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art", "yap!! 거리며 한창 세상이 궁금한 생후 7개월 강아지처럼 쫑쫑 쫓아다니는 '가비지'와 주인공을 암살하려다 되레 당하고 굶어 죽을뻔한 '라라자'를 결국 거둬들인 주인공은 오늘도 던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무언가에 타버린 커다란 시체를 발견하죠. 이 세계에서 시체는 딱히 드문 일도 아닙니다. 던전에서 모험에 실패하여도 시체가 쌓이고, 주점 뒷골목에서 신입 모험가가 질 나쁜 모험가에 걸려 다 빼앗기고 시체가 되거나 던전에 끌려가 고기 방패가 되는 세계거든요. 그래서 불타버린 시체가 발견된다 하여도 신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왠지 마음에 걸렸던 '라라자'는 이 시체를 소생 시키려 하죠. 이번 이야기는 '라라자'와 불타버린 시체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그전에 이 시체를 태운 건 무엇인가가 더 궁금하겠죠. 이때 들려오는 커다란 울음소리. 그것은 모든 생물의 정점이고 모든 모험가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드래곤', 주인공의 행동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도망가야죠.

신장이 2미터나 되는 커다란 소녀가 있습니다. 머나먼 동방에서 찾아온 그녀는 막 모험가 등록을 마쳤죠. 할머니에게서 배운 불꽃 마법과 둔기라고 해도 좋을 커다란 지팡이를 들고 미궁 도시로 왔습니다만. 무엇이 무서운지, 무엇이 그녀를 무섭게 하는지 그녀는 겁을 최대치로 먹고 2미터나 되는 신장을 사람들에게 최대한 안 보이게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숨긴다고 안 보일 키가 아닌 것입니다. 모험가 등록은 했지만 후열인 그녀로서는 단신으로 던전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주점에서 나 좀 데려가라는 듯 앉아 있지만 키가 키다 보니 마치 동물원의 판다를 보듯 사람들은 구경만 할 뿐이죠. 이때 주인공 일행과 만났더라면 참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녀는 성장하지 못했을 테죠. 왜냐면 던전에서 불타 죽은 커다란 시체가 그녀거든요. 이거 스포일러 아니냐 하겠지만 이걸 언급 안 하면 리뷰 자체가 성립 안 되어 어쩔 수 없어요. '라라자'가 소생 시키려 한 시체가 그녀인 것이죠. 그리고 눈앞에 드래곤. 그녀는 드래곤 브레스에 타버린 것입니다.

소생 시키는데도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거기에 돈을 지불해도 소생은 확률성 가챠죠. 그녀는 시작부터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됩니다. 드래곤 브레스에 타죽는 불운, 빚진다는 불운, 하지만 소생에 성공했다는 행운, 주인공을 만났다는 것도 행운. 주인공 신용 덕분에 외상 처리가 되어 살아났으니 그 빚을 갚아야만 하죠. 돈이든 복수든. 하지만 불꽃 마법이 특기라고 해도 성냥불 만한 실력과 덩치에 맞지 않게 저질 체력으로는 고블린 하나 잡는 것도 힘든 게 사실. 남은 이야기는 뻔해지죠. 그녀는 드래곤을 때려잡아 돈도 벌고 명예도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후열이어서야 이야기가 성립 안 되니 강제로 전열로 잡체인지 시키고 '가비지'에게 먼지 나도록 교육받게 하자. 그리고 탄생한 게 어정쩡한 전사가 되겠습니다. 성격은 죽다 살아났음에도 고쳐지지 않아 여전히 쥐구멍만 찾아대는데 이것도 좀 어떻게 해야 될 판. 뭐, 던전에 던져놓고 죽을 만큼 고생 시키면 고쳐지겠죠. 그렇게 그녀는 조금씩 자신감이 붙어 갑니다.

그리고 가비지, 새로운 게 보이면 개처럼 냄새 킁킁 맡고 앞에 있는 게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볼 생각도 없이 닥돌하는 통에 언제나 라라자의 속을 썩이고, 보물 상자를 발로 차대서 라라자의 일(보물 상자 따는 것)을 방해하고, 으르렁 우짖기도 하고, 뭐라 하면 콧방귀 뀌듯 킁 거리며 쫄따구 주제에 잘 하라는 듯 뻐기는 게 여간 웃긴 게 아니죠. 라라자에 이어 새로 들어온 커다란 소녀도 부하로 여기며 내가 잘 보살펴야지 하듯 배려해 주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런 그녀는 왜 노예가 되어 던전에서 죽다 살아났는가. 이 이야기가 서브 형식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녀를 없애기 위해 자객이 오고, 심층에 있어야 할 드래곤이 왜 상층에 와 있었는가도 그녀와 연관이 있죠. 이번 2권에서는 커다란 소녀가 드래곤을 잡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과 더블어 가비지도 참가하여 더 이상 노려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타이틀은 대단한 것이거든요. 자, 이렇게 신전의 '아이네'도 참가하여 5인 파티가 결성되었습니다.

맺으며: 재와 환상의 그림갈이라는 작품처럼 이 작품도 참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잿빛 우울함이 있죠. 여느 먼치킨 판타지처럼 삐까번쩍하는 여관이나 집은 고사하고 마구간에서 볏짚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하고, 보리죽으로 끼니를 연명합니다. 뒷골목에 잘못 들어갔다간 탈탈 털리고 시체가 되는 일도 다반사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던전에 들어간다 한들, 100%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죠. 그만큼 내몰리는 삶을 살고 있다고 커다란 소녀를 통해 표현합니다. 양초 하나 허투루 쓸 수 없고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 죽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커다란 소녀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역설합니다. 죽고 살아난 것만 해도 행운인데, 억만금은 더 나갈 무기를 던전에서 획득했음에도 주인공은 팔아서 나누자고 하지 않고 그녀에게 주었으니까요. 겁먹고 멈칫하는 그녀의 등을 때려주는 라라자와, 딴에는 선배랍시고 안 하면 물어줄 테야 같이 용기를 불어주는 가비지, 소심하게 행동해도 뭐라 하지 않는 주인공. 커다란 소녀는 내성적인 성격을 벗어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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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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