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고정관념이란 참 무섭죠. 까마귀의 색은 검은색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까마귀는 흰색이라고 부르짖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미친놈이라 하겠죠. 그렇다면 진짜로 흰 까마귀가 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멜라닌 색소 부족으로 돌연변이 까마귀는 있는가 봅니다만. 여기선 그런 개체 말고 온전한 흰색 까마귀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기 전까진 믿으려 들지 않겠죠. 판타지에서 나오는 몬스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습격하는 몬스터가 있으면 그걸 잡는 모험가가 있고, 이런 관계가 형성되면 몬스터는 사람을 해치고 모험가는 몬스터를 잡는다는 통념이 성립되어 버리죠.


그걸 뒤집으려 하면 사람들은 악이라 정의합니다. 착한 몬스터가 있다고 해봐야 믿을 사람이 있을까. 벨은 악이 되고자 합니다. 인간의 말을 하고 인간의 감정을 가진 몬스터 '제노스'를 만나버린 벨은 인간과의 공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가요. 하지만 통념을 뒤집는다는 건 악이 된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영웅에서 악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그럼에도 소년은 자신이 품은 신념을 믿고 나아가죠. 모든 몬스터와의 공존은 힘들더라도 '제노스'들과는 공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때 그런 생각을 가졌던 소년은 이 시대에 영웅이라 불리는 핀, 그리고 아이즈를 만나 그게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달아 갑니다.

소년을 가로막는 [로키 파밀리아]와의 일전, 이것은 공존 이전에 감정의 문제로 발전하게 되죠. 몬스터에 의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이들 앞에서 몬스터와의 공존을 부르짖을 수 있을까? 하나같이 그런 아픔을 안고 모험가가 되어 몬스터를 잡는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으로 호소해야 그들의 마음에 닿을까. 이번 10권은 이런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험가들은 자신들의 믿고 있었던 가치관과 고정관념 그리고 통념에 비춰 몬스터는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일 뿐, 대화의 상대는 아니라고 여기죠. 그럼에도 벨을 필두로 한 [헤스티아 파밀리아]는 작은 걸음을 시작합니다.

결코 인간을 습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 가려는 제노스들의 눈물 나는 여정, 그리고 그걸 가로막는 [로키 파밀리아]와 모험가들, 그 과정에서 벨이 인간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라는 고찰이 시작됩니다. 착한 심성과 눈부신 성장을 하며 모험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던 벨의 한순간 추락은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로키 파밀라아]에도 적잖은 파문을 던져요. 그 옛날 던전에서 미노타우로스와의 일전을 지켜봤던 [로키 파밀리아]의 수뇌진들이 받은 충격은 크다 할 수 있겠죠. 그렇기에 소년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말리기 보다 당혹감과 이질감에 곤혹스러워합니다. 그들이 믿어왔던 가치관과 고정관념을 벨이 깨버렸거든요.

벨에 의해 흰색 까마귀도 있다는 걸 알아 버렸습니다. 고결한 흰색, 하지만 울음소리에서 오는 거부감은 그 새가 까마귀라는 걸 재인식 시켜주죠. 하지만 착하고 올곧기에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언가 뜻이 있을 거라 여기기 시작하는 사람들. 하지만 경계가 무너지면 망하는 건 우리 인간 쪽이기에 [로키 파밀리아]는 이도 저도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통념에 따라 몬스터는 가차 없이 토벌해야 되는 대상이라면 '제노스'들 또한 그러해야 함에도, 흰색 까마귀도 있다는 걸 알아버린 지금 무엇이 올바르고 아닌지를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헤스티아 파밀리아]와 제노스들을 압박해가는 [로키 파밀리아], 그리고 거길 비집고 들어오는 '이블스'잔당과의 전쟁은 [로키 파밀리아]로 하여금 어느 한쪽이라는 결단을 내리도록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이제서야 언급하지만 이번 외전 10권은 본편 11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요. 본편이 벨의 시각에서 진행이 된다면 외전은 [로키 파밀리아]의 시각에서 진행돼요. 이번 10권도 그렇습니다. 이미 엔딩이 정해져 있기도 하죠. 그래서 작가는 벨이 [로키 파밀리아]에 끼치는 영향에 중점을 뒀더군요. 벨은 통념을 깨부수며 남들이 노할 때 난 예스한다는 것처럼 몬스터와 인간도 공존이 가능하다는 걸 역설해가죠. 당연히 [로키 파밀리아]는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고요. 하지만 그의 필사적인 노력과 '제노스'들이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는 모습에서 점차 통념이 깨어지게 돼요.


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좋지가 않다고도 역설하는데요. 던전엔 '제노스'만 있는 것이 아닌 일반 몬스터도 있고 이 몬스터들은 제노스와 달리 인간을 공격을 하죠. 제노스를 알아버린 모험가는 과연 몬스터들을 공격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명확한 답은 없어요. 그걸 판단하는 건 본인이 되겠죠.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날아오는 칼에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준 제노스를 바라보는 엘프 모험가는 무얼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친구가 되고 싶었다는 제노스를 공격한 자신은 마물 이하가 아닐까. 고뇌하는 엘프에게서 우려와 희망이 교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분명 첫걸음은 힘들어도 미래는 어둡지만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하죠. 


결국 던전에서 만남을... 어쩌고 하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나 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서 제목이 큰 스포일러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벨은 던전에서 만남을 이뤘습니다. 그게 원래의 계획인 여자가 아닌 것엔 유감이지만 뭐 릴리와 아이즈를 만났으니 아주 유감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영웅의 탄생이랄까요. 타산과 의도를 벗어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걸 바라보며 또 다른 영웅이 되고 싶었던 핀은 벨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베이트에 이어 핀도... 묵념, 그리고 아이즈는 이 작품에서 제일 많이 바뀌게 된 존재가 되었다고 할까요.


영웅을 바랐던 그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 영웅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찾아 나섰죠. 어릴 적 몬스터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되고 부모님을 잃었던(이게 좀 헷갈리는데) 그녀는 몬스터에 대한 반감이 누구보다 높았습니다. 몬스터라면 그게 누가 되었든 죽이려 드는 아이즈, 하지만 벨을 감싸는 비네에게서 어릴 적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쯤 오면 시사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겉모습이 다르다고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걸, 까마귀의 색이 검다 해도 속까지 검지 않다는 걸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죠. 색이 혐오스럽다 하여 배척하는 건 옳지 않다고, 아이즈는 그렇게 무너져 갑니다.


맺으며, 외전이 본편보다 더 재미있는 건 예전부터 그랬지만 이번 10권은 이미 엔딩을 알고 있음에도 재미도에 있어선 최고군요. 특히 제노스를 둘러싸고 겪는 갈등과 해소 그리고 이해를 정말 잘 풀어 놨습니다. 요점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죠. 비율 문제이긴 한데 인간 중에서도 나쁜 놈들은 얼마든지 많고, 몬스터는 쓰러트려야 할 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존재도 있다는 것, 인간과 마찬가지로 선악 구분을 하는 게 좋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벨의 영향을 받아 핀과 아이즈의 심경 변화는 눈여겨볼만했고요. 그리고 제노스로인하여 영웅의 탄생을 알리게 됨으로써 이야기는 종반을 향해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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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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