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성녀 두 명+마녀 1명의 기습으로 심복 '아투(메인 히로인)'를 빼앗기고, 탈환하는 과정에서 힘을 너무 써버린 주인공은 혼수상태에 빠졌었죠. 그리고 깨어나니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아직은 불완전한 나라 '마이노그라'의 입장에서 주인공의 부재는 큰 타격으로 다가오죠. 이에 이번 6권에서는 주인공의 기억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주인공 대리 자격으로 나선 '아투'는 자신에게 있어서 천적인 새로운 영웅 유닛 '비토리오'를 소환합니다. 그의 능력이라면 주인공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한편 주인공과 성녀 두 명+마녀 1명과의 사투에 의해 신생 레네아 신광국의 수도는 초토화되어 버리고, 엘푸르 자매에 의해 전염병(죽을 병은 아님)과 대량 기억상실이 만연하게 됩니다. 성녀 두 명은 마녀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가까스로 도주, 현재 행방불명이 되었죠. 이건 차후 '마이노그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주인공 말살로 성왕국 퀄리아로부터 억지 부려 분가했으면서 되레 역습 받아 멸망했으니 성녀 자격은 박탈될 것이고, 자칫 이단으로 몰려 죽기 싫으면 주인공 편에 설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복선으로 다가오죠.

새로운 영웅 유닛 '비토리오'는 주인공 부활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단박에 이해하고 행동에 나섭니다. 자고로 신(神, 주인공은 파멸의 마왕이지만)에게 필요한 건 신도. 신도는 신에게 염원을 담아 기도를 바치는 것. 신(神)은 신도가 있기에 성립되는 것, 고로 신도가 있으면 주인공 부활? 그 신도는 어디서? 주인공이 궤멸시킨 레네아 신광국 수도가 있잖아요. 자고로 괴로움에 허덕이는 민심을 달래는 데 있어서 종교만큼 그것도 사이비틱한 사탕발림이라면 넘어오지 않을 사람이 없겠죠. 그렇기에 기도합시다? 주인공이 얼마나 위대한지 함 들어 보실래요? 행복해지고 싶죠? 그럼 우리 교단(소환되자마자 사이비 종교 만듦)에 들어오시죠? 이건 필자의 유머가 아니라 '비토리오'의 성격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인공이 부수고 엘푸르 자매가 병을 만연하게 해놓고, 시치미떼며 구원해 준다고 하니 이보다 개그는 없죠. 자, 기도를 바칩시다. 그리고 주인공 부활은 하는데, 사실 일이 이렇게 잘 풀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비토리오'는 제어 불가능한 사기꾼이거든요.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는 이세계에서 '비트리오'는 현실 게임 설정 그대로 제어 불가능 유닛이죠.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선(善)의 진영인 퀄리아 신광국의 만행을 들 수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신(神)을 유일신으로 칭송하고, 신의 말씀은 절대적이고, 자신들이 정의고, 자신들에게 거슬리면 악이 되는 사고관을 탑재한 채 그에 따라 조금이라도 신에게 의문을 품으면 이단으로 간주하죠. 악(惡)의 진영이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마이노그라'와 대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고, 궤멸된 레네아 신광국 수도의 재건을 위해 찾아온 [일기의 성녀]와 이단 신문관 '크레에(히로인)'의 기구한 운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토리오'의 사기꾼 기행과 이번 6권에서 중요한 포지션이 되죠. 성녀로서의 자질을 보이자 아버지와 강제로 헤어지게 되고, 성녀로 활동하면서 오로지 아버지와 재회 하기만을 고대하는 성녀의 바람을 옆에서 줄곧 봐왔던 '크레에'는 이단 신문관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성녀로서 똑바로 하라고 다그치기보단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말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장면들은 애잔하게 하죠. 크레에는 선한 일을 계속하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그녀(성녀)를 보며 결국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습니다.

그래서 선이 되어야 할 세력(성광국)이 악이 되고, 악으로서 철저히 세계를 유린해야 될 세력(주인공)이 선이 되는, 즉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이지만 악이 될 수 있고, 악이지만 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선의 진영인 성녀와 성광국은 집단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규제와 단속은 악으로 다가오지만 본질은 사악(주인공 진영)으로부터 백성들 구제이지 무고하게 죽이진 않으며, 주인공은 세상을 사악으로 물들이는 악이지만 결코 사람들을 해할 마음은 없죠. 오히려 모양은 기괴하지만 사람들을 위해 식량 생산에 열을 올리고, 다친 사람들을 보살피니까요. 그래서 '크레에'는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게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성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옆에서 보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괴로움, 도움을 주는 것 자체가 교리에 위반(한마디로 성녀로서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에 해당하기에, 선의 진영에 있으면서도 어린 소녀를 혹사 시키는 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그녀는 성녀를 구원하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시종일관 자신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진영엔 자유가 있죠. 크레에는 성녀가 구원받길 희망합니다. 선의 진영에 있으면서 자유롭지 못한 성녀를 위해,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그녀(크레에)에게 다가올 미래는... 성녀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7권에서..???

맺으며: 사상 최강의 일기의 성녀의 등장은 주인공 세력으로 하여금 후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면들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그 일기의 성녀의 아빠를 그리는 마음과 백성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부딪혀 자유를 잃어버리는 기구한 삶은 애잔하게 만들죠. 그런 성녀를 구원하고 싶은 '크레에'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적대 관계인 주인공 세력에 손을 내미는 장면도 애처롭습니다. 여기서 좀 아쉬운 게, 일기의 성녀와 크레에 관련 이야기를 이번 6권에서 매듭짓지 않았다는 것이군요. 일본에서도 아직 7권이 안 나왔는데. 제어 불가능 비토리오가 주인인 주인공을 컨트롤하려다 되레 역습 당하는 장면은 그가 보여준 기행 때문에 사이다를 연출합니다. 그가 보여주는 기행 중 하나가 보통 라이트 노벨이라면 터부시되는 내용이기에 당황스럽게 합니다(스포일러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 그리고 작가의 농간이 숨어 있기도 하죠. 스포일러라 자세히는 못 쓰지만 추리물같이 단서는 던져둡니다. 진지하게 읽으면 초반에 작가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성녀에게 기습 받아서 화형 당했던 주인공이 부활했을 때 주인공 버프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작가는 나름대로 이에 대한 책략을 준비하고 있었군요. 그래서 이번 6권은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시종일관 작가의 손에 놀아 날 수 있다는 걸 끝에서 보여줍니다. 놀아나지 말라는 약간의 복선을 준비해두지만, 제어 불가능 비토리오를 투입하여 하루 종일 정신없게 만들면서 눈치채지 못하게 하죠.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 그래서 대사의 진위 여부 판별력을 제법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아나면 어때요.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 재미없으니까 대충 읽으셔도 됩니다. 비토리오와 주인공 간 신경전 보다 중요한 것은 일기의 성녀와 크레에죠. 아무튼 성녀 두 명과 마녀의 이야기는 일단락되고, 다음 세력이 등장합니다. 선의 진영인 엘프의 나라를 궤멸시킨 서큐버스의 등장, 그리고 대놓고 세계를 상대로 선전포고, 새로운 신(神)과 플레이어의 개입 등 보통 갈수록 지리멸렬해지는 여느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갈수록 흥미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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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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