복선으로 나오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를 더해가는데 그 중심에 '마인'이 떠억, 마치 불 난데 기름 끼얹나? 같은. 만악의 근원을 없애 버리면 세상 편할 텐데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죠. 그나마 조금은 배웠는지 이제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서 그녀의 성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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