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신작입니다. 올해 애니메이션으로 방영이 되었으며(11월 1일 자로 넷플릭스에서도 방영 시작), 애니메이션 호조에 힘입어 전격적으로 정발을 단행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일본에서는 이미 14권이 나왔음에도 이제 1권). 내용은 심각한 이지메를 당하던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힘을 얻어 현실에서도 무쌍을 찍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권선징악적인 측면이 강하며, 돼지 오크라 불릴 정도로 못생기고 뚱뚱한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얻은 힘 덕분에 미남(이하 이케맨)이 되어 모두의 선망을 한몸에 받고 신분이 상승한다는 신데렐라식 성장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이 돼지 오크 같던 모습일 때는 할아버지를 제외한 그 누구도 주인공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도 않고 멸시를 하더니, 주인공이 이케맨이 된 후로는 엄청나게 빨아준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은 외모가 제일이라는 다소 위험한 사상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면이 중요하다는 설정도 넣지만 이케맨이 된 후로는 무엇을 말하든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는 방임, 먹을 것을 주지 않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옷도 공원에서 세탁하는 처지에 이르죠. 쌍둥이 동생들은 한술 더 떠서 인간 취급도 안 해줍니다. 학교 친구들은 주인공을 매일 구타하는 것도 모자라 홀딱 벗겨 사진 촬영을 해댑니다. 쌍둥이 동생들도 동조합니다. 나중에 선생도 이지메에 개입했다는 게 밝혀집니다. 돈을 빼앗기고, 얻어맞고 기절하고 눈을 떠보니 달님이 보입니다. 이 일로 어찌어찌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는 잘렸습니다. 이 모든 게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어난 일이죠.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서 양아치에게 능욕 당할 뻔한 히로인1(부잣집 딸내미)을 구해줍니다. 그녀는 못생긴 주인공의 겉모습을 보고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일하게 주인공 편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을 물려받았지만 그걸 또 부모가 빼앗으려 합니다. 할아버지 집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문(도어)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너머엔 주인공을 개변 시켜줄 무언가가 있었죠.

이세계에서 얻은 힘을 현실에서도 쓸 수 있고 이케맨이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이 힘으로 그동안 이지메 했던 나쁜 시키들을 밟아줄 수 있게 되었죠. 또한 빈털터리에 오늘 먹을 양식도 구할 여력이 없었던 주인공에게 이세계에서 얻은 각종 소재는 일본 돈으로 환금도 되어서 며칠 만에 우리 돈으로 억대에 달하는 돈을 손에 넣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분기점이 생기죠. 하나는 돈을 흥청망청 쓰고, 이세계에서 얻은 힘으로 도시를 장악하는 길. 하나는 갑자기 졸부가 되었지만 소심한 성격에 돈을 어떻게 써야 될지 모르고, 얻은 힘도 어떻게 구사해야 될지 몰라 여전히 쭈구리 인생을 사는 길. 작가가 선택한 길은 두 번째 길입니다. 사실 필자가 바랐던 길은 이게 아닌데, 외모가 바뀐다고 성격도 바뀌지 않는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을 보여준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소심한 성격은 그대로죠. 자신감도 없고, 탐험심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권선징악형이지만 그렇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만한 통쾌함도 없습니다.

무쌍은 주로 얼굴이 합니다. 주인공에게 있어서 하루아침이지만, 어쨌건 이케맨이 되자마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쳐다보죠. 여자들은 100이면 100 다 얼굴 붉히며 꺄악~ 거리고, 남자들도 질투보다는 선망을 보냅니다. 옷 사러 쇼핑몰 갔더니 잡지 촬영 제의를 받습니다. 페어로 촬영할 여자 연기자(히로인3)는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해댑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주인공 누구냐며 왜 이리 잘 생겼냐며 휴대폰 셔터 누르고 난리 났습니다. 성별 역전이라도 된 듯 여자들이 헌팅을 해댑니다. 가는 곳마다 현빈이 나와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같은 열광하며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이게 진정 현실이란 말인가. 이 세상 못생긴 남자들이여 어서 이세계로 가세요 같은 공익 캠페인인가? 며칠 전에 편의점에서 구해준 히로인1이 등장합니다. 왜 안 나오나 했습니다. 등굣길에 거대한 리무진을 타고 와 사실 나는 유명한 학원 이사장 딸이고, 우리 아빠가 널 전학 시키려고 하는데 OK? 합니다. 만약 주인공이 아직도 돼지 오크 같은 외모였다면?

전학 갈 예정인 학교에 맛보기로 하루 등교해 봅니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인공만 쳐다봅니다. 세상에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땅바닥을 기며 오물을 씹던 돼지 오크가 오늘은 신데렐라가 되었습니다. 히로인1과 거리에 나갑니다. 사람들이 또 선남선녀 납셨다며 난리를 칩니다. 오! 신이시여 여기가 진정 현실이란 말입니까. 주인공은 이제 내 내면을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좋아합니다. 뭔가 전재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외모가 바뀌니까 주변도 180도 바뀝니다. 이제 어딜 가도 돼지 오크는 없습니다. 잡지 촬영으로 이케맨 그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한 TV 프로그램에 언급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사실 주인공은 친구들에게 너무 두들겨 맞아 죽어가고 있고, 이 모든 상황은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꾸는 꿈일 아닐까. 사람이 태어나서 모두의 선망과 이성의 호감을 받으며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꿈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은 주인공이 죽어가며 꾸는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맺으며: 언제부터 일본 작품들에서 다정한 남자가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필자의 기억엔 일본식 이케맨은 호쾌하고 밝으며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이끄는 마성의 소유자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게 다 한류의 영향일까요. 그 왜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일이 많잖아요. 실제로 일본 여성들에게 여론 조사한 거 보면 한국 남자는 다정하다는 인식이 강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라노벨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한국식 다정함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필자의 망상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본 작품의 주인공의 경우도 이 다정함이 묻어나고 있죠. 극한의 방임과 괴롭힘, 세상에서 나 혼자라는 외로움, 어떻게 발버둥 처도 오늘 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되는 지지리도 궁상인 생활, 시선의 따가움, 언제나 길바닥을 보며 걸어야 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비참함. 과연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특히 주인공은 지금 한창 사춘기죠.

왜 삐뚤어지지 않는가. 부모와 쌍둥이 동생들은 천하의 개x레기고, 할아버지를 뺀 그 누구 하나 주인공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주인공의 다정함은 여자 히로인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듭니다. 이 다정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세계에서? 나도 두들겨 맞으면 다정해질까? 픽션에서 현실을 들이미는 건 어리석다고는 합니다만. 비현실적이기에 주인공 성격을 꼬아 놨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을 괴롭혔던 쓰레기들에 대한 천벌은 이 작품에서 최대의 카타르시스였을 텐데 왜 1회용 엑스타라 악당 처리하듯 해버리는가. 스포일러가 자세히는 못 씁니다만. 주인공에게 깝치다가 허무하게 리타이어는 좀 아니잖아요. 어쨌건 다정함으로 히로인들에게 무쌍을 찍습니다. 이세계에서 히로인2(이세계 왕녀, 히로인3보다 먼저 만남)를 다정함으로 구해주고, 전학 간 학교에서 히로인4(말괄양이)가 들러붙고, 이 작품에서 말하는 무쌍은 이세계에서 얻은 힘이 아니라 얼굴을 뜻합니다. 이넘의 외모지상주의.

이 작품은 돼지 오크 때와 이케맨일때의 사람 반응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1권에서는 돼지 오크 때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케맨의 생활을 극단적으로 끌어내고 있죠. 적어도 주인공이 전학 간 학교에서도 과연 돼지 오크의 모습이라면 반겨줄까, 과연 잡지에 출연할 수 있었을까, TV에서 언급해 주었을까, 히로인들도 반겨줄까 같은 비교하는 철학적인 물음을 던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없습니다. 이게 상당히 아쉽죠. 필자 개인적으로 주인공을 개변 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내게 하고, 이걸 뛰어넘어 무쌍 찍는 걸로 해주었으면 좋았지 않나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외모만이 제일이라는 현실 비판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작가가 이걸 노린 듯합니다만, 진실은 모르겠군요. 아무튼 이러해서 열혈 통쾌함이 없습니다. 다정함으로 포장된 비참함이 있다고 할까요. 왜냐면, 주인공은 그동안의 괴롭힘을 대갚음해 주기보단 품어주는 길을 선택하거든요. 즉, 주인공이 희생하면 모두가 평안해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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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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