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녀'는 신(神)에게 사랑받는 아이이지 신의 권한으로 막 신벌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며, 신(神)은 어디까지나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주변을 풍요롭게 하고 병이 없게 하는 것뿐라고 합니다. 요컨대 신(神)은 아이에게 자동 회복 기능을 줘서 걸어 다니게 할 뿐이라는 건데요. 사실 이것만 해도 변변찮게 살아가야 하는 중세 시대 같은 판타지 세계에서 대단한 기능이죠. 주변은 아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식량 걱정, 돌림병 걱정 없이 살아간다는 축복은 현실에서도 대단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작중 이야기는 이런 기능이라도 탐내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항상 트러블(알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표현합니다. 위정자들은 눈이 뒤집혀서 모신다고 쓰고 납치하다시피 데려가서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신녀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들을 보이죠. 그러나 놀부가 욕심부려 제비 다리를 부러트렸다가 똥을 뒤집어썼듯이 이 작품에서도 신녀의 ㅅ자도 들어가지 않은 '언니(놀부)'를 대려 갔다가 나라는 저주를 받아 서서히 멸망해가는 모습들이 참 흥미롭습니다.

이번 2권은 여주 '레룬다'가 수인의 마을에 정착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데 인간들이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여주가 살던 나라가 신녀를 주웠다는 소식에 겉몸이 달아서 병력을 늘리려 수인들을 급습하고 있었는데요. 여주가 살던 수인 마을에도 그 마수가 뻩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여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과 정든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겪게 되죠. 이쯤 되면 인간들이 미워 옛날 선대 신녀가 그랬던 것처럼 증오에 사로잡혀 인간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이야기도 좋았겠습니다만, 작가는 신녀=성녀 공식으로 밀고 가려는지 그런 증오보다는 여주에게 자신의 존재 의의인 신녀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마주하게 하고, 모두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겠다는 맹세하게 하는 장면에서 어른들의 사정에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비참함 같은 게 있었습니다.

아무튼 인간들을 피해 수인들과 함께 정든 마을을 떠나 정처 없이 여행한 끝에 도착한 곳은 엘프들이 사는 곳이었고 여기가 내 고향이 될 수 있을까 했지만 인간보다 더한 차별을 해대는 엘프들에 의해 여주와 수인들은 궁지에 몰려가죠. 이 작품은 파스텔톤 같은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별이 만연한 시리어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여주가 친부모에게 버림받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긴 했지만요. 어쨌거나 인간들은 수인들과 엘프들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엘프는 마법을 못 쓰는 인간과 수인들을 차별하고, 수인들도 상당히 베타적이었죠. 여기서 여주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제시된다고 할까요. 차별이 없고,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말로만이 아닌 이제 8살짜리가 위험한 적(에너미)을 만나 기죽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모두를 지킨다는 게 무엇인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는 장면들은 상당히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신녀는 신(神)에게 어느 정도 보호를 받지만 만능은 아니며, 주변 또한 보호받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예로 여주는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마을과 나라는 쇠락한다", 신녀의 간접적 영향으로 인해 "고양이 수인 마을이 인간에게 습격 당했다", 수인의 마을에서는 여주와 인연이 있는 "수인이 인간에게 죽었고 수인 모두가 마을을 떠나야 했다", 엘프 마을에 도착했지만 이때까지 겪었던 고난보다 더한 고난들이 기다리고 있었죠. 이렇듯 여주가 가는 곳은 항상 사건이 생겨나고, 신녀가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주변은 불행해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던지는데요. 이 말인즉슨 주변은 신녀를 보호하지 않아도 불행해지고, 보호해도 불행해지면 어느 장단에 놀아야 될지 모르게 되죠. 이 부분은 아마 설정 구멍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냥 걸어 다니는 자동 회복 기능만 있는 불행 제조기는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기도 했습니다.

맺으며: 이번 2권은 보다 명확하게 있을 곳과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귀족으로 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는 그런 모습들을 보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밀을 밝혀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고(수인 입장에서는 신녀가 있기에 인간들에게 습격 당하는 거라), 그 탓에 불행을 경험해야 했던 자들의 원망을 들을 각오, 그리고 그 용기를 내는 아이를 탓하기 보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주변 어른들의 하모니는 사실 유치하면서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에 부흥하듯이 1권에서 언니(가짜 신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고 쫓겨났던 왕녀와의 합류 복선은 어쩌면 여주가 바라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와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왕녀는 진짜 신녀가 동생(여주)이 아닐까 어렴풋이 알아가죠. 거기에 이웃나라 왕자도 언니가 가짜 신녀라고 어렴풋이 알게 되자 왕녀와 합류하면서 슬슬 미래의 윤곽이 잡힌다고 할까요. 결국 여주는 왕자와 왕녀를 만나 새로운 나라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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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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