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사신에게서 가호는 받았지만, 여느 이세계 먼치킨처럼 단번에 무쌍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경우에 따라 마왕을 넘어서는 최강의 언데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길은 험난할 것이라고 사신은 예고하였었죠. 여주는 전투에 대한 경험 부족과 너무나 강한 상대, 그걸 뛰어넘기 위한 마력 부족으로 인해 복수는 고사하고 막 깨어난 새끼 새처럼 쫓기듯 또다시 왕도를 벗어나야 했습니다. 다시 왕도로 쳐들어가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하였으나, 불행히도 처음부터 언데드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여주는 인간일 때의 마음과 감정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것이 화근이 됩니다. 이 작품에는 복수에 필요 없는 요소가 세 개 들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인간일 때의 감정을 버리지 못한 것. 두 번째로는 지방 어느 백작가에서 그들을 호위하는 모험가들을 만나고 꼬맹이 여모험가에 빙의해버린 것. 세 번째가 백작가 영애 '캐서린'과 유대를 쌓아버린 것. 그래서 여주는 냉혹한 복수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세상엔 아직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 버렸거든요.

모험가들은 비록 빙의체라곤 해도 여주를 따뜻하게 대해준 것, '캐서린'과 밤마다 책을 읽으며 인간일 때의 기쁨을, 모험가들은 자신의 동료에게 여주가 빙의 되었다는 걸 알고 나서도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여주를 구원하려 했다는 것.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사신에게서 가호를 받았을 때부터. 구원의 손길을 잡았다면 분명 양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으나 여주는 어둠의 길을 선택했죠. 그래서 구원의 끝에 남은 건 허무한 감정, 하지만 이 한 달 남짓한 생활은 그녀에게서 인간이 가져야 할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든 현재의 왕(여주 삼촌)과 그 추종자들 포함, 단두대로 향하던 자신에게 매도의 말을 퍼부은 사람들 모두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어 마땅하기에 지방 소도시를 궤멸 시키고 시민들을 언데드로 만들어 왕도로 진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언데드가 된 후에도 따뜻하게 대해준 '캐서린'과 재회하면서 여주는 사람을 죽이는 데 브레이크가 걸리고 맙니다.

복수물에서 필요 없는 감정을 가지게 되면서 신중해지고, 그로 인해 이야기가 길어지고 매끄럽지 못하게 됩니다. 왕도에 단숨에 쳐들어가 모든 걸 불태워버리는 것보다 어떻게 쳐들어 갈지에 대한 전략을 짜고 꾀를 내어 적들끼리 이간질 시켜 싸움 붙이게 하는 등 복수물이라기보단 전략 공성전 같은 느낌이 되어 버리죠. 왕도에 도착해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복수보다는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게 되었고, 아이를 죽이는데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용할 때는 아이고 어른이고 가차 없이 이용하긴 하는데, 약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여주는 마음이 견디지 못할 정도 되어 버리죠. 모험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희생 시키면서 여주로 하여금 마음에 브레이크가 걸리게 해버렸습니다. 사신이 보면 기가 찰 노릇. 그리고 이왕 악당은 인간들이라는 설정을 넣었으면 끝까지 악한 모습을 보여 주어 여주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제공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게 거의 없다 보니 아쉬움이 굉장히 크게 다가옵니다.

맺으며: 1부 끝입니다. 작가의 말로는 1~2권이 잘 팔리면 2부(3권) 집필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그에 따른 복선도 많이 넣어놓긴 했습니다. 가령 여주의 부하가 되는 마족이라든지, 여주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인간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어느 수인 여자애라든지. 왕도 함락과 복수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듯 주변국 정세라든지. 이 정도 복선을 가졌으면 2부 집필해도 될만한데, 일단 팔려야겠죠. 하지만 라노벨계에서 복수물이라는 희귀할 정도로 소수파 진영에서 상냥한 복수귀가 얼마만큼 먹힐지는 솔직히 회의적이군요. 이번 2권만 봐도 캐서린과 접점을 만들고 여주로 하여금 고뇌하게 하고 망설이게 하면서 이야기가 좀 지리멸렬해집니다. 그로 인해 이야기가 길어지고 진짜 중요한 현재의 왕과 그 추종자들에 대한 복수는 420여 페이지 중에서 불과 몇 페이지밖에 없을 정도로 복수라는 아이덴티티는 희석되고 말죠. 물론 작가 딴에는 아마도 복수보다는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여주의 구원이라는 궁극의 스토리를 그리려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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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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