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흔해빠진 직업으로 세계최강 10권 리뷰 -상냥한 괴물, 그 종착역을 향해-
장문 주의, 중급 스포일러 주의
-포기하지 마! 반드시 돌아올 것!-
이번 에피소드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단어를 고르라면 저것이다. 사실 필자는 9권에서 하차를 하였으나 외전인 '제로'에서 작가가 보여준 필력(이라 쓰고 중증 중2병)에 반하여 다시 본편을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유치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마치 고기쌈에 벌칙 재료만이 든 게 아닌 고기도 들어 있어서 먹을 수 있었다고 할까. 이번 에피소드는 그런 느낌이다. 아무튼 저 단어는 이 작품의 주인공 '나구모 하지메'의 부모가 아들에게 남긴 문자로, '하지메'는 이세계에 떨어지고 나서야 휴대폰에 부모가 남긴 이세계에 간다면 7가지 수칙을 보게 된다. 이 단어는 하지메가 나락으로 떨어져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계기가 된다.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 후 이 문자를 회상하며 일어서는 장면은 이번 에피소드의 백미라 하겠다.
길고 길었던 이세계 여행에 드디어 종착역이 가까워진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7대 미궁을 돌아 그 미궁의 고유 신대 마법을 손에 넣어 개념 마법을 구사해 시공에 구멍을 내는 마법을... 필자도 뭔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마지막 미궁인 [빙설 동굴]에 도전한 하지메 일행이 각각 분단되어 미궁이 내리는 시련을 돌파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다(완결이라는 소리 아니다). 아담과 이브의 동산에서 사과를 따먹은 뱀처럼,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7대 죄악이라고 해야 하나 비슷한 어둠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궁은 그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어둠을 끄집어 내어 받아들이던지 거부하던지 눈을 돌리던지 아니면 어둠에 잡아먹혀 인간을 그만두던지하는 시련을 내린다. 그러니까 자기와의 싸움이다.
여기서 유독 눈을 끄는 건 하지메의 연인 '유에'라 할 수 있다. 흡혈귀 종족의 왕족으로서 태어나 본분을 다하고 인간과의 전쟁에서 최일선에 서는 등 노블레스를 충실히 수행하던 과거의 그녀가 숙부의 배신으로 나락에 봉인되는 과정에서 숙부는 그녀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왜 봉인으로 그쳤는지에 대한 단서가 흘러나온다. 유에는 300년간 나락에 봉인되어 있으면서 배신당한 충격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왔으니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러나 미궁의 시련은 그녀가 과거에 있었던 본질을 끄집어 낸다. 숙부는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봉인에 그친 건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교회가 자주 부각된다. 이 부분은 외전인 '제로'를 읽어야 제대로 이해가 될 것이다. 대충 요약하면 막강한 교회의 힘과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마치 매트릭스의 가상공간에 잡힌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즉, 숙부는 유에를 교회로부터 지키기 위해 봉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러나 아직 진실엔 접근하지 못한다.
'시아'의 시련은, 읽지 않아도 예측이 되는 그런 것이다. 자식이 마력 조작이라는 선조 회귀로 태어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일족은 핍박받으면서도 그녀를 버리지 않았고 그녀는 그것이 안타까워 늘 마음속에 응어리를 안고 살아왔었다. 요컨대 이런 것이다. '너만 아니었으면' 현실에서도 가끔 있을 일이다. 부모가 너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아이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버리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조금은 서글픈 이야기라고 할까. 누군가가 찾아오면 어린 그녀는 놀다가도 숨을 수밖에 없는, 모두가 그녀를 버리라고 하지만 일족은 그러지 않는 가족애는 심금을 울린다. 시련은 반드시 클리어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잘못과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좌절해도 시련은 실패만 할 뿐 미궁은 그녀를 어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지켜줬고, 죽은 엄마의 상냥한 말을 떠올린 그녀는 미래로 가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작품의 최대의 관심사가 등장한다. 바로 용사 '코우키'가 되겠다. 현실에서 엄친아로 인생 최고가를 구가하던 그가 이세계로 굴러 들어와 현실의 엄친아 생활 그대로 생활하려다 쪽박 차고 망해가는 클라이맥스라 하겠다. 사실 하지메에게 있어서 용사는 고기 방패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조금 성장시켜서 노인트(신의 졸개)와 상대할 때 앞에 세운다던가 같은 음흉한 생각뿐. 그래서 이번 시련에도 데려와 돌파하라고 했는데... 당연히 잘 될 리가 없다. 정의만 있으면 모든 게 관철되고 내 생각이 곧 정의라 믿는 일방통행 용사가 과연 현실의 벽이라는 '네 뜻대로 세상이 돌아가면 경찰은 필요 없다'라는 현실이 들이밀어진다면 용사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게 두 번째 백미라 하겠다.
이번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가 이것이다. "잘 봐, 현실이 찾아올 거야" 힘을 날로 먹었다고 착각해서는 강한 하지메를 질투하고, 하지메가 여자들을 다 차지해서 내 건 없다고 질투하고, 여자를 마치 물건 대하듯 니꺼 내꺼로 구분하고, 그러다 마침내 짝사랑하던 여자까지 하지메가 빼앗아 갔다는, 내 생각이 정의고 여자들은 날 좋아하는 게 당연한 용사에게 있어서 짝사랑하던 여자까지 주인공의 등에 업힌 모습을 보게 된다면, 처음으로 현실의 벽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동안 누구 하나 현실의 벽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아 이 벽이 무엇인지 몰랐던 용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는 뻔하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메시지로 이만한 게 있나 싶다. 아무튼 누군가가 현실을 알려줄 필요도 있고, 이런 놈은 맞아야 정신 차리는 건 세상의 이치라는 듯 불쌍할 정도로 엄청 두들겨 맞는다.
근데 웃긴 게 사실 용사가 폭주한 주된 원인은 정의보다도 짝사랑하던 여자를 주인공에게 빼앗겼다는데 있다(용사가 빼앗겼다고 멋대로 착각 중).. 하지메가 나락으로 떨어진 원인인 '카오리'는 물론이고 소꿉친구인 '시즈쿠'까지 하지메에게 가버리게 되는데, 시즈쿠의 경우 용사가 폭주한 원인(하지메에게 업혀 있었던 것)이 자기에게 있다는 걸 눈앞에서 보고도 바로 하지메에게 가버린다는 것. 나중에 하지메에게 두들겨 맞아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그에게 아직 충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는데도 대놓고 하지메를 좋아한다고 해버리니 이 작품의 히로인들은 참 못됐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하기야 꼴통 용사를 누가 좋아하겠냐마는. 애초에 소꿉친구고 용사가 어릴 때부터 꼴통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하지 않아 용사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원인은 그녀와 친구들에게 있다. 결국 용사가 꼴통이 된 건 그녀와 친구들임에도 그런 반성은 없다는 게 서글플 따름이다.
맺으며: 주인공 하지메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는 이야기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개념 마법을 구축하면서 흘러나온 과거의 영상은 다시 한번 1권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게 한다. 나락에 떨어져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부모가 휴대폰에 남겨준 -포기하지 마! 반드시 돌아올 것!-을 떠올리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과 마지막에 이세계에서의 하지메와 현실에서의 하지메를 겹치듯 그려놓은 일러스트는 정말 가슴을 짠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시아가 엄마를 그리며 상냥한 괴물이 되겠다는 구절 또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는데 한 발짝만 남겨둔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를 도와준 주변 인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에서는 이렇게 진지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면 이후 계속 구매할 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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