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초난관 던전에서 10만 년 수행한 결과, 세계 최강 3권 리뷰
중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본격적인 왕위 쟁탈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자인지 내놓은 자식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밖으로만 떠돌던 제1왕녀(3권이나 되었는데도 메인 히로인지는 애매함)도 왕의 부름을 받고 왕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인공도요. 왕녀가 억지로 그를 로열 가드로 삼아 버렸거든요. 그녀에게 있어서 10만 년이나 던전에서 홀로 지내며 인간의 궤를 벗어나버린 주인공을 붙잡은 건 행운 그 자체였지만, 주인공은 심드렁. 10만 살하고 15살이나 먹었더니 주인공은 애늙은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당장 할 일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으면 유쾌한 동료들(던전에서 주인공 부하가 된 악신들)이 무료한 주인공(위대한 분)을 달래준답시고 뭔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세계 멸망급을 불러내기도 함) 열심히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는 오리처럼 무슨 일이든 하긴 해야만 했죠. 그래서 유쾌한 동료들에게 적절한 일거리를 제공할 겸 왕녀의 왕위 계승권에 걸린 시련을 도와주려 하는데, 역시나 이런류의 이야기에서 페널티를 빼놓으면 섭섭하지라는 클리셰가 발동되어 실현 불가능한 밋션이 왕녀에게 내려집니다.
그렇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왕도에 도착해 보니 왕녀의 오빠(남동생인가), 여동생은 적대적이고, 가신들은 주인공의 무능 기프트에 꽂혀 비아냥대고, 왕위를 이어 받으려면 영민 하나 없는 시골 깡촌을 키우라는데 제정신인지 묻고 싶을 정도인 상황. 사실 유쾌한 동료들을 이용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나라를 세울 정도로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긴 한데, 주인공은 밥을 떠먹여줄 생각이 애초에 없다는 것이고, 흥미로운 점으로 작가는 왕녀가 어떤 의욕을 가졌는지 언급을 안 한다는 것. 왕도로 향하다 길 중앙에 기억을 잃고 엎어져 자고 있던 마왕녀(魔王女, 표지)를 주워 메인으로 내세워 뭔가 하려나 했는데 그냥 가사도우미로 써먹네요. 아무튼 주인공 입장에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입니다. 물론 귀족들은 왕녀를 뭣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적대 중이니 도와줄리 없고, 그런 상황에서 결국 주인공이 나서서 사전 정지 작업(거슬리는 놈들 쓱싹)을 할 수밖에 없게 되죠. 마침 귀족들은 하나같이 인간 우월주의를 내세워 악당 짓을 해대는 중이라 주인공에겐 명분이 생겼고요. 길에서 주운 마왕녀와 일전에 노예로 팔려가던 수인 소녀를 이용해 뭔가를 하려 합니다.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해봐야, 그냥 마음에 안 드는 귀족들이나 인간들은 다 없애버리면 됩니다. 주인공을 깔보고 덤볐던 양아치들은 썰려 나가고, 왕녀를 적대했던 귀족들은 주제도 모르고 설쳤다가 비명횡사하는 건 약속된 길이죠. 다만 주인공이 나서면 재미가 없으니 그림자 무사를 내세워 대타를 뛰게 하는데 이거 뭔 의미가 있나 싶네요. 어차피 마무리는 주인공이 다 하는데. 그래서 작가는 단순히 권선징악적인 재미보다 여러 세력들을 투입해 설정의 질을 높이려 합니다. 신(神)의 세력인 악(惡)군과 천(天)군이 대립하고, 그 하부 조직들은 인간계에 영향을 끼치고 인간들을 조종하면서 분쟁을 가속화하죠. 신계에 속한 자들은 인간계에 현현하기 위해 인간과 마족들을 아무렇지 않게 제물로 삼고, 인간들은 수인족들을 탄압하여 멸종의 기로에 서게 합니다. 갈 곳을 잃어 여러 종족이 한데 모여 사는 도시를 위협하는 왕국과 제국의 귀족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게도 악한 무리들을 까부셔야 될 용사 일행이 그 악의 편이라는 것. 선이어야될 인간이 악이 되고, 악이어야 할 악이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약자에겐 지옥 같은 세계에서 작가는 어느새 주인공을 나서게 하는 것보다 약자들로 하여금 최대한 발버둥 치게 해서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게 하는 모습들을 그립니다. 처음엔 왕녀가 받은 시련을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 시작된 사전 정지 작업은 주인공에게 유도된 귀족들과 신계의 무언가들이 서로 맞붙어서 지옥도를 펼쳐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주인공이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게 하려 했던 약자들은 유쾌한 동료들에 의해 정신과 시간의 방에 끌려가 마치 흔직세의 최약 토끼족들처럼 그들도 주인공 광신도가 되어 가는 과정은 한마디로 소름 돋게 만듭니다. 그 결과 약자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게 되었죠. 덩달아 결과만 좋으면 OK라고 약자들이 주인공 광신도가 되면서 왕녀가 받은 시련도 덩달아 해결되는, 원래 이러려고 처음부터 주인공이 낚시질을 해왔긴 한데 과정이 좋은 의미로 너무 터무니가 없죠. 악군중 고위층 하나가 지상으로 현현해서 인간들을 몰살하려 했는데 하필 현현한 동네가 주인공이 있는 곳이었고(그렇게 유도되었지만), 세계가 멸망하는 악신도 주인공 앞에서는 그저 갓난애나 다름없게 되는 장면들이 재미있습니다.
사실 어느 세상이고 간에 약한 자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힘의 논리에 따라 쓸려 나갈 뿐이라는 걸 역설합니다. 아무리 세력을 키우고 세계에 존재를 인정을 받아도, 악한 자들은 늘 괴롭히는 상대를 찾는 것처럼 약한 자들을 괴롭힐 구실을 찾아냅니다. 왕녀는 이런 약자들을 보호하려 왕이 되고자 하지만 작가가 별로 신경을 안 써주네요. 주인공은 약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스스로 무언갈하려는 자에게만 거들어줄 뿐이죠. 처음엔 왕녀가 받은 시련을 어떻게 해결할까에서 시작된 약자 구하기는 그들 스스로 쟁취하게 하는 흐름이 됩니다. 그런 약자들을 이용해 왕녀의 앞을 가로막거나 부조리한 것들을 쓸어 버리죠. 요컨대 손 안 대고 코 풀기를 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유쾌한 동료들이 기합을 너무 들이는 바람에 약자들이 광신도로 변신한다는 것이고, 그럴수록 주인공의 가치는 알게 모르게 더욱 올라가서 무능이라고 깔봤던 귀족들이 자신들 스스로 주인공 역린을 건드린 것도 모른 채 스카우트하려 눈독을 들이는 모습들에서는 한편의 개그 같은 장면을 보는 듯했습니다. 비슷한 내용을 한 줄 더 쓴 이유는 그만큼 임팩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맺으며: 인간들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나를 참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린 소녀들을 마물의 먹이로 던진다거나, 노예로 삼는다거나, 인간과 신(神) 우월주의 등. 물론 이런 장면들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선의의 법 집행에 대한 명분에 지나지 않지만, 이번 3권에서 흥미로운 건 주인공이 직접 처단하는 것보다 제3자를 이용해 그들 스스로 강해지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영웅을 탄생 시키려 하고, 정작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야 할 용사 일행은 악의 편에 서서 인간들을 탄압하는 설정들은 꽤나 신선하게 다가오죠. 다만 신계까지 거론하며 악군과 천군과 그 산하 조직 등 등장인물들을 많아지다 보니 설정이 난잡해지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번 3권 기준으로 설정은 좋으나 그걸 다 소화 시킬 만큼 작가의 필력은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었군요. 세세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뒤로 밀리거나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가령 주인공이 왕도로 가다가 길에서 주운 마왕녀는 끝에 가서야 겨우 활약할 뿐이고, 왕녀의 시련 해결에 초석이 된 수인 소녀는 어느새 잊혀져버립니다. 왕녀의 시련이 중심이 되어야 할 내용이 초반에만 잠깐 나오고 이것도 어느새 잊히고 말죠. 아무튼 오타가 너무 심합니다. 번역 문제인지 문장 표현력이 두루뭉술해서 왕창 편집된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가령 마왕녀가 납치되었을 때 범인들에 의해 뭔가 당한 거 같은데 그 부분이 싹둑 잘린 느낌이 들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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