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모니카 에버렛'은 약관 15세의 나이에 나라에서 7명 밖에 없다는 마술사의 정점 칠현인(현자가 7명)에 뽑힐 정도로 마술에 능통하나 그녀에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심각한 낯가림'. 인간은 무영창으로 마술을 쓸 수 없다는 법칙을 깬 장본인이기도 하고, 기사단이 떼로 덤벼도 어쩌지 못하는 흑룡을 단독으로 격파하는 등 당대 최강의 마술사로서 만인의 사랑과 아이돌 같은 우상을 한몸에 받고 있으나 극히 일부를 빼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사회와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죠. 그녀는 사람들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사람들 앞에서 영창하길 꺼렸고 그럼 무영창으로 하면 되겠네? 하는 얼토당토않는 생각으로 해내버립니다. 그렇게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칠현인이라는 자리에 올랐고, 2년이 흐른 지금, 시골에서 숨어 살던 그녀에게 지상 최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본 작품은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일본식 학원물입니다. 그래서 군기 잡는 장면도 제법 있고, 왕따와 괴롭힘 등 학원 내에서 못 배운 것들에 의해 일어나는 추악한 이면들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고 있는데요. 알콩달콩 청춘 로맨스 학원물보다는 남을 깎아내리는데 도가 튼, 그런 귀족 세계를 바탕으로 해서 엄격한 위계질서와 자신 밑의 계급(평민은 말할 것도 없고)은 인간 취급을 안 해주는 사바나 같은 냉혹함을 보여주고 있죠. 물론 이게 메인이 아닌 바탕으로 깔려 있는데요. 여주 모니카는 지인에 의해 이런 사바나 같은 학원에 강제로 입학해서 어떤 인물을 호위해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심각한 낯가림으로 인해 대인 관계는 궤멸적, 동성과도 눈 똑바로 보고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대인 기피증, 용기 내서 대화를 해도 몇 분 못 가서 거품 물고 졸도. 과연 그녀는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 기간은 1년, 호위 대상은 이 나라의 제2 왕자. 왕자는 학원의 정점, 모든 여성이 우러러보는 미남(일러스트도 잘 나왔음), 모니카와 접점이라고는 개미 눈물만큼도 없을 관계지만 이런 작품이 다 그렇듯, 우연찮은 이벤트로 만나 왕자와 엮여가는 클리셰를 보여주죠. 흥미로운 건 품질 저하식의 장면이 아닌 개그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러다 왕자의 목숨을 노리는 사건이 터지고 모니카는 그걸 추적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보다는 모니카가 학원 생활을 하며 그녀의 병적인 낯가림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더 흥미롭습니다. 상위 귀족과의 트러블에서 내가 참으면 일이 커지지 않는다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본식 피해자 대처법이라든지, 그걸 또 못 본 척하지 않고 정의 구현해 주는 미남 캐릭터라는 클리셰도 보여주죠.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은 꾸미는데 소질이 없고 관심도 없고 못 먹어서 뼈밖에 없는 그녀가 칠현인이라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가 칠현인이라고 밝혀진다면 학생들은 어떤 경악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가 있고, 맛보기로 왕자를 노렸던 범인이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고 뜨악?! 하는 장면은 이 작품에서 명장면에 속하죠. 그런데 학원물이라는 한정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대규모 싸움보다는 왕자를 노리는 범인을 찾는 추리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대인 기피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호위 때문인데도 이걸 알 길이 없는 학생들의 (학원의 정점인 왕자의 곁에 얼쩡 거린다는 이유로) 악의와 질투를 받아도 '내가 참으면'으로 저자세로 일관해서 약간은 발암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마음은 도망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불쌍할 정도로 처절한 모습들을 보이죠.

본 작품은 여성향입니다. 여주와 여러 미남 캐릭터 그것도 왕자라는 구도를 가지고 있죠. 처음은 그저 몰래 왕자를 호위하려 했으나 대인 관계가 궤멸적인 그녀로서는 방법이 서툴렀고 결국 왕자와 접점이 생겨버립니다. 거기에 왕자 주변에는 당연히 추종자로서 미남 캐릭터가 포진하고 있죠. 이벤트가 벌어져 왕자와 접점을 만들고 차차 미남 캐릭터들과도 접점을 만들어 가는데 미남 캐릭터들은 당연히 평민보다 못한 그녀에게 멸시의 시선을 보내나 주어진 임무와 맡겨진 일을 해내는 모습에서 차츰 그녀를 인정해가고 매몰차게 대했던 인물이 조금씩 그녀를 챙겨주는 모습들이 꽤나 인상적입니다. 물론 많은 작품을 봐온 필자 입장에서는 식상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건 왕자를 주축으로 해서 여러 미남 캐릭터들이 여주 모니카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오르죠. 여주 모니카는 왜 중증 대인 기피증을 앓게 되었는가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학대를 당했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사람들을 기피하고 대화할 수 없을 정도로 낯가림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봤는데 그런 복선이 조금 나오면서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과거를 트리거로 삼아 그녀는 무영창을 실현했고, 그것으로 인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을 있게 한 원천인 과거를 넘어서지 못해 자기의 위치를 살리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원에 강제로 입학은 했지만 또래의 친구를 만나고 과거에서 아버지가 말했던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 갈려는 모습에서 응원하게 되더군요.

맺으며: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와 말도 제대로 못해서 처음엔 발암으로 다가옵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바탕으로 깔기 시작하면서(저 위에서 언급한 학대 당한 거 아닐까 하는 것) 조금은 응원하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마음은 시골 오두막에 처박히고 싶지만 주어진 임무를 내팽겨 칠만큼 썩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해서 중반을 넘어서면 발암적인 요소는 많이 희석됩니다. 그리고 마녀의 곁에는 검은 고양이는 필수라는 것처럼 '네로'라는 인간의 말을 하는 고양이를 투입해 소소한 개그를 이끌어 내는 재주가 있는데, 그 외에도 먹을 것은 주섬주섬 주머니에 넣는다거나 지인의 상위 정령의 말장난 등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재주가 좋더군요. 마지막으로 그녀의 지인은 그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괴물". 누가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는가가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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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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