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이야기는 강대한 힘을 가진 자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그로 인해 결국 그 힘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보여줍니다. 예전부터 필자가 늘 해오던 말이 있죠. 마왕을 무찌른 용사는 새로운 마왕일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아무도 무찌르지 못하는 마왕을 무찌른 용사가 마왕이 없어진 지금, 그 칼날을 우리에게 돌리지 말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왕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용사의 고삐를 누가 잡으며 칼날을 들이밀 때 누가 대적할 것인가. 그래서 용사는 새로운 마왕이 되어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는 운명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힘이란 그런 것입니다. 미지의 힘, 나보다 강대한 힘을 가진 자를 옆에 두었을 때의 느끼는 감정은 든든함이 아니라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자는 자신을 비호해 줄 세력을 필연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사신(死神)일지라도요.

간신히 불사신(不死神)의 분신과 고위직 데몬을 무찌른 주인공은 겨우 평화를 되찾습니다. 변경에서 떠도는 유목민을 규합해 나라를 세우고 안정을 찾아가기를 2년(기억이 가물), 이제 좀 편히 쉬나 했던 주인공에게 200년 전 번성했던 드워프 왕국을 몰락 시키고 줄곧 거기에 잠들어 있는 용(龍)을 퇴치하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용 퇴치라는 모험 이야기는 8~90년대에 보여주었던 판타지의 정석이라 할 수 있기에 나름 향수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덕망 있는 기사와 바람과 화살과 정령을 다루는 하프엘프, 몸이 튼튼하여 탱커 역할을 하는 드워프를 파티원으로 맞아들여 주인공은 여정을 떠나죠. 흥미로운 건 늘씬하고 이쁜 엘프 여성이라든지 주인공에게 호감을 뿜어대는 히로인은 없다는 것이고, 잡몹을 잡아대며 시간을 끄는 것도 없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어떤 목표를 위해 꼬질꼬질한 주인공들이 여행을 하는 그런 풍경을 그리고 있죠.

그렇게 다다른 몰락한 드워프 왕국에서 주인공은 용과 마주합니다. 주인공은 무엇 때문에 용을 퇴치하려는 것일까가 이번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판타지에서 흔히 나오는 잡혀간 공주를 되찾기 위해?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리기 때문에? 작가는 용에게도 용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 역설합니다. 마치 마왕을 무찌른 용사가 필사적인 항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몸부림과도 같은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힘을 가진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타의에 의해서 내 삶이 정해진다면, 그것이 싫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나를 비호해 줄 세력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어둠일지라도 손을 내밀어 붙잡을 수밖에 없는 운명. 그렇기에 용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정하고 주인공에게 예를 다하고 필사적으로 주인공에 맞서 싸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웅을 바라기에 몰락한 용사와도 같은 용은 악당이 되어야만 합니다.

뭔가 본편하고 좀 다른 리뷰가 되어버렸습니다만, 크게 보자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뜻입니다. 강대한 힘을 가졌기에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어 없어질 운명이라면 차라리 분란을 일으켜 눈을 돌리게 함으로서 내 삶을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선악의 구분은 없으며 필연적으로 무고한 희생이 뒤따르기에 주인공은 무고한 생명을 구하고자 이에 맞서죠. 본 작품에 빗대 보자면 용은 몰락한 용사와 같기도 합니다. 강대한 힘을 가졌기에 자신을 비호해 줄 세력을 찾아야 했고, 하필 손은 잡은 게 사악한 신(神)이었다는 것에 운명을 결정 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을 만방에 펼쳤기에 자신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각인시켜버렸고, 그 힘이 사람들에게 향했다는 것에서 용의 운명은 다 한 것이죠. 그렇다면 주인공이라는 세력과 손을 잡으면? 주인공이 용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세력하에 두었다면? 본 작품은 악당이 개과천선하여 주인공 편에 선다는 클리셰는 없습니다.

용의 본질은 인간이 재단할 만큼 무르지가 않다는 것이고, 용의 존재 의의는 전란 속에서만 있기에 주인공과 섞일 일은 없다는 듯...

맺으며: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풀어놓는 장면 장면들은 하나의 시(詩)를 방불케 합니다. 이세계 먼치킨 양산형 라노벨에서 나오는 흔한 성녀가 아닌 정통 판타지에서 진정으로 사람들을 구하고자 노력하는 성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만으로도 본 작품의 가치는 높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성녀 포지션인 주인공이 남자라는 것이지만요. 아무튼 판타지의 느낌으로 접근하면 로도스도 전기 같은 판타지를 보는 거 같다고 할까요. 다만 하이엘프 같은 미모의 여성 엘프가 히로인으로 나오진 않지만요. 사실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정통 판타지의 정석적인 전투씬도 군더더기가 없으며 파티원들과의 연계도 우수하고 서로 믿고 등을 맡기는 장면들에서는 신뢰란 무엇인지도 알려줍니다. 용과 데몬에 맞서며 과거 영웅들이 걸었던 길을 주인공도 걸으면서 전설을 써 내려가는 장면들이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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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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