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7권은 외전입니다. 항상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원을 살아가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은 의례 과거를 비추는 장면 한둘 정도는 있게 마련이죠. 호로는 로렌스를 만난 후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했고 그로 인해 그녀가 살아온 발자취가 어떤 걸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었는데요. 이번에 그 궁금증이 조금은 풀립니다. 수백 년을 살아오며 많은 사람을 만나 여행을 했고 같이 지내기도 했다는 그녀, 여기서 조금 걱정되었던 게 여느 작품이고 간에 히로인이 비처녀라고 비치면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누군가에게서 폭로되는 것이 아닌 자기 입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 왔고 같이 지냈다는 걸 스스럼없이 말하는 히로인은 정상적인 작품에서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호로가 로렌스를 놀리려고 했던 말인지라 사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군요. 어쨌건 필자는 조금 더 19금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만 미성년도 접근할 수 있는 리뷰라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이번 7권은 호로가 로렌스를 만나기 수백 년 전, 어느 남자의 꾐에 빠져 수백 년이나 보리밭에 메어져 있기 전의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린 호로가 만난 어린 소년과 소녀의 여행담으로 시작합니다. 영주의 저택에서 일하던 어떤 소년이 영주가 사망하자 쫓겨나게 되고, 덩달아 영주의 숨겨진 딸로 보이는 연상의 소녀도 쫓겨나게 되자 같이 오른 여행길에 호로를 만나 여러 가지 가르침과 도움을 받고 그렇게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로렌스와 마찬가지로 연상의 소녀를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숙맥인 소년의 등을 떠 밀어주는 호로가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소년과 저택에 감금되다시피 자라온 소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으로 발을 내디뎠다가 맞이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소년은 그저 소녀에게 바다라는 자기도 못 본 넓디넓은 호수를 소녀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일념 하나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바다를 찾아 떠난 길에 아직 여물지 않은 아이들답게 투정도 부리고 내일 걱정거리는 모른척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이들에게 시련을 던지듯 습격해오는 늑대 무리, 그런 것들에게서 구해주는 호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과 소녀가 세상에 먹히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의 호로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에서 신선함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이젠 기억이 잘 안 나지만 1권 직후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로렌스가 은화 절상인지 절하인지하는 무모한 도박에 나섰다가 과거와 결별하려는 파슬로에 마을 사람들 때문에 위기를 맞이하고 어찌어찌 사건을 해결한 직후 떠나갔다고 여겨졌던 호로가 대량의 물건을 매입해 청구서를 로렌스에게 보내면서 그를 어이없게 만든 사건 직후인데요. 평범한 사람이라는 반년은 먹을 수 있는 돈으로 옷을 냉큼 구입하고도 태연한 척, 다 먹지도 못할 사과를 마차(馬車) 가득 사서 그를 기겁하게 하고, 결국 그 사과를 다 처리한다고 우걱우걱 거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리고 있습니다. 뭐, 사과는 계기일 뿐이고 진짜 이야기는 옷이지만요. 그렇게 심각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 패스하겠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금 밀수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몇백 년이나 하릴없이 보리밭에 메어져 살았고, 로렌스에게 주워져 허구한 날 흔들리는 마차에 시달려야 했던 호로, 이쯤 되면 운동부족이라는 건 누가 봐도 다 알 수 있죠. 작중 언급은 없지만, 노다지 덜컹거리는 마차를 탔더니 엉덩이가 아프고, 금 밀수 때 멍청한 로렌스 때문에 개고생하고, 그동안 먹을 거 사달라고 해도 모른척했던 그에게 앙갚음이다라는양 앓아눕게 되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병명은 피로, 중세 시대를 모티브로 하는 이 작품에서 굶주림에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에 이렇게 가냘픈 몸매로 고생이란 고생을 다 했는데 쓰러지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근데 문제는 은근히 질투심이 강한 호로를 눈치채지 못한 로렌스 때문에 누워 있어도 마음고생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금 밀수 직후라서 아직 노라와 만나고 있었고 그런 노라의 곁에서 싱글싱글 거리는 로렌스를 보고 있자니 배알이 꼬여가던 호로는 여봐란듯이 열에 쓰려 저 버리고 병석에서 로렌스에게 간호를 받으며 그동안 자신이 지내왔던 일들을 회상하며 이런 인생(견생?)도 괜찮지 않을까, 어린 묘목이 성장하여 거목으로 자라날 동안의 시간을 보리 밭에서 보내야 했던 외로움을 로렌스에게 풀어 버리겠다는 양 그를 놀리지만 이런 쪽엔 영 젬병인 그를 바라보며 망할이라고 혀를 차지만(요건 다소 각색), 한편으로는 순수한 그를 바라보며 이런 인간을 잡아먹는 것도 기쁨이라며 자신의 고집을 꺾는 호로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는 것처럼 병문안 온 노라를 들이는 로렌스, 멍해지는 호로를 보고 있자니 이리도 풋풋한 연애도 다 있나 싶습니다.


아마 호로가 로렌스를 바라보며 한 마리의 수컷으로 보이기 시작했던 건 이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금 밀수를 하며 쫓기던 그때 비 오는 숲에서 숲의 주인과 담판을 위해 호로가 건네준 겉옷이 젖을까 품속에 고이 간직했던 로렌스, 지금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하지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잘 해주는 그를 바라보며, 현랑이라고 불리는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지만 언제나 호로에게 역습을 당해 좌절하면서도 아등바등 쫓아오는 그를 바라보며 싫지 않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마냥 그에게 호감을 느껴갑니다.


맺으며, 과거에서 미래로는 사실 흔한 클리셰이긴 합니다. 로봇물에서도 간혹 쓰이곤 하는 소재이죠. 나만이 나이를 먹지 않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과 주변 모두가 늙어 죽어갈 때, 나만의 시간은 정체되어 있을 때의 괴로움은 불사는 될 것이 못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이번 7권에서 이런 아련함을 조금 느낄 수 있을까 했는데 그냥 밝게 끝내 버리는군요. 못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18권부터 필자가 바라는 현실이 조금식 표현되고 있는 거 같으니까 빨리 정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군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는 사실 아무 내용도 없습니다. 첫 번째는 그저 그녀의 인생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먹는 것과 옷 이야기로 끝, 세 번째가 진짜 이야기로 호로가 노라를 바라보며 질투심으로 포장된 외로움을 단락적으로 표현한 게 조금 아려옵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인연이 있었지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면 했지 진지한 인연은 없었고, 로렌스를 만나 진지해지는 자신에게서 새로운 인연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되리라.. 같은, 마치 첫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과 기대감이라는 두근거림 같은 게 전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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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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