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하는데, 여행의 목적은 지친 심신을 달래고 낭만을 찾기 위함이 아닐까 싶어요. 미지의 땅을 탐험하고, 풍요로운 대지를 만끽하고,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노래 한 소절, 정말 현대를 살아가는 사축에게 있어서 꿈만 같은 이야기일겁니다. 그러나 이것도 다 돈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어요? 배를 곪아서야 경치가 다 무슨 소용이고, 석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어봐야 돌아오는 건 서글픈 마음뿐이겠죠. 그래서 간혹 판타지 소설을 접하다 보면 이것들 돌아다니면서 먹고 자고 하는 돈은 어디서 조달하나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아요. 노숙도 영화에서 나오는 모닥불 피워놓고 별을 바라보며 잠이 드는 건 허구라고 어떤 예능 프로에서 증명하기도 하였죠. 영화처럼 노숙하다 입 돌아가기 십상이라고, 왕초도 이렇게 안 잔다고 할 때는 얼마나 웃기던지요(예능에서).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작품은 간혹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줍니다. 가령 엘프 '피아'의 경우라 할 수 있군요. 그녀는 무구한 시간을 살면서 언젠가 지금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는 반드시 이별을 한다는 미래를 가지고 있죠. 예전 어떤 만화에서 히로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같이 늙어가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참고로 히로인은 영원을 살아가는 사이보그). 그래서 그녀(피아)는 시리우스의 아이를 가지려고 무던히도 애씁니다. 시리우스가 가고 없는 미래에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해지기 위해. 이건 늑향의 호로와 일맥상통하기도 하죠. 그래서 필자는 욕을 하면서도 이 작품을 끊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요(1). 좀 붕떠 있긴 한데 피아는 아련하게 해주는 뭔가가 있어요. 그런 피아가 이번에 확실하게 시리우스에게 어필하면서 슬슬 2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더군요.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여행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죠. 그런데 지금 돈이 없어요. 그야 그렇죠. 애들 실력이 느는 만큼 비례하듯 먹는 것도 나날이 늘어나서 식비가 감당이 안 돼요. 눈치 안 보고 손에 닿는 거라면 마구 입에 욱여넣는 여자 3명에 근육바보 한 명과 멍멍이 하나, 주인공까지 하면 현실에서도 식비가 감당이 안 될걸요. 왜 많은 나라가 일부 일처제 하는지 아세요? 그건 식비가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죠(물론 농담).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시리우스는 참 능력 있는 남자라 할 수 있습니다. 애들을 굶기지는 않으니까요. 노숙은 해도요. 하지만 이제 슬슬 돈이 떨어져 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굶을지 몰라요. 그래서 수인국 '아비트레이'에 왔긴 한데, 수인국(國)에 수인들(특히 갯과)에게는 신앙이자 추앙을 받는 '호쿠토(짱 큰 늑대)'를 데려온 게 신의 한수였다고 할까요.

 

약장사라도 시작했더라면 참 재미있었을 텐데, 호쿠토가 길을 나서자 하늘에서 신(神)이 내려와도 이러지는 않겠다 싶을 정도로 수인들이 열광하니 재미가 없어요. 하여튼 일본 작가들 신(神)격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니까요. 그래서 일행들은 할 수 없이 방콕을 갔더랬죠. 호쿠토를 신격화하는 수인들 덕분에 좋은 여관에서 싸게 묶고, 참 편리하다 싶군요. 여관에서 나가질 못하는 어느 날 시리우스와 호쿠토에게 누군가가 찾아와요. 수인국 왕녀 '메리'가 찾아오면서 거대한 음모의 서막이 열리는데..는 없어요. 메리는 한 8~10살쯤 되어 보이는 순진무구한 여자애로써 호쿠토를 찾아와 뭔가 소원을 말합니다. 예로부터 수인국에서는 호쿠토와 같은 뭐라더라 까먹었는데 신수인가? 하여튼 신에 가까운 존재에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인지 소문이 있데요.

 

그 소원이 참 애달프죠. 메리는 눈이 안 보여요.

 

​시리우스는 메리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을 하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메리가 눈이 안 보이게 된 원인을 알아가요. 이 이야기는 9권하고 이어집니다. 필자가 9권 리뷰에서 언급을 안 했지 싶은데, 그때 '레우스의' 두 번째 여친이 있는 마을이 마물에게 습격을 받게 되었고 그 습격을 사주한 인물이 있었죠. 그 인물이 이번에 등장하면서 시리우스에게 대적하게 되는데요. 이 작품은 은근슬쩍 적(에너미)을 개과천선 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차 없이 없애버리는 시리어스를 보여주기도 하죠.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꽤나 처절하기도 합니다. 이런 전투에서는 원래 주인공이 나서서 뽐을 내기 마련인데, 이번에 메리의 눈을 실명시킨 장본인과의 전투를 거치면서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어요. 바로 메리의 어머니에게 포커스를 맞추면서 모성(母性)을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딸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죠. 사실 처음부터 모성을 자극하는 건 아닙니다. 수인답게 단련에 힘쓰다 보니 애를 어떻게 대해야 될지 잊어버린, 처음엔 애를 주워와도 이러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싸늘한 시선만 보내는데 용케도 애가 삐뚤어지지 않았다 싶더군요. 하지만 그건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고 밝혀지면서 서투른 엄마라는, 오덕 세계에서 먹혀 들어가는 이야기를 들고 오다니 작가도 제법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하지만 시리우스보다 나이가 더 많은(아마 20살쯤?) 첫째 아들이 있는데도 서툴다는 포지션은 좀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양날 같은 면도 보여줘요. 작가가 상당히 무리한다고 할까요. 게다가 엄마 일러스트는 어디를 봐도 10대인데? 여담이지만 아빠 일러스트는 끝까지 없는 비참함이란.

 

뭐, 그렇게 오늘도 시리우스와 그 패거리들은 또 한 건을 해냅니다. 참 돈 벌기 쉬워요. 수왕에게서 노잣돈 넉넉히 받는데, 현실에서도 이렇게 잘 풀리면 아무도 굶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은...

 

맺으며, 히로인 1호 에밀리아는... 얘는 글렀습니다. 갈수록 인간적으로는 괜찮은데 인격적으로 '시리우스의, 시리우스를 의한, 시리우스를 위한'만 주창하고 있어서 이러다 남북 전쟁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험을 안고 사는 게, 시리우스의 교육이 얼마나 위험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까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김건모가 부릅니다. '잘못된 만남', 동생을 위해서라면 이 목숨 마다하지 않던 애가 이젠 동생을 남 대하듯 '당신, 당신' 거리며 온리 시리우스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떨 때는 소름이 돋아요. 어릴 적 부모를 잃거나 가정폭력을 당하면 그 충격으로 커서 내 사람(가족)에게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고 하던데 딱 그런 분위기입니다(2).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교육을 모토로 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안 어울리는 장면이라 할 수 있죠.

 

  1. 1, 사실 작품성도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고, 천선필 역자로 바뀌기 전엔 오타와 문맥파괴로악명이 높았죠.
  2. 2, 레우스와 애밀리아 남매는 어릴적 부모를 잃고 노예로 몇년이나 시달려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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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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