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백곰 전생 1권 리뷰 -모성애와 부성애 그리고 가족-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책임감이랄까요. 가족의 유대랄까요. 인간족의 침략에 의해 동족과 부모를 잃어버린 루루티나와 그녀의 다섯 여동생들은 침략자의 마수를 피해 숲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부족장의 자식들로써 부족함 없는 삶을 지내다 피난 온 숲속에서 먹을 것은 변변찮고 수렵에 대한 지식도 전무한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제일 연장자이자 맏이인 루루티나는 갈수록 야위어가는 동생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애가 타는 심정으로 오늘도 양식을 구하러 나간 숲에서 침략자의 군대가 자신들을 잡으러 온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미끼 역할뿐...
이 작품은 이세계 전생물입니다. 주인공 쿠마키치는 산을 좋아하는 어디에나 있는 샐러리맨으로서 오늘도 등산을 하였죠. 그러다 삐끗해서 비명횡사하였고 눈을 떠보니 백곰이더라는 시추에이션인데요. 그런데 그냥 백곰이 아니고 몸 무게 400킬로에 키는 2미터가 넘는 킹왕짱(?) 백곰이었으니, 그렇다면 입에서 불을 뿜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가는 치트키도 있을까?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무식하게 힘만 세고 극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털과 표피만 있을 뿐이군요. 그래서 몬스터와 인간을 두부 자르듯 그냥 자르고 썰어 버리고 깨물어 버립니다. 여타 작품에서 남들은 치트키로 화려하게 노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몸으로 때워요.
그 백곰과 루루티나의 만남은 참 극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 거리다 루루티나를 덮치는 인간족 군대를 보고 격양해 저돌맹진 해버리는 우리의 주인공, 이제 와 밝히지만 루루티나와 그녀의 여동생들은 웨어울프라는 짐승 귀와 꼬리를 가진 수인족인데요. 짐승 귀는 보호받아 마땅한 것, 쿠마키치는 기절한 그녀를 숲속 안전한 곳에 고이 대려다 놓고 길을 떠나요. 그렇게 시작되는 인연, 여담이지만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가수 이선희 씨의 인연이라는 곡과 이 작품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게 돼요. 특히 다모의 명장면을 수록해서 만든 뮤직비디오와 매칭하면 더더욱이랄까요.
좌우지간 쿠마키치는 길을 떠났지만 멀리 못가 또 어슬렁거리고 하늘의 뜻이라는 듯, 다시 루루티나와 그녀의 여동생들과 만나게 돼요. 그리고 그는 신으로서 숭상을 받기 시작하죠. 곰과 웨어울프라는 서로 다른 종이 만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서로가 가진 건 몸뚱아리 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래도 동물의 모습에 가까운 백곰은 숲의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편인데 반해 인간의 모습을 한 루루티나와 그녀의 여동생들은 참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죠. 이에 보다 못한 쿠마키치는 그녀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먹을 것을 잡아 줘요.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생판 모르는 타인을 위해 자신이 가진 지식과 능력을 베푸는 일이 과연 쉬운 일일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라노벨이라는 정의답게 가볍게 읽을만하면서도 내포하고 있는 뜻은 좀 크게 다가오는데요. '외로움'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라고 하죠. 쿠마키치는 남자로서 그녀들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외로움을 달래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녀들에게서 그 답을 보게 되었죠. 그녀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무언가가 필요했고요. 그래서 이 작품은 외로움이라는 키워드 외에도 다소 필요에 의한 타산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이후에 찾아오죠. '가족' 종족이 다를지언정 한 솥밥을 먹고 같은 울타리에서 자고 부대끼고 하는 사이에 어느 순간부터 서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게 돼요.
이게 가족으로써 참 극적이라 할 수 있는 게, 맏이인 루루티나가 보여주는 동생들을 위한 헌신은 참으로 대단하다 할 수 있어요. 부족이 멸망하고 앞 일을 아무도 모르게 되었을 때 동생들을 버리고 도망갈 수도 있었으나(작품 내에선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았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영양실조에 빠져드는 동생들을 위해 지식도 없는 수렵에 온 힘을 쏟는 장면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침략자 인간의 군대가 숲으로 왔을 때 잡히면 여자로서 모든 게 망가진다는 걸 알면서도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미끼를 자처하죠. 그러다 결국 인간들에 의해 납치되어 모진 고문을 받게 돼요.
근데 또 극적인 게 피가 섞인 가족도 아닌, 모른 채 해도 별 상관이 없는 타인의 그런 사이였음에도 어느 순간 옆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 같이 지내며 서로가 외로움을 달래준 사이로 발전했고, 이젠 가족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녀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눠주었던 쿠마키치에겐 그녀들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었어요. 그런 가족 중에 특히나 신경 쓰고 있었던 루루티나를 잡아간 인간족을 용서할 리가 없었죠. 오로지 저돌맹진과 무엇이든 수박 자르듯 잘라버리는 손톱(&발톱)을 이용해 인간들에게 천벌을, 그리고 소중한 것을 되찾으려는 그가 욾조린 대사 '태어 난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선혈로 물들어가는 인간족 요새...
15~6살이라면 적어도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할 나이이죠. 하지만 아직은 아이의 경계가 남아 있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그런 나이대에 루루티나가 짊어져야 될 삶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어요. 응석을 부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모든 걸 동생들을 위해 양보를 해야 하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너무나 모진 환경 속에서도 기죽지 않아야 되는 현실에서 아이이면서 어른이라는 가면을 써야 되는 안타까움, 이건 진정한 모성애라 할 수 있어요. 그런 그녀가 모진 상황을 이겨내고 처음으로 주인공 가슴에 파묻혀 우는 장면은 라노벨이라는 장르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을 보살펴주는 쿠마키치의 모습은 부성애라 할 수 있고요.
맺으며, 루루티나의 동생들 특히 5살 세쌍둥이들이 꽤 귀엽게 나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느낌을 받았군요. 하지만 으레 전쟁이나 이런 상황에서 제일 먼저 죽는 게 아이들이라는 듯, 영양실조에 걸려가는 장면은 안타깝게도 하죠. 그런 상황을 타개해준 게 쿠마키치였고 자신을 두 번이나 구해주었으니 루루티나의 상황이 엉뚱한 방향으로 성장하는 게 또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게 진정한 그녀의 모습이라는 듯...
그건 그렇고 판타지를 가미한 가족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시리어스 한 장면이 많이 들어가 있군요. 인간이 두부처럼 썰려 나가고요. 특히나 성(性) 적인 부분이 꽤 들어가 있는데 보호받지 못하는 여자들의 처우란 바람 앞에 등불이라는 것처럼 거침이 없습니다. 결국 이 말은 루루티나의 처우가 좋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히로인을 꽤나 고생시키는 타입의 작가랄까요. 그로 인해 주인공과의 유대가 더욱 끈끈해지기도 합니다만.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조마조마 해질 수밖에 없죠. 야구 동영상을 너무 봤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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