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아빠 어릴 적 동료 찾기에서 비롯된 마왕을 인간의 몸에 심어 낳게 하는 흑막을 무찔렀고 엄마도 구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주 안젤린의 출생에 관한 비밀도 밝혀졌고요. 이건 필자가 그동안 유추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군요. 여기서 문제는 그 비밀이 밝혀졌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죠. 이 작품은 겉모습(여기선 정체 正體)은 중요하지 않다고 역설합니다. 흑막이 핸섬보이였다는 점에서 아주 다른 말은 아니라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잖아요. 그동안 아빠와 살아오면서 부대끼고, 주변과의 삶에서 느껴왔던 희로애락은 거짓이었나?를 놓고 본다면 분명 여주의 삶은 거짓이 아닌 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여주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죠. 떠날 때는 아빠와 자신(여주) 뿐이었던 것이 여행의 끝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때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어우러져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아빠가 안쓰럽기도 했고, 남들은 다 있는 엄마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그렇게 출발한 엄마 찾기도 친모를 찾으면서 그녀의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이번 10권은 고향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시끌벅적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만났던 아빠의 동료들과 온갖 사람들, 찾아온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집이 미어터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죠. 딸을 도시로 떠나보내고 홀로 청승맞게 지내던 아저씨 입장에서는 진정이 되지 않는 나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동료 중 마지막으로 찾았던 '사티'도 아저씨를 따라와 곁을 지키는데, 어릴 적 모험가 시절에 같이 생활했다곤 해도 그건 거의 20여 년 전의 일이고, 그동안 연애에 대해 면역이 없던 아저씨는 불혹의 나이에 얼굴이 빨개지는 나날을 경험합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으로 향하는 길목, 아이들은 꺅꺅 천진난만하게 몰려다니고, 어른들은 밭 일을 준비하고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는 등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그저 어디에나 있는 농촌의 일상을 풀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사물에 대한 표현력이 좋아서 몰입도를 올려주는 건 덤이고요. 그리고 여주는 아빠와 사티를 맺어주기 위해 동료들과 마을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작당모의를 시작하는데, 이로써 여주는 안심하고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티'는 쌍둥이 아이들을 홀로 지키며 고생을 참 많이 했었죠. 작가는 왜 뜬금없이 여주에게 사티가 쌍둥이를 보호하는 걸 보여 주었을까. 사티의 과거에서 비록 흑막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곤 해도 먼 곳에 버려야 했던 친딸이 성장하여 눈앞에 나타났고, 눈앞의 아이가 다름 아닌 그때의 친딸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 운명은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라고 역설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티는 아저씨가 찾고자 했던 동료고, 아저씨는 숲에 버려져 있던 사티의 친딸(여주)을 거둬 키웠죠. 그리고 여주는 친엄마를 만납니다. 과거의 속죄마냥 쌍둥이를 흑막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친엄마를 보게 된 여주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이때는 아직 친엄마인지는 몰랐겠지만, 그래서 운명은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이것이 9권의 이야기고, 리뷰에선 언급하지 않았지만요. 그렇게 친엄마라는 게 밝혀지고, 여주의 탄생의 비밀까지 알게 되었어도 여주가 정신착란(아무래도 출생이 출생이다 보니)을 일으키지 않은 건 쌍둥이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했군요. 쌍둥이의 탄생도 여주와 같거든요.

그리고 이번 10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표현한 부분인데요. 쌍둥이에게서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미토, 벡, 샤를로테에게서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여주었고, 마을 젊은이들에게서 삶의 전성기를 보여주고, 아저씨와 동료들에게서는 황혼기를 보여주고, 마을 노인의 죽음에서 삶의 종착점을 보여주고, 쌍둥이의 친엄마(사티 말고)의 죽음에서는 자연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쌍둥이는 아직 어려서 죽음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저 엄마는 잠이 들었을 뿐 언젠가 일어날 거라 믿고 있었죠. 그래서 아저씨 등 주변 어른들은 쌍둥이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알려주기를 망설였고, 그러던 차에 '그라함(이 작품 최강 팔라딘) 할아버지'가 다람쥐를 예를 들어 죽음은 작별이자 새로운 만남이라는 걸 쌍둥이에게 알려주는 대목은 먹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마왕은 백지상태로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 마음을 검게 물들일지 총천연색으로 물들일지는 오롯이 주변에 달려 있죠.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더군요. 그래서 여주도 퇴치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맺으며: 필자는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파더콤을 졸업한 여주인데요. 항상 응석받이로 아빠만 찾고, 조금 과도한 스킨십을 했던 건, 그런 행동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는가 싶어서 좀 안타까운 면이 있었죠. 여행을 통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그래도 자신을 버리지 않는 아빠와 주변 사람들을 보며(친엄마도 매우 정상이고) 그동안 짊어지고 있었던 존재 의의라는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아빠의 그늘을 벗어나 긴 여행을 준비하는 장면에서는 비로써 자신의 인생을 찾기 시작한 거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이번 10권은 그저 농촌 생활과 식량을 구하고 요리를 하고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등 리얼한 일상생활을 보여줄 뿐 목숨 걸고 싸우거나 긴박한 상황은 전혀 없습니다. 이 작품처럼 한결같이 이런 장면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지 싶은데요. 그럼에도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건 워낙 리얼한데다 작가가 표현력이 좋아서 그렇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아무튼 11권이 완결 같던데, 조금 불안한 복선이 나왔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해피엔딩은 무난하지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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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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