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민족을 이끄는 '린'이라는 족장을 만나 내일 세계가 멸망한다는 말을 들어 버렸습니다. 한 학급을 넘어 중고등 모든 클래스가 이세계로 전이되고 이제 3일이 지났군요. 첫날 습격해오는 오크 무리들에 의해 학교는 유린당한 끝에 대부분의 남학생은 사망, 여학생은 극히 일부만 빼고 대부분이 레이프 당해버리는 라노벨계에 있어서 초유의 사태를 보여 주었는데요. 그렇게 유린 당하다 2일째 반격의 실마리를 잡아 오크들을 무찌르기 시작하고 3일째 몰아내는데 성공했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건 상처투성이로 점철된 몸뚱어리뿐, 어찌 되었건 이제야 한숨 놓나 했는데 근처에 살던 수인족(빛의 민족) 족장 린(무려 고양이 귀가 돋아난 무녀)이 내일 세계가 멸망하니 좀 도와주지?라고 하니 사람 좋은 주인공은 네! 그럴게요!라고 해버리고 말아요.

 

오늘 하루 살아가는 데만 해도 급급하였는데 졸지에 세계를 구해야 하는 특명까지 받아 버렸습니다. 사실 근처에 학교가 떨어진지 몰랐다고는 하지만, 아니 신탁을 받을 정도로 실력 있는 무녀가 대규모 전이 사태를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되고(작가가 정신을 딴데 판 듯), 학생들이 유린당할 동안 구조도 안 해줘놓고 이제 와서 세계를 구해 달라니 이런 미친x이 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주인공 입장에서는 해줘도 되고, 안 해줘도 되지만 내일 당장 이세계가 멸망한다는데 손놓고만 있을 순 없었겠죠. 린이라는 무녀도 말하는 뉘앙스를 보자면 '너희들 동귀어진 해볼 테냐?'이니 참 거식하다고 할까요. 하지만 주인공 일행과 만난 후 이들을 도우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정말로 전이 사태를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무튼 내일 멸망 전조인지 계속해서 마물들이 쳐들어 와요. 대규모 아라크네 부대를 만나 이세계 주민을 고기 방패로 쓰며 내가 살기 위해 주변 모든 것을 이용해주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주인공의 사이코패스 성격은 여전했습니다. 아무리 후위직인 부여마법과 소환마법 뿐이라지만 여자애들만 앞세워 죽도록 싸우게 하는 건 양심에 좀 찔리지 않나 싶은데 그딴 거 없어요. 초반엔 이놈 명령 때문에 어떤 여학생은 오크가 내리치는 칼에 두 동강 나버렸죠. 이번에도 그래요. 여자애들을 구해준 건 내가 살기 위해서 지 자선으로 구한 게 아니라고, 사실 주인공이 하는 행동은 카르네아데스의 판자와 유사하긴 합니다. 일단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나라도 살아야지 같은, 하지만 적어도 죄책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좀 비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자위할 뿐이죠.

 

이런 말 늘어놓을 거면 왜 보냐는 말이 나올 거 같군요. 필자는 어딘가 M기질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만큼 이 작품은 S기질이 강해요. 어딘가 성격이 파탄 난 주인공과 그 주인공을 어미새 따르듯 하는 히로인들, 희망이라고 떠들면서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거라든지, 오크 떼 공격에서 살아남은 일부 남학생들이 보여주는 마물보다 더 심각한 원초적 본능을 무기 삼아 여학생들을 노예화하려 했던 거라든지, 이세계 주민은 잘도 고기 방패로 썼으면서 적대하는 학생들을 죽이는데 망설이는 주인공의 이중성, 이런 것들이 복합이 되어 짜증을 불러 오면서도 한편으로는 흥미를 불러오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이번엔 4권만큼 욕하면서 읽지는 않았군요.

 

맺으며,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 작품도 나름 잘 짜여진 구석이 있긴 합니다. 이세계로 전이 당한 것도 모자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죽어 버리고 거기에 도덕적 해이까지 곁들어지니 아포칼립스의 진수를 보여주었죠. 주인공의 내가 살기 위해 주변 모든 것을 이용한다는 파탄 난 성격하며, 그걸 좋다고 따르는 히로인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역설합니다. 그럼에도 내일을 살기 위해 기어서라도 나아갈려는 모습이 참 애잔하죠. 사실 이런 아포칼립스적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긴 합니다. 돌이켜보면 작가는 그걸 잘 풀어내고 있다고 할까요. 4권에서 뜬금없는 진행 때문에 다소 산만해지긴 했지만 일단 6권이 나오면 읽어는 봐야겠군요. 마지막으로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1~3권은 8점, 4권은 3점, 5권은 6점 정도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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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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