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어쩐지 막 나간다 했습니다. 온갖 주인공급에 버금가는 히어로들(마법 소녀도 있었음)과 우주를 주무르는 신들과, 그 위광에 눌려 상대적으로 쩌리로 보이는 마왕들과 외부에서 쳐들어 오는 어그레서(주로 로봇)들까지. 이것들을 행성 하나에 풀어 놨으니 이건 뭐 독충들을 항아리에 넣어두고 서로 죽여라 하는 상황이었죠. 그걸 관리하는 현자들은 대체 뭔가 싶고. 고대적에는 신들이 서로 싸워댔다는데 이세계 행성은 어째서 멀쩡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만, 11권 말미에 이유가 밝혀졌었죠. 이왕 나무야 미안해 테크를 탄다면 끝장을 보겠다는 것마냥 작가는 그동안 망상에나 나올법한 온갖 능력들을 총망라하였고, 그렇다면 시간을 역행하는 능력도 있을 법 하잖아?는 당연한 흐름이 되겠습니다. 11권 말미에서 UEG와 루(미완성 여신)의 전투로 인해 이세계 행성에 구멍이 나버렸죠. 뭔가 대화가 안 되는 대화를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엄한 주인공을 죽이겠다던 UEG는 굉장히 허무하게 요단강 건너가버렸습니다. 상황이 일단락된 듯했지만 행성에 구멍이 나버린 건 없던 일이 되지 않았죠. 붕괴 직전의 행성, 이거 어떻게 해야 되나 싶은 찰나에 정신 차리고 보니 이세계에 처음 소환되었을 때로 되돌아가 있지 뭡니까. 반 애들도 거의 다 살아 있는 상황이고요.

이번 12권은 티비 드라마로 치면 시즌2에 해당합니다. 이세계를 관리하던 대현자님께서 행성이 붕괴하면 자기도 곤란하니까 시간을 되돌려 버린 것입니다. 이 작품이 대단한 게, 주인공 위주로 꾸려가기보다 각종 히어로들에 더해 이세계를 관장하는 여신들도 있고, 그 여신을 외부에서 초빙해올 수 있는 대현자라는 존재, 이들이 아우러져 업무 분담이 아니라 중첩되는 일을 해대고, 자기들끼리 싸워대기도 하고, 서로가 봉인을 해대는 등 대체 족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를 상황으로 몰아서 작품의 질을 끌어올린다는 것이군요. 분명 나무야 미안해인데 알고 보면 치밀한 구성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 보니 애들이 많이 살아 있습니다. 경험한 기억도 그대로 가지고 있고요. 그래서 여기서 웃긴 일이 벌어지는데요. 주인공에게 뜨거운 맛을 본 자와 안 본 자가 나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힘을 간접 체험하거나 곁에서 봐왔던 현자들과 아이들은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해지는데 반해 체험하지 못한 자는 설마? 에이!라는 식으로 믿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운명을 예약해버리죠. 아무튼 일단 되돌아오긴 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나 했더니 그렇진 않고, 뜨거운 맛을 봤던 현자들이 알아서 현자의 돌을 주인공에게 갖다 바치면서 일은 순탄하게 해결되어 갑니다.

하지만 상황 파악 못하는 자는 어디에나 있죠. 주인공의 힘을 파악하겠다는 정신 나간 현자가 현자의 돌을 경품으로 내걸고 게임에 초대합니다. 저거(주인공)와 상종해선 안 된다고 동료(체험한 자)가 발작하듯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귓등으로 듣질 않는 게 흥미 포인트입니다.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현자의 돌이 몇 개 더 필요한 주인공과 히로인은 어쩔 수 없이 게임에 참여하죠. 그런데 이번엔 난이도가 좀 올라갑니다. 그동안 주인공 능력에 의해 게임판이 작살 나버린 경험과 그래도 동료의 충고를 받아들였는지 주인공의 즉사 능력은 거의 봉인된 거나 다름없게 되어 버리죠. 그래서 조금은 지루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됩니다. 대신 그동안 주인공 능력에 무인 승차하며 재미를 봤던 히로인이 나서서 무술이 무엇인지 보여주는데, 얘도 주인공 닮았는지 가차 없군요. 질 나쁜 양아치를 만나 힘 조절도 없이 먼지 나도록 패버리는 게 흥미 포인트입니다. 처음으로 되돌아왔을 때 주인공이 현자의 돌을 찾아 떠난다고 하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같이 가겠다고 하질 않나, 보통 남자애가 먼저 손잡으면 정색할 만도 할 텐데 가만히 있는다거나, 그런 히로인 보며 뭔가 느끼는 게 있어야 할 주인공은 '아사카 씨'에게서 이성에 대한 공부는 배우질 못 했는지 둔감하기만 하니, 이것들 보고 있으면 세금 5배 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하죠.

맺으며: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약간은 식상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전의 기억을 되짚어보는 장면들에 분량을 꽤 많이 할애하고 있다 보니 작중 등장인물이 그랬던 것처럼 티비 애니메이션 총집편을 보는 듯했군요. 다행이라면 1권부터 똑같은 길은 가지 않는다는 것이지만요. 이번 12권이 시사하는 바를 꼽으라면 강력한 시간 역행 능력을 가진 대현자도 있다는걸, 이 능력으로 인해 자칫 주인공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가령 영원히 이세계에 가둬 둘 수 있다는 복선이기도 하다는 의미를 보여주고 있죠. 주인공 만능설에 재동을 건다고 할까요. 중반 이후는 주인공 힘이 제약되면서 일단 평화로운 이세계 판타지를 그립니다. 퀘스트를 하며 최종 보스를 잡아 게임을 클리어하는 목적으로 이야기를 잡아가죠. 그리고 오랜만에 이세계 사고에 물든(주인공을 얕잡아보고, 히로인을 어떻게 해보려는) 정신 나간 모험가가 주인공 일행에게 시비 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짱구머리 드래곤 딸과 하렘도 생기고, 그에 따른 어드벤티지도 얻는 좀 뭔가 영문모를 일도 일어나지만 원래 이 작품이 그런 이야기니까, 이런 것도 소소한 재미로 다가오죠. 이제 완결까지 두 권이 남았군요. 이번 12권은 독자의 허를 찌르는 이야기였는데, 이런 능력이 있다면 좀 더 집필했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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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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