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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傳記)물이 그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 거라고 하면, 전기(轉機)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데 전환점을 말하는 거라 할 수 있겠죠. '살아남은 연금술사는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에 이어 이 작품 또한 주인공이 전기(轉機)를 맞이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렌트는 모험가 최고봉인 미스릴 등급을 노리며 오늘도 불철주야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銅)등급 모험가인데요. 그는 어느덧 20대 중반을 맞이해서 중세 시대라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주 볼 나이이기도 하죠. 뜬금없지만 그런 나이에도 정열적으로 던전에 들어간 게 화근이 되어 그만 용(드래곤)에게 먹히고 맙니다.


그리고 응가로 환생,은 아니고 깨어나 보니 어찌 된 일인지 스켈레톤이었지 뭡니까. 이건 그거죠. 드래곤이 그를 잡아먹고 소화 시켜서 응가 했더니 뼈 밖에 없는 시추에이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참으로 현실적이죠. 그런데 왜 하필 최하바리 잡몹이란 말인가. 또 인간일 적 사고방식과 기억 등 몸만 스켈레톤이지 모든 건 인간과 똑같은데, 어째서 스켈레톤... 태세 전환도 참 빠르게 그는 좌절할 틈도 없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존재 진화를 노려 갑니다. 동족상잔을 노려 같은 종족인 스켈레톤을 잡기도 하고 슬라임도 잡고, 그러다 아리따운 초보 모험가 17세 '리나'를 도와주며 그는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게 되는데요.


그는 궁극적으로 인간과 유사한 뱀파이어를 노립니다. 여캐였다면 반시도 괜찮았을 텐데, 여튼 리:몬스터(Re:Monster)라는 작품에 보면 거기 히로인은 뱀파이어로 잘만 진화해가던데 우리의 주인공 렌트는 참 힘들군요. 그야 몬스터 자체가 인간을 유린하도록 설계된데다 구울로 진화하면서 더욱 인간을 덮치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니 견디기가 상당히 힘들 수 밖에요. 그가 아무리 인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의 주인공은 몬스터 그 자체이거든요. 그래서 존재 진화를 거치며 날로 커지는 인간을 덮치고 싶다는 충동과 제어하고 싶은 인간일 적의 마음이 충돌하는 장면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나 여느 작품에서도 다 그렇듯 아무리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이라도 반드시 조력자는 있기 마련인 게 이 바닥의 약속이죠. 그에겐 '로렌느'라는 은(銀)급 여마술사가 조력자로 있어요. 그녀는 엄밀히 따지면 렌트의 소꿉친구 같은 관계이기도 하죠. 이 부분은 좀 안타까운 게 10여 년을 동고동락하며 이변이 없는 한 렌트와 자연스레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였을 텐데 그만 렌트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것이죠. 그래도 모습은 바뀌어도 괜히 오래 사귀어온 사이가 아니라는 듯 방금 구울로 변해 걸어 다니는 시체인 모습의 렌트를 보고도 그를 한눈에 알아보는 장면에서는 좀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그동안 인외의 존재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꽤 많았죠. 이야기도 비슷하기도 했고요. 이 작품도 비슷하긴 하지만 약간 틀린 게 보다 현실적인 측면을 들이민다는 것입니다. 우선 존재 진화에 있어서 만능 도깨비방망이처럼 얼렁뚱땅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생을 좀 많이 한다는 것이죠. 렙업을 하고 진화를 거치면서 몹 때려잡는 건 그리 힘들지는 않는데 진화가 좀 힘든? 흡혈귀 테크를 타면서 인간을 덮치고 싶다는 충동도 심해져 가고요. 위에서도 언급 했지만 이 부분은 참 현식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죠.

이 작품이 뭣보다 좋은 건 주인공 하면 하렘이라는 공식은 이 작품은 채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군요.


주인공 하면 하렘, 이것만큼 꼴불견인 것도 없죠. 물론 다 꼴불견인 건 아니고, 개연성이 없잖아요. 던만추나 단칸방의 침략자처럼 싸우는 희로인이라면, 동료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관계도 없긴 한데 무의미하게 판치라로 날로 먹으려는 작품이 판치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와 같은 작품은 참 찾기가 힘들어요. 물론 히로인이 전혀 안 나오는 건 아닙니다. 로렌느가 있고, 던전에서 구해준 리나라는 초보 모험가도 있지만 적어도 1권에서는 그런 관계(판치라?)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기대가 되는 건 우연을 가장한 교통사고가 아닌 개연성을 쌓아가며 만남을 이뤄가니까 기대가 된다고 할까요.(아직은 복선뿐임)


그렇다고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전기(轉機)라고는 했지만 사실 큰 틀에서 보면 전기(傳記)에 가까워요. 주인공 렌트의 시각 1인칭으로 마치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하듯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그를 중심으로 지금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하고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흔한 개그도 없고 심각해지는 것도 없습니다. 마치 렌트 버전의 '살아남은 연금술사는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를 읽는 듯하였군요.(모르는 분들에겐 죄송) 그래서 몰입도가 별로 없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를 써 내려갈 뿐...


두 번째 문제점으로는 약골 주인공이라도 결국은 먼치킨이 되어 간다는 밑밥을 뿌리고 있다는 것이군요. 재와 환상의 그림갈처럼 언제까지고 찌끄레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남들은 마법과 기력만 써도 능력자로 칭송되는 현실에서 여기에 렌트는 성력까지 쓸 수 있다는 설정을 넣어 놨어요. 그래서 남들은 핀치에 몰릴만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좀 더 대처 능력이 오르고 그러다 보니 광렙과 빠른 진화를 거치며 먼치킨을 향해 달려가죠. 요컨대 흔직세, 그자 후에, 마을 사람과 유사한 루트라고 보시면 돼요. 결국은 먼치킨 최고... 


맺으며, 인외의 존재가 되어 살아간다 같은 주제로 한 작품은 꽤 많았기에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죽었을 때 타인에게 각인된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만큼 되는지 같은 설정은 잘 없는 주제였기에 좀 신선하긴 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렌트에게 도움을 받고, 인도받아 개과천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면서 주인공의 성품은 이러하다라는 것은 좀 깨긴 했지만 잘 없는 주제이기도 하죠. 근데 돌려 말하면 귀찮은 일은 전부 렌트에게 떠넘긴 거잖아!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가 20대 중반까지 동등급으로 지내오며 괄시 당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한데 좀 씁쓸하죠.


마지막으로 1권은 사실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습니다. 초반 주인공이 구해준 '리나'라던지 후반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반라(옷을 다 입지 않은) 여마법사라던지, 그리고 주인공을 잡아먹고 똥으로 승화시킨 용(드래곤)의 복선이라던지 전기(傳記)물 같으면서도 복선을 많이 투하 해놨어요. 복선을 유추해보자면 필자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이 작품 역시 주인공을 신격화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군요. 그야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가 만년 동급 찌그레기를 보다 못해 똥으로 승화 시켜 편법(뱀파이어)으로 힘을 길러 주려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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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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