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녹을 먹는 비스코 2권 리뷰 -선행은 사람을 봐가면서 하자-
스포일러가 조금 들어 있습니다. 글도 좀 길군요. 싫으신 분은 빽 하시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녹병에 걸려 오늘내일하는 아버지와도 같은 스승을 치료하기 위해 녹식이라는 영약을 찾아 헤맸던 비스코는 그만 녹식과 한 몸이 되어 불사의 능력을 얻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금방 낫게 해버리고, 나이를 먹지 않게 하는 신비의 영약 '녹식', 불로장생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얼마나 축복받은 물질이란 말인가. 거기에 녹에도 강하니 녹병이 만연해 다 죽어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없어선 안 될 영약이라고 할 수 있죠. 자, 걸어 다니는 영약 비스코는 전국을 떠돌며 사람들을 치료하는 나이팅 게일이 될 것인가. 그딴 거 내 알 바 아니고 이런 체질 바라지도 않았다며 원래의 몸으로 되돌리기 위해 미로와 함께 여행을 떠나요.
선행은 사람을 봐가면서 하자
이번에 비스코의 고향에 들리기 위해 중간 기착지로 시마네 현을 찾았던 비스코는 거기서 자신들을 사칭하는 일단의 무리를 만나게 되고 못된 짓을 일삼는 그들을 혼내주기 위해 아지트를 급습하는데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사칭꾼들은 다 죽어있고 아지트 지하 감옥에서 간신히 말라비틀어져 다 죽어가는 노인을 한 명 구하게 됩니다. 이 노인은 사람 의심할 줄 모르는 비스코에게 선행이라는 독이 얼마나 끔찍한지 몸소 겪게 되는 사건의 발단이 되죠. 이미 사칭꾼들이나 지하 감옥에 갇혔던 다른 사람들 모두가 죽어 있는 시점에서 의심을 해야 하건만, 오늘내일하는 노인이 설마 뭔 힘이 있겠어하는 생각을 가졌을 테죠. 아마 비스코는 이 비쩍 마른 노인에게서 자신의 스승을 엿봤을 수도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작중 간간이 자신의 스승을 언급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방심했겠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자신(비스코)의 위(소화기관의 그 위)가 노인의 손에 들려있는 시점에서 자신의 멍청함을 한탄해봐야 늦을 뿐이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불사승정 '켈싱하'에게서 위를 되찾기 위한 공방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비스코의 수명은 앞으로 대략 5일, 녹식과 한 몸이 되었길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즉사였을 터. 기아감에 허덕이며 불사승정이 숨어든 '이즈모 육탑'에 침입하여 켈싱하를 찾지만 나비 날갯짓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사태는 매우 심각하게 흘러갑니다. 숨어든 '이즈모 육탑'의 분위기는 어딘가 세기말 종교틱하고 집단적 광기를 품고 있고, 거기에서 말라 비틀어 전 노인 '켈싱하'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죠. 그리고 졸지에 일본 전역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 아포칼립스가 도래합니다.
나비의 날갯짓은 태풍을 넘어 종말적 시련으로...
이건 마치 이누야사의 '나락'과도 같은 형국이랄까요. 필자가 식견이 좁아 빗댈 마땅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는데요. 처음엔 별거 아니었던 마물과도 같았던 인물이 갈수록 강대한 힘을 얻어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에 위협으로 성장하는 악당이 바로 켈싱하가 되겠습니다. 불사의 능력을 얻어 수백 년을 살아오다 뻘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자기가 거느리던 밑에 사람들에 의해 힘을 빼앗긴 채 쫓겨나고, 복수와 더불어 힘을 되찾기 위해 내가 왔노라 하며 복귀해서 아수라장을 펼쳐대요. 그것에 일조한 게 비스코의 위가 되겠습니다. 녹식의 힘을 흡수하여 강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비스코의 위를 이용해 차례차례 자신을 쫓아보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고, 위를 찾으러 온 비스코와 일기토를 벌여가죠.
이 과정에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휩쓸리고, 켈싱하를 막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싸우지만 어디에나 있는 권력과 암투와 시기 등이 맞물려 더욱 아수라장으로 변해 갑니다. 그리고 어째서 이런 흐름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켈싱하의 복귀로 인해 일본 전역이 위험에 처하는 아포칼립스의 도래는 일이 커져도 너무 커진 느낌을 받게 합니다. 비스코의 방심이 불러온 나비 날갯짓이 세기말 종말론에 불을 지펴 버려요. 게다가 선량한 사람들까지 휘말리는 통에 이 감당을 어떻게 할까 했는데요. 하지만 마이웨이인 비스코는 그런 거 안중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미로는 비스코의 위를 찾기 위해 거의 얀데레가 되어 날뛰는 모습은 작중 분위기를 더욱 시리어스로 만들어 버려요. 거의 광기를 보여주는데 미로가 여자애였다면 심금을 울리는 신파극이 되었을 텐데 좀 아쉬운 부분이었군요.
그리고 종말론을 넘어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즈모 육탑에서 비스코와 미로는 '라스케니'라는 여성과 '암리'라는 소녀를 만나요. 이들의 조력을 받아 켈싱하를 뒤쫓지만 으레 이런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면엔 무언가가 감춰져 있다는 게 통례(?)죠. '암리'는 다 죽어가는 비스코를 치료해주며 켈싱하와 전투를 벌여가면서 인연을 트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암리의 바램을 듣게 되고 비스코는 이뤄질 수 없다는 현실을 들이밀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보여줍니다. 무언가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감정과 기댈 곳을 찾고 싶은 아이. 그걸 비스코에게서 발견하지만 현실을 냉혹하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비스코의 위를 되찾기 위해 날뛰던 미로 또한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죠. 거기에 말라깽이 켈싱하 또한... 격전과 격전을 펼치며 비스코는 암리와 켈싱하에게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이 과정에서 비스코와 미로가 보여주는 동료애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뛰어넘고도 남았는데요. 정말 사나이들의 우정이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눈물을 뽑습니다.
맺으며, 세기말을 표방하고 있어서 피가 튀는 전투씬은 그렇다 치더라도 1권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본 지명과 한문이 너무나 많이 나와서 읽는데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교와 비슷한 종교가 이번 테마다 보니 아무래도 중국 쪽 분위기가 많이 풍기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녹에 대한 복선이 투하되었는데요. 뭐 신선한 건 없고 세기말 종말적인 분위기라고 하면 역시나 빠질 수 없는 게 진화론이죠. 그리고 거기에 한 발 앞서가게 된 미로, 이번에 광기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주며 사실은 비스코를 사랑(?) 해서 날뛰었을 뿐 난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하는 부분은 조금은 귀여웠군요. 거기에서 둘이 보여준 동료애는 참 심금을 올립니다. 하지만 다 좋은데 기승전결이 아쉬웠습니다. 한 번 결착 냈던 걸 또 비슷한 전투를 벌이는 이중적인 장면은 좀 질리게 했군요. 위에서 언급한 사랑이라는 테마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긴 합니다만. 뭐 반전이라는 것도 있었고...
아무튼 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는데 예전 같으면 낯간지러운 글을 대거 썼겠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창피함이 앞서서 이젠 글로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었군요. 중반에 비스코와 미로의 동료애라든지 후반에 들어 갑자기 사랑이라는 테마를 집어넣으면서 조금 어리둥절 해졌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사랑으로 이뤄져 있고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사랑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보다 관심을 주고 가족이나 타인을 대했다면 미래는 바뀔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거 같았군요. 스포일러라 자세히는 언급 못하지만, 암리와 켈싱하의 관계, 암리와 비스코의 관계, 그리고 켈싱하에게 좀 더 관심을 줬다면 고통받는 사람은 없었을 거라는 뉘앙스. 사실 호쾌하고 통쾌한 액션이 주류인 작품에서 이런 테마는 좀 아니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작가의 필력이 좋으니까 다 용서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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