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도 경고 했듯이 스포일러가 강합니다. 알아서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이 작품은 소설가가 되자에 연재되고 있는 흔한 이세계물입니다.이세계물이야?라고 하셔도 이 작품이 나오던 시기가 그런 시기였으니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아닐까도 싶군요. 하지만 흔한 이세계물 클리셰를 표방하고 있다고 해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성향은 달라진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작품의 작가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려고 했는지 이세계하면 치트 킹왕짱 주인공을 벗어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기력한 아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주인공이 아싸인 경우는 참 드물죠. 무늬만 아싸인 경우도 있고, 아무리 비주류 주인공이라도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쁜 히로인이 몇 명이나 붙는 현실과 동떨어진 부조리한 면도 보여 주기도 하였고요. 아직 1권뿐이긴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게 없습니다.

 

'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 나만 집에 가는 학급 전이, 클래스 통째로 인외전생'이라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한 학급 전체가 이세계로 넘어간다는 것인데요. 이 작품 또한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여기서 더 진화하여 학교 한 개(대략 1천 명)가 이세계로 넘어가는 황당한 이야기로 이뤄져 있어요. 거기서 주인공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서 최하 카스트에 포진하죠. 다른 학생들은 치트를 얻어 조금식 강해져 가고, 개중엔 범상치 않는 두뇌 회전으로 일명 인싸들이 주도해서 콜로니라는 마을을 건설하는 등 학생들을 규합해 나가고요. 이런 부분은 '나만 집에 가는 학급전이'와 '통째로 인외전생'에서 보여준 대목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여기서 집이나 짓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죠. 여기까지 보면 뭐 그 흔한 콩쥐 취급이라는 클리셰라 보셔도 무방할 겁니다.

 

하지만 괜히 나만 집에 가는 학급전이와 통째로 인외전생이라는 작품을 들먹인 게 아닙니다. 이 작품의 공통점은 도덕적 해이, 그러니까 모럴해저드를 들 수가 있죠. 현실 법률이, 자신들을 질서라는 명목으로 구속하던 법률이 없어졌을 때 인간들은 얼마나 추악해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까요. 질서와 무질서가 충돌하고 애꿎은 선량한 사람들만 죽어나가는, 혹은 무질서에 기대어 내 몸 하나 간수하려고 몸도 마음도 다 퍼주는 추잡한 본성이라던지. 아직 사회라는 개념과 법률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그것도 1천 명이나 되는 거대 집단이 자기들이 살던 곳을 벗어나 밀림 한복판에 떨어진다면?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할 수 있죠. 거기에 힘을 가진, 일명 치트라는 능력에 눈을 떠 힘(권력)을 손에 넣었을 때. 미국에서 이런 걸 실험한 영화가 있었죠? 제목은 생각 안 나지만...

 

주인공 '타카히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폭도로 변한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해야 했고, 얻어맞고 있는 자신을 외면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그만 인간 혐오에 걸리고 말죠. 그렇게 흠씬 두들겨 맞다가 어찌어찌 어떤 동굴까지 기어 오긴 했는데... 죽어가며 다잉 메시지 남기듯 자신을 구타하고 외면한 학생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죽어가던 그때 그는 만납니다. 흔직세의 주인공 나구모에게 유에가 있다면, 방패 용사에게는 라프타리아가 있다면, 이 작품의 주인공 타카히로에겐 '슬라임'이 있습니다. 예, 그 롤플레잉 게임에서 최약체로 평가받고 있는 그 몬스터요. 다른 놈들은 그럴싸한 치트를 얻어 가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그냥 필자의 비유적), 눈물이 찔끔 쏟아졌건만 이제야 내게도 치트가 왔구나!!!!!!!

 

주인공 타카히로의 능력은 몬스터 테임, 쉽게 풀이하면 사역마라고 할까요. 근데 아무 몬스터나 사역이 되는 건 아니고, 꼴에 상성이 맞아야 테임이 되는 황당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지죠. 그렇지 않아도 아싸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몸으로 뭘 어떻게 몬스터를 테임 하라고, 이세계는 조그마한 마물 쥐가 거대 곰을 때려잡는다는 먹이사슬이라는 근본 패러다임을 뒤집고 있는 세계인데. 그러니까 주인공은 마물 쥐도 못 잡는 허약한 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에게 한 가지의 치트를 부여하죠. '상성'이 맞으면 테임이 된다는, 그러니까 밀림을 싸돌아다니다 보면 알아서 테임이 되니 요령껏 해보라는 무책임한 발상을 던져 놓습니다. 그 첫 번째가 운 좋게도 거대 슬라임이라 하겠습니다. 이름은 '릴리', 죽어가는 주인공을 잡아먹으려다 그에게 테임이 되어 버리죠.

 

자, 릴리를 얻었으니 용기백배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찌질한 아싸는 서툰 용기 밖에 내질 못해요. 자신을 두들겨 패던 학생들 때문에 인간들은 믿을 수 없게 된 불쌍한 몸을 이끌고 주변을 정찰하다 뜻하지 않게도 어떤 여학생과 조우하게 됩니다. 이미 숨을 거둔, '미즈시마 미호' 그녀를 릴리에흡수시키는 주인공, 그리고 그녀(미즈시마)로 의태 한 릴리, 표지모델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릴리의 몸을 빌려 기억만 되살아난 미즈시마(릴리)에 의해 참담한 현실이 주인공에게 들이대집니다. 모럴해저드, 법률이 없어진 이세계에서 약자들이 처할 현실이란 글로 언급해서 무얼 할까요. 그리고 근처 산장에서 '카토'라는 만신창이가 된 여학생을 구출해냅니다. 현실은 더욱더 주인공에게 인간들은 믿을게 못된다고 역설하기 시작하죠.

 

주인공 성격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을 뺀 나머지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읽으면 읽을수록 찌질한 주인공을 욕하다가 어느새 주인공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했군요. 아무튼 릴리에 이어 '로즈'라는 목제 인형까지 테임에 성공하며 조금식 전력을 늘여갑니다. 그리고 테임에 의한 주종 관계에서 시작되는 맹목적인 관계라고 해도 절대 배신하지 않는 사역마(릴리와 로즈)들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하는 주인공, 얼마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었으면 그들(릴리와 로즈)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까지 내비치니 이 정도면 다른 의미로 불쌍해지기 시작하죠. 그야 몬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형국이니까요. 근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작가의 필력인데요. 분명 인간과 몬스터간의 이질적인 사랑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몰입도가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표현력이 딸려서 어떻게 써야 될지 감을 못 잡겠습니다만. 55페이지 미즈시마 미호의 시신을 릴리에흡수시킬 때 괴물과 인간의 경계를 지키려는 주인공의 마음이 참으로 절절하다는 것과 71페이지 릴리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장면은 참으로 드라마틱 하지 않을 수 없었군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몬스터 주제에 행동력에 있어서 인간에 매우 가깝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너무 심하게 한다는 모순을 후반에 풀어 내면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게 뭣보다 좋았군요. 하지만 이런 점은 매우 불안한 미래를 비추기도 하죠. 그야 얘들 몬스터니까요. 그것도 말을 하게 된 레어를 넘어 유니크한 존재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들켰을 때 어떤 처우를 받을까. 얘들보다 더 강한 치트를 가진 학생들이 널린 이세계에서...

 

맺으며, 사실 모럴해저드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고 주인공에게 시각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모럴해저드의 희생자들을 만나고, 가해자들을 만나 응징하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본래의 마음, 사람이 사람으로 있기 위한 마음이 망가져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게 하죠. 그 망가진 마음을 릴리와 로즈가 치료해가는 모습도 참으로 인상 깊고요. 단순히 테임으로인한 주종 관계가 아닌 주인공 마음에서 비롯된 참된 만남을 강조하면서 읽는 이에게 감정이입 시키는 재주가 참으로 좋습니다. 정말 몬스터 맞나 싶을 정도로 저마다 특색 있는 성격하며, 산장에서 구출한 '카토'와의 의견 충돌에선 더 이상 인간과 몬스터의 경계는 찾을 수 없었군요. 이건 나쁘기도 하고 좋은 점이기도 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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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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