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마인 소녀를 구하는 자" 리뷰 -버림 받고, 버림 받고, 모든 걸 잃어도-
스포일러가 꽤 많이 들어가 있으니 주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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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소녀 한 명을 구해주고 싶었을 뿐.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는 소설을 읽다 보면 늘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인공 이외에도 분명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이 사람들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하는 것이군요. 그러다 문득 모두가 마왕성에 도착한다면 마왕 입장에서는 이보다 당황스러운 건 없을 테니, 이 생각만 하면 웃음이 떠나지 않기도 했는데요. 사실 세상 사람 모두가 용사라면 애초에 마왕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테죠. 그렇다면 모두의 힘을 제각각으로 하면 어떨까. 그러면 중도에 포기하는 자도 있을 테고, 힘이 다해 죽는 자도 있을 테고, 모 작품처럼 가전제품을 파는 종업원이 된 자도 있을 테죠. 그리고 용사 파티에 끼여보지도 못하고 영웅이 되고 싶은 꿈을 접은 자도 있을 겁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위즈'처럼요.
어릴 적, 세상을 구한 영웅을 동경해 나도 크면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제법 머리도 좋았어요. 만약에 이 세상에 용사가 강림한다면 이 아이가 분명 용사로 선택되지 않을까. 그 꿈이 얼마나 허황된 건지 소꿉친구 '알루클'이 신의 계시를 받기 전까지는 몰랐죠.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범재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선택된 자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진리. 용사가 된 소꿉친구를 따라다니며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 숨겨진 힘 따위는 더더욱 없는 비참한 현실을 접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일행들은 무능한 놈이라고 낙인찍어서 그를 파티에서 나가기를 종용합니다. 자신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위즈'는 선택을 하죠. 자신은 마을 사람 A에 지나지 않았다는걸.
요즘 숲에서 여자아이 줍는 게 유행인가?
그로부터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위즈는 여전히 마을 사람 A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죠. 여기서 좀 불만인 게 이 작품은 노력하는 자를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7년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강해지기 위해 수련에 매진했다면 마을 사람 A라도 도적 몇 명은 잡을 수 있겠건만 소녀를 유린하려는 도적 3명에게 쩔쩔매고 결국 죽임당하기 일보 직전에서 되려 소녀에게 구출되는 수치 플레이란. 이 소녀 '아론'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다 왔는지 모릅니다. 추운 북방에서 원피스 하나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숲으로 들어왔다가 도적들에게 둘러싸인 것이죠. 그래놓고 '이길 줄 알았는데(대충 비슷함)', 첫 만남부터 어딘가 4차원적인 모습은 그녀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시사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마인이라고 불리는 절대악이 부활하려는 이때, 혼자서 여행이라니.
위즈는 아론으로부터 호위 의뢰를 받아 그녀의 마을로 떠납니다. 이 여정이 위즈에게 있어서 사람을 구하는 게 꼭 선택된 용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가죠. 세상 모두를 지킬 순 없어도 한 명의 여자아이를 지킨다는 것. 이것은 용사가 하는 일과 일맥상통합니다. 이 여정에서 위즈에게 힘이 없다고 해서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래서 가는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을 멸망 시킨다는 '마인'의 부활이 임박함에 따라 마물이 득시글 거리면서 위즈와 아론의 앞을 가로막죠. 여기서 주인공 위즈는 저렇게 강한 마물을 상대로 내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며 참 현실적인 면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노력해도 마을 사람 A는 A 일 뿐이라는걸.. 하지만 아론은 용사란 사람을 구한다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알려줍니다.
자, 망설이는 위즈에게 상황은 그로 하여금 용사가 될 것인가 그대로 마을 사람 A가 될 것인가를 선택하게 합니다. 마인을 쫓아 북방으로 온 영웅 알루클과 그 일행들, 한때 위즈가 몸담았던 파티가 위즈와 아론을 가로막아요. 그리고 '마인'을 처치하러 왔다고 하죠. 이미 도서 제목이 스포일러를 하고 있으니 마인이 누구인지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알지 않을까 싶군요. 이 작품은 그래서 선택을 강요합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여자아이를 죽일 것인가, 여자아이를 구하고 세상을 멸망 시킬 것인가. 중간은 없습니다. 마인을 없애고 여자아이를 구한다는 선택지 따윈. 위즈가 영웅(용사) 일행을 이길 리가 없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존재를 지킨다는 흔한 클리셰일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위즈는 그런 거창한 건 모릅니다.
그저 아론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들어주고 싶었을 뿐.
뭐랄까. 이 작품은 사람을 구한다는 의미를 되새겨줍니다. 세상 모두를 구한다고 해서 그게 용사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죠. 악마가 씌었으니 죽일 수밖에 없다는 1차원적인 생각을 가진 자를 용사(정확히는 일행들)라고 부를 수 있을까. 위험에 처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해주는 게 용사라면서, 눈앞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악마가 되어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작은 소녀를 구해주지 못하는 게 무슨 용사인가 하는 물음. 그리고 그저 작은 소망을 바라는 소녀의 마음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진정한 용사가 아닐까 하는 물음. 아론이 말했던 힘이 있어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가진 자가 사람을 지킨다는 의미. 그 소녀가 지금 바라는 점 딱 하나. 고행으로 돌아가 자신은 지금 죽을지언정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맺으며, 오랜만에 리뷰 이벤트다 보니 긴장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글이 다소 두서도 없고 재미도 없군요. 다듬어 보아도 나아지는 건 없고. 아무튼 이 작품은 세상의 이치를 벗어난 존재를 지키려는 클리셰를 담고 있습니다. 판타지물에서 흔히 등장하기도 하죠. 저주를 풀기 위해서라든지,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라 든지로 여자아이를 죽이려는 사람들로부터 지키려는 주인공의 이야기. 이 작품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인'이라는 세상을 멸망 시키는 악을 몸에 품게 된 소녀를 지키기 위한 주인공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을 사람 A로 만들어 놨다는 것이죠. 이것은 힘이 있다고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아닌 의지를 가지고 사람을 지키는 진정한 용사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물론 처음부터 의지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무데뽀로 도적 3명에게 덤볐다가 골로가기 직전에 히로인이 구해주는 수치를 선사하죠. 이건 뭐 의지보다 자포자기에 가깝고. 그래놓고 도적보다 더 강한 마물을 상대로 히로인 지키겠다고 설레발치다가 몸통 빵구나기도 하고(또 히로인에게 구해짐), 그런 주제에 마을이 마물에게 짓밟히는 순간인데 내가 저런 놈을 어떻게 이겨 하며 갑분싸하는 만드는 능력은 대단했죠. 이쯤 되면 아론이 여자아이라서 흑심 품고 구해준 거냐?라고 묻지 않을 수 없게 돼요. 또한 7년 동안 수련한 건 뭐냐 이놈아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주게 하죠. 그러나 이 모든 건 중반 이후에 다 날려 버립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한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죠. 사실 단권으로 끝나다 보니 진행이 상당히 빠른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본 리뷰는 네이버 카페 NTN과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리뷰 이벤트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 되었습니다. 도서를 제공해주신 NTN과 위즈덤하우스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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