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 될, 사회적으로도 미숙한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보호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목숨이 위협받는 곳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될 규범이라든지 속박(법률)에서 벗어났다고 했을 때, 이성은 그러지 말아야 된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아담과 이브에서 사과를 따먹으면서 원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식 원죄가 쌓이고 쌓이게 된다면?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아담과 이브에 빗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원죄는 악이 되어 파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죠.

 

주인공을 위시한 1천여 명의 학생이 이세게로 전이한지도 벌써 4개월이 지났습니다. 학생들이 처음 도착한 곳에 지었던 마을(콜로니)은 반란으로 인해 궤멸적 타격을 입었고, 학생들을 통솔해야 될 선생님들은 일찌감치 저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살아남은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주인공 '타카히로' 또한 사람들을 찾아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죠. 그의 동료이자 권속들인 미믹 슬라임 '릴리'에 이어 나무인형 '로즈', 아라크네 '거베라'와 여우 몬스터 '아야메', 그리고 씨앗 몬스터 '아사리나'와 함께요. 또한 도덕적 해이에 희생당한 여학생 '카토 마나'도 주인공과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기나긴 여행 끝에 도착한 틸리아 성체, 이세계는 수해라는, 세계를 잠식하는 숲과 거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과 생존을 건 전쟁 중이었는데요.틸리아 성체는, 집 아궁이에 고구마라도 묻어두고 나왔는지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학생 A와 4권에서 언급했던 세상을 멸망 시키고자 획책하는 학생 B(둘 다 이름 자체가 스포일러이다 보니)가 저지른 광란으로 인해 성체는 시산혈해가 되어 버렸죠. 처음으로 이세계에 와서 비록 종족은 다를지언정 주인공에게 마음을 나눠주고 인간으로 대접해주었던 엘프 '시란' 또한 희생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죽고, 성체는 기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자, 어떡하나. 적지 한가운데에 위치한 성체가 기능을 상실했으니 더 이상 있어봐야 무의미하고 본진(제도)로 후퇴가 결정되었습니다. 주인공은 동맹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의 고향에 가기로 합니다. 이세계는 마물과 전쟁 중이고 마물이라면 치를 떠는 걸 넘어 증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인공과 그의 권속들은 종교로 치면 이단, 비록 틸리아 성체 공방전에서 인간들 편에 서서 싸워준 주인공이라지만 본질이 마물을 부리는 인간인 이상 인간 세계에 발을 붙인다는 건 있을 수가 없어요. 살아남은 학생들을 용사로 치켜세우며 다 제도(본진)로 모아가면서도 주인공은 따돌림당하는 현실, 아니 그가 거부합니다.

 

인간들보다 권속들과 살아가길 희망하는 주인공, 그리고 거기에 껴보고 싶어 하는 '카토 마나', 이 작품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를 맞이한 인물이 있다면 '카토 마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녀는 주인공 보다 더한 인간 불신에 빠져 남자 앞에만 서면 혼절을 해버릴 정도로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죠. 주인공에게 구출된 뒤 그와 함께하면서 어딘가 공허한, 낡은 모포에 집착하고, 아라크네 '거베라'와 싸울 땐 용기로서가 아닌 거의 자포자기로 몸을 던지는 등 불안한 삶을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안전한 곳에 대려다 주려는 주인공에게서 밝은 빛을 보게 된 것인지 조금식 마음을 열게 되었죠.

 

거기에 더해 나무인형 '로즈'와 백합 분위기를 낼만큼 사이도 좋아지기도 했고요.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사람(로즈는 마물이지만)에게 치유받으면서, 언제까지고 상처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녀가 조금식이지만 앞으로 걸어 나가려 하는 모습은 이번 5권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아니었나 합니다. 공허함을 버리게 된 그녀가 보여주는 여러 감정들 그리고 환한 미소, 하지만 그 미소가 자신(주인공)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주인공의 둔함은 정말 치를 떨게 합니다. 이런 둔한 감정으로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을까 할 정도로 둔한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사실 이런 게 청춘의 한 페이지일 수는 있습니다. 좋아하게 된 이성을 바라보는 두근거림이 있다고 할까요. 근데 개연성이 조금 부족한 건 어쩔 수 없군요. 사실 주인공이 한 일은 그저 카토 마나라는 소녀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는 처음 약속을 지키려 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죠. 카토 마나는 주인공 보다 나무인형 로즈와 친구 먹으면서 오히려 로즈에게서 치유받은 게 더 큼에도 그 마음은 주인공에게 향하는, 그저 작은 호의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작은 배려에서 호감이 쌓이고 쌓인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틸리아 성체를 나서며 다른 길을 가려는 주인공에게 자신도 데려가 달라는 그녀의 말에서 사실 필자는 호감이라기보다 의존증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군요.

 

어쨌거나 치트 능력자 중 최강자 '이노 유나'가 주인공 뒤를 쫓아옵니다. 주인공은 틸리아 성체를 부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 혐의를 받게 되었군요. 여기서 말입니다. 자신들이 믿어왔던 용사가 사실은 나쁜 놈이었다면? 멸망의 기로에 서게 된 작금의 시대에 한줄기 빛과도 같은 용사가 자신들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수백 년간 일정 주기로 찾아와 자신들을 구원해주었던 용사가 말입니다. 용사는 곧 절대 선이라는 공식에서 용사의 부정은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겠죠. 그래서 정보를 숨깁니다. 그리고 그 혐의는 주인공에게 덮어 씌워졌습니다. 마물을 부리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정령을 부리는 엘프조차 마물 편이라도 매도하는 이세계에서 마물을 부리는 주인공의 입지 따위야. 주인공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부조리한 건 없겠죠.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주인공 뒤를 쫓아온 원정대 탑클래스 '이노 유나'는 주인공에게 적의를 드러내는데...

 

맺으며, 이 작품처럼 주인공을 못살게 구는 작품도 없을 겁니다. 같은 학생들에게 반죽음 당한 끝에 그래도 그런 놈들이라도 같이 있고 싶다는 일념이 마물을 권속으로 부리는 능력을 얻게 해줘버렸고, 그 능력 때문에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는 아이러니, 진실은 사람을 구한 용사 다운 모습을 보였건만 죄인이 되어 쫓기게 되는 옛날 어떤 미드처럼 도망자 신세에 처해지고요. 그나마 힘이라도 있으면 헤쳐 나가기라도 할 텐데 권속은 부려도 정작 본체는 구멍투성이이니 세상 참 공평하지가 않아요. 원래는 주인공이 가져야 될 힘이 한쪽 말만 듣는 편중된 생각으로 똘똘 뭉친 여자(이노 유나)에게 올인 되는 바람에 어떻게 해볼 사이도 없이 뒤지게 얻어맞아야만 하는 부조리는 정신이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겠건만 워낙 둔하다 보니 그럴 생각도 안 드는 듯....

 

이번 5권 리뷰는 카토 마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만. 그도 그럴게 등장인물 중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줘서 임팩트가 강했던 게 이유가 아닐까 싶군요. 얼굴을 붉히는 등 표정 변화에 미소까지 어우러지니 읽는 내내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상처에 주저앉아 있기보다 일어서서 조금식이라도 걸으려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눈부셨군요. 하지만 그 호감이 향한 주인공의 둔함은 정말 치를 떨게 합니다. 권속에게서 그녀(카토 마나)의 본심에 가까운 말을 들었음에도 그녀의 진심을 알아채지 못할 때는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군요. 주인공은 그녀를 어디까지나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면 끝이고, 그런 약속을 했을 뿐 그 이상을 바라고 있지 않았다고는 해도 빤히 보이는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다는 건 정말... 그나저나 6권은 발매 출판사 담당자의 말을 빌리자면 언제인지 기약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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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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