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나에겐 이 어둠이 아늑했다 1권 리뷰 -이세계에서 시작하는 유툽 생방송-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한때 자라나는 새싹들의 장래희망으로 유튜버가 인기를 끌었죠.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어 개성을 연출하려는 아이들도 있었겠습니다만, 당시만 해도 영상이 좀만 팔려도 강남에 건물 올리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만큼 벌이가 좋았거든요. 지금은 500만 헤비 유툽도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하니까 세월의 무상함이란. 아무튼 본 작품은 그런 발상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세계(지구) 사람들을 이세계로 보내어 서바이벌을 찍게 하고 그걸 전 세계에 방영한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주최 및 진행자는 신(神), 출연자는 지구인 중 무작위 선출된 1,000명.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미디어에 신(神)이라는 작자가 출연해 너희들 중 1천 명을 선발해 이세계로 보내겠다고 선언합니다. 남겨진 자에겐 미디어,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고요. 출연자는 자신의 채널에 시청자가 몰리면 몰릴수록 각종 특전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
본 작품은 이세계 전이를 바탕으로 두고 있으나 주인공 보정 받는 먼치킨은 아니며, 이멋세류 같이 밝고 쾌활한 웃음과 재미를 선사하지 않습니다. 장르를 따지라면 재와 환상의 그림갈 같이 다크 판타지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세계로 전이까지 앞으로 6개월, 선발된 1천 명에게는 가고 안 가고의 선택할 권리가 없으며, 가족과 떨어지게 된다는 점, 선택된 사람을 죽이면 권리가 이양될 거라는 뜬소문에 목숨이 노려진다는 것, 이단으로 여겨 죽임을 당하고, 각종 매스컴과 범 정부적 관심을 한몸에 받아 사생활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런 혼돈의 상황에서 주인공은 선택된 자들의 리스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속칭 음침 캐릭터로 로또 보다 더 낮은 확률에 자신이 선택될 일은 없다고 낙관하고 있었고, 그렇게 되었죠. 하지만 소꿉친구 '나나미(히로인)'가 선택된 순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게 6개월간 주인공은 소꿉친구가 이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온갖 정보를 모아줍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본 작품은 다크 판타지입니다. 그것도 꿈도 희망도 없는 무자비한 세상을 그리고 있죠. 주인공은 선택된 자들이 이세계로 전이되는 당일 소꿉친구 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소꿉친구를 발견합니다(뒷표지 시놉시스에도 밝혀져 있는 내용). 여기서부터 주인공은 만능이 아니며,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년일 뿐이라고 역설하기 시작합니다. 왜냐면, 소꿉친구가 전이자로 선택된 후 사람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주변으로부터 선택된 자를 죽이는 자들이 있다는 걸 들었으면서도 이것들을 간과하고 있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여기서부터 알아채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의 전개가 암울하다 못해 발암 수준이라는 것을요. 주인공은 사태를 간과한 벌을 받았는지 습격을 받고 소꿉친구 뒤를 따라가게 되죠. 그리고 극악한 확률로 새로운 전이자로 선택되어 이세계로 전이하게 됩니다. 마치 비행기 탑승 대기자 명단에 올렸더니 차례가 돌아온 것처럼.
이세계로 갔으니 아무리 평범한 주인공이라도 먼치킨이 되겠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이세계로 전이했을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같은 리얼리티를 보여줍니다. 도착지는 랜덤, 주인공이 도착한 곳은 사방 약 400킬로 이내에 민가는 찾을 수가 없는 마물이 득실 거리는 마경. 지금 주인공이 가진 것은 온라인 게임에서 캐릭터를 처음 만들었을 때와 같은 장비. 그리고 신(神)이 만든 웹 사이트라는 디스플레이 같은 윈도 창, 거기서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각종 물품이 있지만 주인공이 가진 포인트는 한정적. 마경에서 살아날 확률은 절망적, 주인공이 받은 능력은 정령의 총애. 다른 능력치는 없음. 캐릭터는 초보, 고렙존에서나 나올법한 몬스터들, 밸런스 붕괴도 정도가 있지 같은 일들이 벌어지죠. 그리고 주인공을 더욱 절망하게 하는 건 소꿉친구를 죽여서 이세계 전이 권리를 강탈했다는 누명. 신(神)은 잔혹하게도 현실 지구에서 이세계 전이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버렸습니다.
급하게 선택되어 제대로 능력을 고르지도 못했고, 소꿉친구가 살해당했다는 충격, 자신도 살해당했다는 충격, 시스템이 구축되고 처음 온 메시지가 소꿉친구 살인자라는 매도, 나가 뒤지라는 욕설, 생존 확률이 절망적인 마경, 주인공을 잡아먹으려는 몬스터들의 악의, 이 모든 걸 마치 유툽처럼 미디어로 지켜보는 전 세계 인구(적게는 몇천만, 많게는 억 단위). 그나마 잘 해보자고 다짐은 했지만 그것 비웃는 암울한 상황의 연속은 평범한 일개 고등학생이 감당할 수준을 진작에 넘어섰고, 시스템의 힌트를 받아 어둠의 정령술을 익힌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건 검은 안개에 자신의 몸을 숨겨 세상으로부터 단절되는 것. 그래서 본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에게 있어서 어둠은 집보다도 아늑하게 됩니다. 보통 1권이라도 중반을 넘어서면 아무리 무능력이라도 먼치킨이 되곤 하는데 본 작품은 그런 게 없습니다. 암흑과 절망과 인간 혐오증에 걸린 주인공의 비일상을 다루고 있죠.
비일상이라는 걸 알고 읽어가면 주인공이 허접하게 보여도 지루하지 않으며, 오히려 일반인이 갑자기 남아메리카 밀림 지역에 떨어졌을 때 같은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실 지구인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대자연 앞에서는 무력하니까요. 이런 점은 잘 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꿉친구가 살해당했다는 충격과 그 누명을 덮어쓰게 되면서 세상과 단절을 선택해가는 주인공이 안타깝게 다가오죠. 그래서 인간과의 교류를 피하고 던전에 들어가 시체를 뒤지며 그들이 남긴 장비를 훔쳐 팔며 연명해가는 장면들은 여느 작품에서 볼 수 없는 비참함이 있습니다. 사람이 망가진 거죠. 히키코모리를 자처하듯 자신의 특기를 살려 낮보다는 밤에 던전에 들어가고, 거기서 하염없이 검은 안개를 몸에 두르고 지나가는 모험가들을 관찰하거나 남들이 떨어트린 아이템이나 장비를 주워 파는 노숙자 같은 장면들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 것입니다.
맺으며: 설정만 놓고 보면 유툽의 재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라는 장르를 이용해 시청자가 많을수록 광고비가 많이 들어오는 구조를 취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법의 테두리에 있는 현실 지구와 다르게, 윤리와 도덕이 존재하기나 하는지 미심쩍은 이세계에서 법의 제재를 받기 힘드니 전이자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세계관이라는 것이고, 자극적인 일을 꾸밀수록 시청자가 더 늘어난다는 것, 서로 힘을 합친다는 발상은 없는 거 같고, 이런 종합적인 여건이 합쳐져 전이된 당일에 수백 명이 리타이어 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런 현실에서 제일 먼저 죽을 거 같았던 주인공이 살아남게 되면서 주인공 채널의 시청자 수는 늘어나고, 그 덕분에 포인트를 얻어 신이 만든 웹 사이트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면서도 그 시청자들의 악의에 히키코모리가 되어 버리는 제법 탄탄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근데 라노벨 특성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가령 던전에서 구해주는 '리프레이아(히로인)'의 발암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본 작품을 순식간에 나무야 미안해로 전락 시키고 만다는 건데요. 주인공이 음침하고 어둠 계열인 반면에 '리프레이야'는 빛 계열의, 어둠의 주인공과 반대되는 속성으로서 주인공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는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출연 시점을 지금이 아니라 좀 더 인간에게 마음을 여는 좀 더 뒤에 출연 시켜 주인공의 마음을 견인 시켜야 되지 않았나 싶었는데요. 한창 인간 혐오증에 걸려 던전에 틀어박히고 밤에만 싸돌아다니며 세상과 등질대로 등지고 망가져 가는 다크 판타지의 정점에 올라가는 중간단계에서 좀 도움받았다고 느닷없이 웃는 얼굴로 그토록 숨기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의 본 모습을 까발리고 멋대로 보답하겠다며 주인공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비집고 들어와 당일에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어요'라며 웃을 훌렁 벗어 재끼고 우리 레슬링 해요! 라니요. 대체 왜?라는 말 밖에 안 나오고, 순간 도서를 찢어 버릴까 싶을 정도로 분노를 느꼈는데요. 분위기랑 너무 안 맞는 전개에 당황을 넘어 황당하기 그지없었군요.
주인공 인생에 있어서 '리프레이야'는 터닝포인트에 해당되는 장면일 수는 있으나 등장 포인트 조절에 실패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첫눈에 반했다, 좋아하게 되었다는 감정은 삽입할 수 있으나 그걸 왜 지금에? 제대로 망가져 가는 주인공이라는 장면들을 이리도 쉽게 깨도 되나? 고양이 수인을 도와주고 그 고양이 수인을 보며 그래도 억척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주인공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막 비집고 들어와도 되나? 해도 그 고양이 수인을 기용하든가 왜 게임을 망게임으로 만들지? 같은 온갖 분노가 다 치밀어 올랐군요. 리프레이아와는 분위기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요. 그리고 그걸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동정 시키 주인공도 발암 그 자체고요.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장면들을 넣었지? 주인공이 리프레이아에게 창부냐?라는 대사를 하는데 진짜 딱 그런 장면들을 보여 버리죠. 히로인을 이렇게 싸구려로 만들다니. 간만에 다크 판타지가 나와서 좋아라 했더니 이 무슨 꼴인지... 그런 의미에서 10점 만점에 1점 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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