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리빌드 월드 3권 下 리뷰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기껏 미발견 유적을 독차지할 수 있었는데, 마치 상처 입은 동물을 발견한 피라냐들처럼 헌터들이 몰려와 뼈도 안 남기고 싹쓸이해버리는 바람에 주인공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메인 히로인이지만 결코 메인으로는 올라가지 못할 '셰릴'이라는 히로인이 납치되어 죽을 뻔도 하였죠. 그래도 의미 없는 삶은 아니라는 듯, 나 이외에 타인은 관심이 없었던 주인공이 히로인을 구출하러 갔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돈 독은 올랐지만 출세욕은 없는 주인공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활약 때문에 헌터들 사이에 소문이 나고, 평범한 세상이었으면 추앙받아 마땅할 활약이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이곳은 상대가 상처 입기만을 바라는, 먹잇감을 그대로 둘 이유가 없는 하이에나들이 득실 거리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3권 하편에서는 주인공이 발견한 미발견 유적에서 쏟아진 현상수배급의 몬스터로 인해 도시 간 교역이 중단되고 이에 현상금이 걸리면서 한탕을 노리는 헌터들이 앞다퉈 달려가지만 죄다 역으로 소탕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현상금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이에 도란캄이라는 헌터 조직의 조직원의 의뢰로 주인공은 그 현상수배급 몬스터 사냥에 나섭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 여느 작품들이라면 주인공이 전면에 나서서 처리하고 영웅으로 등극하잖아요.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을 출세 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하루 연명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할 뿐이죠. 근데 그로 인해 그 최선을 눈여겨 본 무리들이 주인공에 접근하게 되고, 주인공을 이용하면 한몫 벌 수 있겠다, 조직의 파벌 싸움에 이용할 수 있겠다 등 인간 군상들을 상대로 주인공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 작품은 판타지 세계의 모험가와 던전의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적은 던전이고, 그 유적을 지키는 경호 기계 로봇들은 몬스터이고, 헌터는 모험가입니다. 헌터들은 유적에 들어가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는 경호 기계 로봇들을 없애고 구유물을 구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죠. 사실 단순히 이런 이야기였다면 여느 판타지를 모방한 레플리카 취급이었겠습니다만, 필자가 높게 평가하는 부분을 들라면 인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는 것이군요.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뒷배로 주인공을 붙잡아 두기 위해 필사적이 되어 가는 셰릴(히로인), 만인을 구하기 위해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카츠야(서브 주인공)',그걸 우상화하는 어른들, 그런 카츠야의 행동에 끌려가는 히로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주인공을 컨트롤하려는 '알파(내비게이터)', 타인에게 무관심한 주인공을 그래도 보살펴주는 히로인 등, 본 작품은 출연하는 캐릭터들의 감정 표현에 매우 충실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번 3권 하편에서는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총을 쥐여주면 어떤 꼴이 생기는가 같은 일들이 벌어지죠. 베테랑 헌터들도 나자빠지는 현상수배급 몬스터를 상대로 자신들의 파벌 싸움을 위해 신인 헌터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을 바라보며 해주겠어 하며 주제도 모르고 날뛰다 죽어가는 아이들 등, 유적에서 유물을 모아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 보다 인간의 추악한 이면들을 많이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엔 감언이설과 사탕발림 같은 어른들 사정이 동원되고 주인공도 농락 당할뻔하는 등 삶이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게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물음도 던지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카츠야와 반목하면서도 서로 도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그럴수록 사이가 더 멀어지는, 결국 어중이떠중이 같았던 카츠야가 주인공급으로 성장하며 주인공과 대척점에 서는 그런 이야기들을 보여주죠.
맺으며: 이번 3권 하권이 의미 있는 점을 꼽으라면 당연 셰릴이 되겠군요. 조금씩 카츠야와 접점을 만들어 가더니 기어이 건담의 아무로와 샤아의 사이에 있었던 라라슨 관계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정신이 죽어가던 카츠야는 셰릴이 건넨 인사치레 같은 말에 정신을 차리고 셰릴을 신앙에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셰릴은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츠야를 띄워준 것이건만. 셰릴은 주인공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고, 카츠야는 주인공을 죽도록 싫어합니다. 주인공은 카츠야를 슬슬 짜증 나는 쉑기로 인식해가고 있고요. 카츠야는 셰릴을 인식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 세 명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본 이야기보다 이게 더 궁금해지더란 말이죠. 근데 문제는 작가가 이렇게 아침 드라마로 만들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알파(내비게이터)'를 이용해 엄한 설정을 넣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밝힐 수 있는 건 내 인식이 조작된 거라면? 정도군요.
아무튼 본 작품은 필자가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히로인이 제법 나오지만 하렘의 느낌은 없고요.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같은 현실미도 상당히 좋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좋게 끝나지 않는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지죠. 주인공은 그 뒤처리로 바쁘고요. 그리고 눈뜨고 코 베일 수 있으니 언제나 조심하라는 메시지도 던집니다. 주인공처럼 착실하게 하면 출세는 힘들어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다는 메시지도 있고요. 그러다 보면 인정해 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다 나자빠지는 상황에서 주인공으로 인해 살아난 사람도 있고, 그 덕분에 보답도 받기도 하고. 사실 좀 더 내용적으로 들여다보면 주인공과 카츠야와의 관계, 어른들의 사정 등 복잡한 설정이 꽤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복선도 있고 설정을 몇 개 중첩적으로 이어가고 있어서 리뷰어로서 좀 애로사항이 꽃 피는 작품이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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