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시중에 풀려 있는 악녀 시리즈나 전생을 통해 과거로 가는 작품 중 대부분이 여자가 여자의 몸에 깃드는 것에 반해 본 작품은 남자가 여자에 깃드는 다소 신선한 소재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신체 구조가 다른 것에서 오는 좌충우돌을 보여줄까 그런 기대를 했었죠.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신체 구조가 다른 것에서 오는 트러블(가령 속옷이나 화장실 문제)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여자가 된 것을 즐기는 거 아닐까 하는 느낌까지 받게 합니다. 물론 필자의 생각처럼 진짜로 이런 소재(신체 차이에서 오는 좌충우돌)를 썼다면 그야말로 라노벨에서나 볼 수 있는 저렴함이라는 지탄을 받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만. 그래서 그런지 복장에 대해 약간 답답함을 토로할 뿐 그 이상의 이야기는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령 목욕탕에서의 서비스씬이나 남자처럼 행동하느라 치마를 휘날리는 판치라를 여과 없이 보여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는 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 것보다는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던 용병이 당대 악녀로서 전쟁의 발단이 되었던 '밀레느'의 몸에 깃든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씩 풀어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밀레느'는 신(神)의 총애를 받을 정도임에도 어째서 악녀가 되어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을까, 밀레느 몸에 깃든 용병은 끊임없이 그 의문을 품어 가죠. 이 시대의 신(神)은 인간을 풍요롭게 이끄는 이로운 신으로서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이 악녀를 총애한다? 그리고 용병이 죽자 과거로 보내 그녀의 몸에 깃들게 한 이유가 무얼까. 여기까지 보면 대단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서막쯤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 2권에서 미약하게나마 미래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단초가 무엇인지 조금씩 밝혀지기도 하죠. 그 예로 마법으로 인격을 조종하는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미래의 밀레느가 악녀로 변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밀레느가 미래에서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1권에서도 밝혀진 흑막으로서 [달의 신들]이라는 사교에 의한 인류 멸망 프로젝트 일환으로 조종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그럼 용병을 과거로 보내 밀레느의 몸에 깃들게 한 신(神)의 의도는? 결국 미래를 보고 겪은 용병에게 [달의 신들]이라는 흑막과 싸워 미래를 바꾸라는 매우 심플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근데 이거 매우 심각한 스포일러 아닌가? 할 텐데 사실 이 작품의 진짜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군요. 필자가 열거한 설정처럼 그렇게 흘러간다면 성공한 대하드라마가 탄생했을 수도 있었겠죠. 근데 실상은 그냥 "학원 라이프"입니다. 학원 라이프만 쓰기엔 뭔가 밋밋했는지 서브 이야기로 그런 설정을 넣어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좀 많이 허술합니다. 뭔가 위기감을 조성하는 흑막이 있고, 그걸 해결하는 주인공이 있으면 멋있잖아요?

이번 2권에서는 용병이 살았던 시대에 전쟁의 시발이 되었던 무녀 '멜리사'가 등장하는데, 멜리사는 미래의 밀레느에게 사형 당하여 전쟁이 일어나게 하는 키포인트 격인 인물입니다. 미래를 잘 알고 있는 용병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죠. 그런데 멜리사는 밀레느 몸에 용병이 깃들기 전부터 그녀(밀레느)의 포악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지라 용병이 깃든 지금의 밀레느 온순해진 성격에 의문을 품으며 주위를 맴돌며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입막음으로 멜리사를 요단강 건너로 보낼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본 작품은 판타지를 끼얹은 학원 라이프입니다. 그것도 현대식이라는 거죠. 거기에 1권 리뷰에서도 조금 언급했지만 백합물이기도 하고요. 얼마 못 가 결국 밀레느(용병) 하렘에 동참하면서 지리멸렬한 학원 라이프를 보여줄 뿐입니다. 이번엔 학원제를 열면서 카페 메이드를 하기도 하는데 보수적인 판타지 세계에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맺으며: 라노벨에서 다소 먹혀 들어가는 설정(위에서 필자가 열거한 것들)을 마련했으면 거기에 좀 집중했으면 좋았을 것을, 기껏 일러스트도 수준급으로 만들어 내고 있으면서 아깝게 남자가 여자 몸에 깃드는 전생이라는 다소 신선한 설정만 있을 뿐 내용 자체는 어디에나 있는 여자애들의 학원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흑막을 끼얹어 이야기의 목표를 설정해두지만 메인은 아니고요. 그렇다면 청춘 학원 라이프면서 풋풋한 내용이라도 좀 넣어주던가 그런 건 전혀 없고 이야기가 상당히 지리멸렬합니다. 내청코처럼 상류층과 하류층과의 불균형과 불건전한(?) 이성 관계를 꼬집는 하치만식 어록이 등장하는 것도 없으며, 판타지 위계질서에 따른 트러블(내가 누군지 알아? 같은)도 없으며, 이웃나라 황녀가 밀레느(용병)에게 푹 빠져서 기숙사 방 배정을 임의로 바꿔 밀레느(용병)와 한 방에서 지내는 이야기에서 뭘 건져야 되는지도 모르겠더군요.

학원제를 열면서 카페 메이드를 한답시고 여러 가지 준비하는 과정도 지리멸렬하고,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고 보수적인 판타지에서 허벅지 위에 오는 메이드 복장으로 접대를 한다? 이럴 거면 뭐 하러 판타지를 끼얹었는가 하는 의문을 느끼게 하죠. 필자가 보수적이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판타지를 끼얹음으로써 제 발목을 잡은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껏 내청코의 토츠카 같은 왕자를 기용했으면 뽕을 뽑던지... 결국 종합하면 작가의 필력이 의심스럽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제목과 일러스트를 잘 뽑아 놓고 내용은 빈약하기 그지없는, 흑막은 흑막답지 않게 들러리로 나왔다 나가리 되고, 세상을 멸망 시킬 정도라면서 이 시대의 위정자들은 다 무능한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주인공(밀레느)이 다 해결할 뿐이죠. 이것도 흥미진진하다면 모를까. 오랜만에 수작이 나왔나 기대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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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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