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자동판매기로 다시 태어난 나는 미궁을 방랑한다 2권 리뷰
자판기 마니아가 자판기에 깔려 죽어서 깨어나 보니 이세계에서 자판기가 되어 있더라라는 게 이 작품의 이야기 골자입니다. 누군가가 옮겨주지 않으면 제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물건을 사주지 않으면 포인트 하락으로 기능 정지에 빠지는 주인공으로서는 아주 골 때리는 이야기죠. 게다가 대사도 '어서오세요. 꽝입니다.'등 입력된 몇 가지 언어 밖에 할 수 없어 커뮤니티에 애로사항이 꽃을 피워요. 아니 애초에 사람 만날 수나 있나 싶을 정도로 허허벌판에 떨어져 이제나 저제나하고 있으니 내 팔자가 왜 이리 드럽냐고 한탄하는 것도 어쩔 수 없겠죠. 있는 거라곤 마물들이고, 얼쩡 거리며 작데기로 쑤시는데 참 고달프기 그지없어요.
그때 등장한 게 히로인 랏미스(표지 모델 아님), 괴력의 소유자로 무게 400키로나 나가는 주인공 자판기를 힘 하나 안 들이고 들처 매 어디든 옮겨줍니다. 근데 만남은 허허벌판인 건 틀림이 없는데 1권을 읽은 지 1년 5개월이나 지나서 이들이 그때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군요. 어제 먹은 반찬도 생각 안 나는데, 아무튼 랏미스는 주인공 자판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자판기는 그녀를 아껴 주게 되었다는 것만은 기억에 있습니다. 랏미스 덕분에 사람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지만, 마물이 마을로 쳐들어오고 개판되고 박살 나고 주인공이 도와주고 밥 제공하고 그렇게 해서 주인공은 마을에 받아들여지게 돼요.
그래서 주인공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나 없으면 못 사는 몸으로 만들어주지'랄까요. 맨날 푹 삶은 풀떼기와 질긴 고기만 먹다가 부드러운 닭튀김이나 차가운 음료수 같은 거 먹어봐요. 1박 2일 예천 편에서 이수근이 라면 끓이다가 은지원이 준 소고기 먹고 라면(끓이지 않은 거) 내동댕이 치는 거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렇게 떼돈을 벌어가는 주인공입니다. 메뉴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현세에서 만난 모든 자판기에서 팔던 물품을 소환할 수 있다는 먼치킨도 이런 먼치킨이 없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정말 온갖 음식을 다 내놔요. 19금 잡지도 있고요. 공구도 있습니다. 수건도 나오고, 속옷도 나왔던가. 드라이아이스도 나오고, 간이 화장실도 나오고...
그렇게 나대다가 그만 도적들에게 납치당하고 말죠(1권에서). 샘통, 도적들 소굴에서 휴루미(표지 모델)라는 랏미스 소꿉친구를 만나요. 그녀는 사이언티스트로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입니다. 그런 그녀가 도적들에 잡혀 있는 걸 주인공이 발견하고 친구가 돼요. 보통 탈출해야 되는데, 주인공을 들 수 있는 건 랏미스 밖에 없으니 그녀가 올 동안 이야기나 하죠. 그렇게 휴루미는 주인공에 푹 빠지게 되는 히로인 2호가 됩니다. 너도 나 없으면 못 사는 몸으로 만들어 주지. 그렇게 마을로 돌아와 또 장사를 시작합니다. 마을을 재건하는 사람들에게 물품을 싸게 공급하고 그들과 소통을 이어가죠. 단어는 한정되어 있지만 어째서인지 다들 알아듣는군요.
그렇게 2권이 시작되고 어영부영 마을 이야기로 페이지 절반을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던전에서 일어나는 이상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랏미스와 휴루미 그리고 모험가 클랜(파티)들과 모험을 떠나요. 주인공의 역할은 밥 셔틀, 모험에 있어서 물자 보급은 참 골치 아픈 일이죠. 그걸 해결해준 게 주인공 자판기, 근데 일단 돈을 받고 있으니 셔틀이라는 말은 빼는 게 좋겠군요. 그리고 예상대로의 전개가 벌어집니다. 엄청 짱쎈 계층 터주(주인)의 등장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이대로(자판기로) 살아가도 좋으냐?라는 물음을 던지듯 시련을 선사하죠.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계층 터주의 등장은 400키로나 나가는 주인공에게 여기에 남아라고 합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저 대사가 이토록 심금을 울릴 줄은 몰랐습니다. 계층 터주에게서 일행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남아 미끼가 되어야 하는 현실, 멀어져 가는 일행을 바라보며 주인공은 그 자리에 남아 결의를 다집니다. '자판기는 자판기만의 싸움 법이 있다.' 그리고 시작되는 자판기의 대모험, 활극? 자신이 왜 싸우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을 받아준 마을과 사람들이 고마웠던 것인지, 인간과 똑같이 대해준 게 고마웠던 것인지, 외로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말을 걸어주고 곁에 있어준 게 고마웠던 것인지. 분명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힘낼 수 있었을 거라는, 버려졌다는 마음 보다도 '그녀(랏미스)가 올 동안'이라는 대사에서 이들의 유대는 정말 끈끈하다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맺으며, 역시나 인간화 복선이 나와 버렸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으로써는 좋은 일이나 자판기로서의 가치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인간화된 주인공에게서도 똑같은 가치를 느껴줄까 하는 물음을 던지죠. 랏미스의 경우엔 갈수록 얀데레끼를 보여주고 있어서 주인공이 인간화가 된다면 반겨줄 것도 같긴 합니다만. 문제는 자판기 대모험을 계속해야 된다는 거군요. 아무튼 소재로서의 한계 때문인지 먹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1권은 좀 괜찮았으나 2권은 식상한 듯한 그렇게 신선함 감은 없었습니다. 맨날 새로운 먹을 것과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도구 같은 걸 내놔서 위기를 넘겨가니 말이 자판기지 이세계 먼치킨 범주를 벗어나진 않는다고 할까요. 도라에몽이 자판기로 태어나면 이런 느낌? 진구는 랏미스고요. 멍충한 게 이미지가 딱 맞는...
마지막으로 3권이 나온다고 해도 구매할지는 모르겠군요. 2권도 후반부에 자판기 대모험이 약간 흥미로웠을 뿐 이거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나무야 미안해를 연창할뻔 하였는데요. 이 작품도 소설가가 되자 출신인지 스킬이라던가 능력에 대해 나불나불 늘어놓다 보니 읽는데 좀 고역스러웠습니다. 랏미스와의 관계는 개연성이 없는 그냥 주인공의 자그마한 친절에 빠져드는 히로인 같아서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군요. 1권 때는 높은 점수를 줬는데 2권 때는 극명하게 갈리는 혹평을 주다니 이것도 라노벨이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다못해 주인공이 이용당하거나 납치되어 고초(해부)라도 당하는 씬이라도 있었으면 흥미진진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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