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약사의 혼잣말 2권 리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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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알고 있었다. 내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친엄마가 누구인지. 하지만 축복받은 탄생은 분명히 아니었기에 모른척하고 있었을 뿐.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기녀가 사랑하는 남자와 맺어져 아이를 낳았지만 남자는 마치 아이가 태어나 더 이상 즐길 가치가 없다는 것마냥 기녀의 곁을 떠나고 마는 흔한 시대라고 아이는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철이 들 때부터 유곽에서 양아버지와 약을 제조하며 근근이 생활했던 아이. 결코 유곽은 아이에게 보여줄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거긴 양아버지와 더불어 아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공간이었고, 소중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여기며 아이는 소녀로 성장한다.
마오마오, 방년 18세. 양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약에 미쳐사는 괴짜 중 괴짜로 자랐습니다. 그녀는 독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고 독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시음을 하다가 죽을 고비도 넘기는 등 오직 약만을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자 애입니다. 그러다 인신매매 당해서 후궁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하녀로 일하게 되는 비운을 맞이하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슬럼가에서 못다 핀 꽃봉오리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꽃을 피우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처음엔 다른 하녀들의 등쌀에 들볶이는 나날도 있었지만 운 좋게 상급 비(후궁 중에 서열 1위)의 하녀가 되면서 그녀의 숨겨진 두뇌가 맹위를 떨치게 되죠.
큰길에서 조금 벗어난 뒷골목에서조차 강x이 서슴지 않게 일어나는 시대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주근깨를 심고 못난이 화장을 하고 일부러 살을 안 찌우는 등 참 그녀의 인생은 참 기구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후궁에 들어오면서 자신이 가진 약에 대한 지식과 독창적인 코난급 추리력을 내세워 자신의 자리를 굳혀가는 게 참 인상적인데요. 여기에 왕족이라고 의심이 드는 '진시'라는 환관(우리로 치면 내시)을 만나면서 그녀의 등에는 날개가 장착이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의 묘미이자 백미는 이거죠. 진시라는 환관과 마오마오의 관계, 남자 주제에 진시가 가진 미모 때문에 모두가 우러러보는 상황에서 마오마오는 그를 벌레보듯 하게 되는데요.
처음엔 누구나 우러러보는 자신을 벌레보듯 하니까 심술이 나서 자신이 가진 미남계로 함락 시키려다 보기 좋게 격침되는 장면은 정말 유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뒤로 마오마오의 마음을 끌기 위해 자신의 위치도 생각 안 하고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은 매번 볼 때마다 흐뭇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은 마오마오의 벌레 보는 시선 앞에서 무력화되어 버리죠. 처음엔 재미있는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마음이 끌려 다른 남자가 마오마오 곁에만 있어도 불같은 질투를 폭발 시키는 모습은 여간 귀여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마오마오는 귀찮기만 하죠. 진시가 그럴수록 벌레 등급 시선은 자꾸만 내려가서 나중엔 말라비틀어진 지렁이급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작가가 독자들의 개그 코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군요.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그런 웃긴 이야기도 듬뿍 들어가 있지만, 마오마오의 친부모에 대해서 언급이 됩니다. 분명 부모가 있기에 아이는 태어나는 것이죠. 아이의 탄생은 축복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축복받을 수 없는 탄생도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마오마오가 딱 그랬습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끼리 만나 맺어져 아이를 낳은 게 아닌, 마오마오가 태어났을 땐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충격과 기녀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병을 얻어 버리죠. 사생아와 고아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버림받은 모녀의 이야기는 흔합니다. 그저 아이는 무언가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고, 그게 양아버지의 손이었다는 게 소녀에게 있어서 얼마나 축복이었을까.
그래서 마오마오는 친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 활달한 진시가 정말로 겁을 먹을 정도로 귀기 서린 모습을 보일 정도였으니 마오마오가 친아버지에게 보내는 증오는 정말 깊다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요. 이야기는 왜 아버지가 모녀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비통한 마음을 품고 살아왔는지 조금식 서술하기 시작합니다. 딸을 위서라면 권력을 얼마든지 휘두르겠다는 것마냥 그녀의 뒤를 받쳐주기 시작하죠. 궁중과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조금식 해결하는 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알게 모르게 힘을 써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츤데레에 가깝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마오마오는 용서할 수 있을까. 병세가 위중한 엄마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마오마오는 아버지와 단판을 벌여갑니다. 사실 이제 와 과거의 일은 딱히 어떻게 되는 상관은 없었습니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보다 양아버지의 곁에서 약을 조제하고 아픈 엄마를 돌보고, 궁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미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기에. 그럼에도 그녀는 매듭을 지어가죠. 증오와 갈등이 아닌 화해를 위해 마오마오가 선택한 길은 수백 년을 걸쳐 환생을 거듭한 끝에 만난 연인에 견주듯 가슴 한켠에 뭉클함을 선사합니다.
맺으며, 진시가 등장하는 장면은 매번 배꼽을 잡게 되는데요. 이번에도 저 남자는 괜찮지만 너 님은 안 돼 하는 장면에서 진시가 좌절하는 부분은 배꼽을 빼죠. 환관(진시)은 아랫도리가 없는 반푼이라고 불경스러운 생각을 대놓고 하지 않나(이번에 복선이 나오길 잘 붙어 있다고), 처음엔 뭐 이런 남자 주인공이 다 있나 했는데 갈수록 둘이 캐미가 폭발하는데 정말 보고만 있어서 흐뭇해집니다. 특히 '우황 줘요!'하는 부분은 이번 에피소드의 최대 백미라 할 수 있었군요. 그리고 이번엔 큰 이벤트도 터트려 주죠. 이거 둘이 사귈 수밖에 없네 하는 수준의. 게다가 마오는 평민이 아니었다고 밝혀졌으니 뭐, 이 작품은 역하렘이다보니 진시 말고도 남정네 몇이 나와서 마오마오 주변을 맴도는데 은근히 진시의 신경을 건드리는 장면들도 상당히 웃겨줬습니다.
마오마오의 친부모에 대한 장면에서는 울고 웃고 하게 하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더군요. 처음엔 뭐 이런 쓰레기가 다 있나 하는 최악의 설정에서 갈수록 사정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결국 누구보다 딸과 부인(기녀)을 사랑했다는 게 밝혀지면서 훈훈한 가족물이 되어 버립니다. 근데 여기서도 마오마오식 개그가 폭발하는데요. 가령 친아버지를 씨받이로 비유한다던지, 약과 상급 비들과 일부 지인을 빼곤 뭘 만나도 그녀의 평가는 절대 0도를 가리키는 현실에서 친아버지도 거기에서 비켜가지 못하는 게 유쾌하죠. 보니까 마오마오의 머리가 비상한 건 친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듯, 거기다 영재였던 양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범과 사자가 합쳐 유니콘이 된 듯한? 아무튼 양아버지의 과거도 밝혀지고 친부모도 밝혀지고 그녀의 주변이 꽤 빠르게 변해가는 에피소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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