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고블린 슬레이어 외전 : 이어 원 2권 리뷰
오늘은 고블린 퇴치하러 갔다가 좀 희귀해 보이는 반지를 손에 넣었습니다. 득템일까? 팔아서 언제나 쪼들리는 살림에 보탤까? 그러한 마음에 도구점에 갔던 고블린 슬레이어는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감정이 되지 않은 거 끼었다가 저주라도 받으면 어쩌려고?(라는 분위기) 그래서 그는 마녀(창잡이 파트너)의 소개로 도시 외곽 어느 집을 방문하게 돼요. 거기서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있어서 인생과 지식이라는 경험을 한 단계 끌어올려 주게 되는 사람을 만나죠. 고전 술사(아크 메이지), 고령도 아니고 젊지도 않은 슬슬 황혼기에 접어드는 듯하면서도 검의 처녀에 뒤떨어지지 않는 요염함을 가진 마법사를 만나는데요.
고블린 슬레이어는 반지의 감정을 바라지만 그녀(고전 술사)는 되려 자신의 일을 도와 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그 의뢰란, 길드에서 몬스터 매뉴얼 개정판 제작 의뢰를 받았는데 외면은 못하겠고 그러니 고블린 배 갈라 보고 싶은데 협조 좀? 본편에서의 요염함을 검의 처녀가 맡고 있다면 외전은 고전 술사가 승계하고 있다고 해야 될까요. 1권에서 신랄하게 비꼬았던 1세대 폴리곤 같은 일러스트임에도 고전 술사의 일러스트는 아날로그적 요염함이 묻어나요. 하지만 고블린 슬레이어에겐 다 무슨 소용이랴. 그런 낌새를 느낀 것인지 그녀는 그가 들고 온 반지를 팔아주면 밤 시중도 해줄 수 있는데? 라지만 그는 '고블린 퇴치에 필요한 걸 받겠다.'
자그마한 시작, 마치 시작의 마을에서 용사를 꿈꾸는 소년이 나무 막대기를 들고 길을 떠나는 듯한. 그런 만남입니다. 용사의 파티에 빠지지 않는 '현자'라는 위치, 학자로써 탐구열이 남달라 남들은 우웩 하며 눈을 돌릴만한 짓을 저질러 주는데요. 가령 본인이 직접 고블린 배를 갈라서 5년 후 미래 고블린 슬레이어가 여신관에게 했던 것처럼 내장을 덕지덕지 바르는 괴팍한 짓도 서슴지 않는 고전 술사의 담력은 어쩌면 고블린 슬레이어와 같은 과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죠. 그래서 그럴까요. 이들은 이후 더 없을 유대감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어쩌면 슬픈 예감 밖에 들지 않는 복선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몬스터 매뉴얼 개정판 의뢰로 시작한 만남은 어느새 고전 술사 개인 의뢰로 넘어갑니다. 고블린 배를 가르면서도 학구열 치곤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한 그녀, 지식은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문과 내지는 철학과가 좋아할 만한 내용이 충실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신들의 놀이 판과 주사위라는 문구에서 그녀가 추구하는 학구열이란 무엇인지 조금식 밝혀져 가죠. 괴짜(고블린 슬레이어)와 괴짜(고전 술사)의 만남, 같은 과에 속해서 그런지 대화도 스무스하게 흘러갑니다. 이런 장면들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해요. 모험이란 서로의 눈 높이에 맞춰 서로의 지식과 맞물릴 때 비로써 빛을 본다는 듯이...
그런데 그걸 바라보는 소치기 소녀의 마음이 울렁이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마음속에 자리 잡아버린 그(고블린 슬레이어)의 등을 좇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가 퇴근하면 밥을 해주고 말을 걸어주는 것뿐, 나와 그의 과거를 알고 있기에 그가 하고 있는 일을 반대하지 못하는 아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가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지키는 것뿐, 부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일을 그만두고 안전한 일을 찾으면 안 될까?(분위기가 그렇다는 말) 사축이 되어 혹사당하는 남편을 보는 듯 애가 타들어 가지만 지금은 그저 그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밖에 못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작가 후기에도 나와 있지만, 외전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일부 히로인들의 호감도 축적이 어떻게 이뤄졌냐를 다루고 있죠. 접수원 누님의 경우에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고블린 퇴치 의뢰를 묵묵히 받아주는 그의 고마움을 깨달아가는 과정도 눈여겨볼만합니다. 그리고 여자를 여자로 봐주지 않는 그의 시선에서 이 남자라면 안심하고 곁에 있어도 되겠다는 느낌, 힘이 있다고 뻐팅기지 않고 남의 공적을 가로채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군소리 없이 받아주는 고마움, 그게 고블린 한정이라는 것에서 다소 불만이지만, 뭐 어떠랴. 내가 마시려고 타놓은 거긴 한데 차 마실래요? 마셔주는 그를 보며 흐뭇해지는 감정...
아무튼 고전 술사와 고블린 슬레이어의 모험은 계속됩니다. 며칠 걸리는 거리를 가며 그와 둘이서 야영을 해도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 덮쳐지지 않는다는 안심은 여자에게 있어서 보물과도 같은 거겠죠. 그전에 고전 술사는 현혹을 걸어서 혼자 X위하게 만들어 버린다고는 합니다만(전력이 있는). 별을 바라보며 지식을 풀어놓는 고전술사와 '그런가'와 같이 짧은 문장만을 대답하는 고블린 슬레이어와 사이는 어딘가 이질적이면서도 모험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분위기를 풍깁니다. 앞으로도 없을 모험 다운 모험, 고블린을 때려잡고 배를 가르고 그러면서 위기에 빠지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뒤로 가면서 고블린의 배를 가르는 의미가 퇴색되어 가지만 이거 또한 뭐 어떠랴. 그녀가 바라보는 곳은 더욱 높은 곳이라는 걸 이야기는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암흑의 탑'에 진리가 있을지니. 최종 도착지를 거기로 정한 두 사람의 여행은 종말을 향해 갑니다. 또 언급하지만 1권에서 1세대 폴리곤 같은 일러스트라고 험담을 하였는데 2권을 보면서 철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군요. 고전 술사의 일러스트도 그렇지만 암흑의 탑을 배경으로 한 일러스트는 감성을 자극하기 충분했습니다. 뭔가 애틋한? 또는 몽환적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마음을 끌어당긴 일러스트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별....
맺으며, 본편 초반에서 느꼈던 다크함이 살아 있습니다. 고블린에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이나 그걸 표현한 것이나,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보다 내면적인 모습도 많이 언급되고 있어요. 가령 소치기 소녀가 고블린 슬레이어를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같은 시간을 살아도 서로에게 흐르는 시간은 다르다는 게 느껴지곤 하죠. 언제까지고 정체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고블린 슬레이어와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려는 소치기 소녀의 내면적 갈등. 여기에 고전 술사의 엔딩은 가슴 먹먹하게 해줍니다. 허를 찔렸다고 할까요. 본편을 통틀어 이런 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을 거라고 단언할 정도였군요. 스포일러라 자세히는 못 쓰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표지에 불만이 많습니다.
아무튼 고블린 슬레이어의 무례한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본편에서 머메이드(인어)를 보고 '고블린인가?라든지 외전에서 고전 술사 보고는 '여자였군'이라지 않나(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대 못 알아볼 리 없는데). 사실 이런 부분은 이 작품의 몇 없는 개그 포인트이죠. 그 외에 엑스트라의 일상은 무언가를 시사하기도 하는데요. 젊은 전사의 경우 1권에서 안 좋은 일을 겪고 꺾일만할 텐데도 초보들이 위험한 의뢰에 빠지지 않게 지도를 하는 부분에서는 죽음이라는 공포에 망가지는 자가 있는 반면에 극복하여 일어서는 자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즉 다크함만이 있는 건 아니다라는 의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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