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전생 왕녀와 천재 영애의 마법 혁명 3권 리뷰 -잘 가다가 백합-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 작품의 본질은 마법을 못 쓰는 왕녀가 마도구를 발명해 백성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마법은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고, 마법을 못 쓰는 백성들과 구분을 짓는 벽과도 같은 것이죠. 여기까지는 뭐 별다른 게 없는 판타지 소설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귀족들의 특권의식이고, 이 특권의식이 높아지면 마법을 못 쓰는 백성들과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되죠. 더욱이 나라의 건국 시초가 마법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면 왕족이나 귀족들의 우월감은 더욱 높아질 테고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마법을 못 쓰는 주인공 '아니스(이하 여주)'는 귀족들에게서 무시와 괄시, 괴롭힘당하는 건 불 보듯 뻔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걸 보다 못한 남동생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되레 누나(여주)에게 박살이 나버렸죠. 차라리 동생을 밀어주며 귀족들을 일소했다면 2권에서 끝 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그런 이야기가 3권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이야기는 왕위 계승권 1순위였던 남동생이 좌천되고, 포기했던 왕위 계승권이 부활한 여주가 "자신의 마음을 죽이고" 왕이 되려 하자 '유필리아(남동생 약혼녀)'가 보다 못해 대신 왕이 되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여주는 마학을 연구해서 자신과 같이 마법이 없는 사람도 쓸 수 있는 마도구를 개발하여 전파하고 싶어 하는 꿈을 꾸고 있었죠. 이건 돌이켜보면 마학 연구는 사실 자신의 존재 의의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마법을 제일로 치는 나라에서, 그것도 본이 되어야 하는 왕족이 마법을 못 쓴다는 것에서 오는 초조함과 그로 인한 부모(왕과 왕비)에게 불효라는 의식, 딸을 마법 없이 태어나게 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왕비)를 보고 자랐다면 여주는 과연 어떻게 해야 되나 같은 이야기(마학 연구)들을 풀어 놓고 있죠. 하지만 남동생이 좌천되고 왕위를 이을 혈통이 없게 된 시점에서 여주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해왔던 작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돼요.
뜬금없지만 이 작품은 백합입니다. 사실 필자는 여주가 마도구를 개발하고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과정에서 좌충우돌을 겪는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실제로 귀족들은 그녀(여주)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동년배들은 그녀가 왕족임에도 괴롭히는 걸 마다하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여주는 마학 연구를 인생의 모토처럼 해왔죠. 그 과정에서 남동생의 약혼녀 '유필리아'를 만났어요. 남동생에게 약혼 파기 당하고, 그로 인해 귀족계에서 폐기물 취급받게 된 '유필리아'를 여주가 거둬들이면서 여주에겐 여기가 분기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오로지 차기 왕비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아온 폐해인지 유필리아는 수동적인 인물이었고, 이 말은 곧 새장 안에 갇힌 새와도 같았어요. 유필리아는 여주를 만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녀(여주)의 도움으로 다시 귀족계에 복귀할 수 있었죠. 여주의 조수 역할하며 그녀(여주)의 꿈과 바라는 세상과 이념 등을 듣게 된 그녀(유필리아)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게 돼요.
그래서 자신의 꿈을 접으면서까지 왕위를 잇고자 하는 여주를 보다 못해 유필리아가 대신 왕이 되어 여주의 꿈을 지켜 주겠다고 나섭니다. 여주의 꿈은 마법을 못 쓰는 사람들이 보다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리고 마학 연구를 통해 마법사가 되고 싶은 것(존재 의의 연장선). 하지만 이 꿈은 끝났고, 마법이 제일인 나라에서 마법을 못 쓰는 왕녀가 왕이 된다는 것을 귀족들이 반길 리는 없죠. 그러니 가시밭길은 예정되어 있고, 그렇다면 그녀(여주)의 꿈을 지켜주면서 나라를 개혁 시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동안 수동적이었던 유필리아가 자신의 의지로 발을 내디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모험도 마다하지 않은 순애를 보여주기 시작하는데요. 여기서 좀 뜬금없게도 여주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는 작업도 유야무야 되어가는 마당에 자신의 정체성을 마지막으로 지켜주었던 왕족이라는 끈을 유필리아가 가져가려 하자 눈에 뵈는 게 없어집니다. 일이 왜 이렇게 되지? 같은 일이 벌어지죠.
맺으며: 결국은 백합으로 귀결됩니다. 흥미로운 건 그냥저냥의 백합이 아니라 제법 진하다는 것이군요. 더욱 흥미로운 건 사랑하는 님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포기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는 순애를 보여준다는 것이고요.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듭니다만, 건국 시초까지 나오며 이야기가 장대해지는데 결국 유필리아는 여주를 위해 제법 큰 결단을 내리죠. 그래서 순수 백합물로 보면 100점 만점을 줄 수 있는데요. 이 말은 백합을 동반한 순애를 좋아하는 분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찬물을 끼얹자면, 이야기 과정들을 보면 좀 많이 미묘하다고 할까요. 유필리아가 여주를 위해 용기를 내는 장면을 여주는 희생으로 치부하며 말리려 들죠. 수동적인 애가 겨우 용기를 냈는데 왜 인정해 주지 않는가.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쭉정이 같은 딸이 왕이 되면 험한 길 걸어갈 건 뻔한데, 차라리 파벌을 규합해서 개혁을 해버리던가 하지 그저 혼란만 온다고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부모(왕과 왕비)등 좀 답답한 면이 있었습니다. 어이없는 건 왕이 되고자 유필리이가 결단을 내리니까 거기에 편승하는 느낌이 장난 아니더군요. 거기에 중반부부터는 백합에 집중하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 많아요. 부랴부랴 후반에 여주가 바라는 세상을 만든다 같은 땜빵식 이야기를 넣어놓긴 했습니다만. 결국 이 작품의 본질은 백합이고, 그 과정을 잇는 것은 두 사람(여주와 유필리아)이 가진 마음의 완성이 아닐까 했군요. 아무튼 1부 끝입니다. 엔딩을 보면 완결 시켜도 될 듯한데 4권이 나오는 거 보니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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