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비탄의 망령은 은퇴하고 싶다 1권 리뷰 -나 좀 그만 놔주면 안 되겠니?-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추방물, 착각물, 하렘?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하는 파티가 있고, 다들 재능이 넘쳐 승승장구하는데 나만 재능이 없다. 추방물의 정석이라고 하면 이것이겠죠. 재능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주인공이고요. 파티는 그런 주인공을 추방해버리죠(여기에 NTR이 가미되면 금상첨화). 그런데 알고 보니 파티에서 상성이 나빴을 뿐, 주인공은 엄청난 재능을 숨기고 있었네? 이제 역으로 발라주는 카타르시스가 시작되는, 솔직히 이게 뭐가 재미있나 싶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본 작품도 파티에 참여 중인 주인공이 무능력이라는 추방물의 일종이긴 한데, 파티원들이 합심해서 너 님 나가!가 아니라 가긴 어딜 가!를 시전하는 역추방물? 같은 이야기를 그립니다. 재능이라곤 일절 없고, 말빨이 엄청 쎈 것도 아니고, 머리가 비상한 것도 아니고,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성격에, 권력자에겐 머리부터 조아리는 비굴함에 그렇다고 잘 생기기나 했나. 그런데도 주변으로부터 기이하게 보호받는 느낌이 장난 아니란 말이죠?
아무것도 모르던 꼬꼬맹이 시절 부와 영광을 이 손에, 영웅이 되자며 의기투합하여 트레저 헌터(한마디로 모험가)의 길에 들어선 6명의 꼬맹이들. 5명은 승승장구하여 이제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헌터가 되었는데 주인공 혼자만 쭈구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들 난다 긴다 하는 상황에서 재능이라곤 개미 눈물만큼도 없던 주인공은 염세적이 되어 버리는 건 어쩔 수 없겠죠. 인간관계는 파탄 직전, 언제나 토할 거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며, 위험은 피하는 게 상책, 귀찮은 건 남에게 떠넘기는 게 최고, 오늘은 제도 굴지의 어떤 클랜(여러 파티 연합)에서 1년에 한번 있는 파티원 모집에 응모하러 왔다가 소란에 휘말리며 쭈굴쭈굴 모드. 그런데 소란이 점점 커지며 싸움으로 변질되고 거기에 휘말려 처박혀 쓰고 있는 후드가 벗겨진 동시에 들려온 귀여운 여자아이의 말, "마스터, 뭐 하세요?" 작가가 사람 낚는데 도가 텄군요.
본 작품은 재능이 없어 파티에서 쫓겨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비굴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애들 사회성을 길러주고 나보다 좋은 넘 들어오면 나한테 관심 끄겠지 싶어 파티를 결성했더니 리더를 맡으라 하고(5년 전), 파티로는 더 이상 사람 모집(6명이 1개 파티)이 힘들어 클랜(파티 연합)을 꾸렸더니 클랜의 정점 마스터를 맡으라네요(3년 전). 정신 차리고 보니 지금은 제도에서 내로라하는 굴지의 클랜이 되어 있었고, 사람들에게서는 선망의 대상, 헌터(모험가)들 사이에선 반드시 가입하고 싶은 클랜 1순위, 주인공에게는 정말로 유능한 사람에게 내려진다는 [천변만화]라 별명까지. 당연하겠지만 위에서 파티 모집하던 클랜은 주인공의 것. 이게 무슨 망겜 같은 소리인가 싶죠.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도망가고 싶은데 주변에서 놔주질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애가 상당히 깊다고 할 수 있죠. 쓸모없다고 내치기 보다 안고 끝까지 가려 하니까요.
어릴 적 약속했던 꿈을 위해, 모두가 있어야 성립된다는 일념 하에 주인공이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다는 듯이 친구들은 그야말로 날아다닙니다. 네, 날아다녀요. 주인공 친구들에게 있어서 재능은 99%에 노력은 1%만 있으면 돼요. 주인공으로서는 내가 있을 자리 따윈 어디에도 없어요. 잔챙이라도 거기에 맞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주인공은 쥐뿔도 없어요. 그런데 클랜 마스터로서의 책임은 있어서 소란이 일어나면 책임을 져야 하죠. 헌터 협회로부터 클레임이 들어오면 머리를 땅에 처박고 사죄하는 게 일이고, 벌침 게임 같은 페널티 의뢰가 내려지면 돈은 안 되고 목숨은 위험한, 그런 거 받아와서 파티원들에게 떠넘겨 버리는 쓰레기 짓도 하죠. 그런데 그런 거지 같은 의뢰를 떠넘겨 받은 쪽은 일종의 시험이 아닐까, 착각해서 뭔가 의미가 있으니까 오해해서 나에게 이 의뢰를 줬겠지? 하며 분골쇄신하는 장면들은 희극이 따로 없어요. 정작 주인공은 아무 의미도 없고, 귀찮아서 떠넘긴 것뿐인데.
이번 1권에서는 면접 소란 때문에 헌터 협회에서 페널티로 내린 벌칙게임을 수행하는 서브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주인공도 나오지만 주인공으로서의 활약보다 방관자 느낌이 강한데요. 주인공 클랜의 조그마한 소녀(얀데레) 1명 + 면접에서 소란을 피운 당사자들을 모아다 파티를 결성하게 만들어 벌칙게임을 떠넘기고 어떻게 하면 은퇴할 수 있을까 그것만 고민하고 있죠. 근데 알고 보니 의뢰가 잘못되었고 자기가 떠넘긴 파티원들을 구하러 가는데... 주인공은 진짜 무능력이 맞습니다. 보통 무능력이라도 그에 따른 능력을 보여주며 먼치킨으로 승화 시키곤 하는데 본 작품에서는 그딴 거 없고(적어도 1권에서는), 아이템 빨로 막 밀어붙이죠. 아이템전도 먼치킨의 일종? 근데 아이템 빨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잖아요. 주인공의 몸에 처바른 아이템을 가격으로 환산하면 대대손손 일 안 하고도 살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하니까, 돌려 말하면 클랜 전체가 주인공에게 갖다 바치는 재물이 장난 아니라는 의미이고, 그를 얼마나 맹목적으로 묶어 두고 있는지 같은 소름이 돋는 장면이기도 하죠.
맺으며: 추방물의 정도를 정면으로 비트는 작품입니다. 일단 1권 기준이긴 한데, 주변은 주인공을 쫓아내려는 게 아니라 묶어 두려고 혈안이 되어 있죠. 히로인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주인공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호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후반에 나오는 슈퍼 얀데레는 진짜 소름 그 자체. 무언갈 시키면 의미를 부여해서 그것이 아무리 불합리한 의뢰라고 해도 해내려 하죠. 정작 주인공은 귀찮아서 떠넘긴 것뿐인데, 그것이 와전되어 시험을 받는다는 오해를 하고, 그것을 클리어 함으로서 성장하는 통에 주인공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으로 연결되는 웃지 못할 일들의 연속입니다. 비슷한 작품을 꼽으라면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가 있군요. 주인공이 별다른 의미 없이 내던진 말이나 행동들이 의미를 가지고 되고 착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속은 마치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인공 의지와 상관없이 신뢰와 믿음이 쌓여 갈수록 주인공의 은퇴는 더욱 요원해지기만 하죠. 정작 주인공은 그 떠넘기기와 대충대충 때문에 자기 발목을 잡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상태고요. 모두가 착각하고, 그 착각으로 인해 참 바보 같다는 느낌이 장난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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