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포션빨로 연명합니다! 8권 리뷰 -나이를 먹어도 여전한 악마 기질-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팔려 갔던 고아들을 탈환 해오고, 범죄자들을 잡아다 넘기고, 영주와 안면을 트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70여 년 전, 자신의 약점을 파고들어온 자객(누군지 까먹음)에 의해 죽을 위기에 빠졌던 여주는 아이템 박스로 피신해 간신히 살아남았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니 지인들은 수명이 다해 사망했거나 인생 막바지를 살아가는 자들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인생 참 덧없다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일까요. 다시 길을 떠나 당도한 어느 해변 마을에서 집을 구해 살려고 했더니, 느닷없이 고아 두 명이 찾아오고 그들과 부대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죠. 픽션의 이야기지만, 가끔은 생각해 봅니다. 지구에 알던 사람들을 놔두고 왔고, 이세계에서 알던 사람들은 이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저 앞으로 나아가버린 상황에서 나라면, 외로움에 과연 미치지 않고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지만 본 작품은 어디까지나 개그물이니까요. 낙엽만 떨어져도 눈물짓게 만드는 감성이 충만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하물며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눈곱만큼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인생 시즌 2로 접어들었습니다. 지구에서 단짝이었던 레이코, 쿄코와 무사히 합류했습니다. 이들도 여신으로부터 치트를 받았습니다. 받았지만 아직은 치트를 행사할 만큼 이렇다 할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여주가 구입한 집에서 머물며 장기적인 계획을 잡아가죠.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많이 벌어서 노후를 편하게 보내자는 것. 치트를 이용하면 금방 해결되지만,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여주 인생 시즌 1에서 배웠습니다. 좀 각색해서 언급해 보자면, 맹목적으로 여주를 모시는 사이비 종교가 탄생해서 대륙이 요동쳤었죠. 아무튼 여주가 구입한 집이 옛 고아원이었는데, 마침 고아원이 망하며 팔려 갔다가 되돌아온 고아 둘을 고용하고, 다른 곳에서 여주가 직접(아마도? 기억이 가물가물) 구출해온 3명을 더 고용해서 건어물과 기타 잡화를 만들어 영주라든지 상회에 납품하면서 돈과 명성을 쌓아 갑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생활과 애들을 돌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여주 3인방은 애들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법을 알려주며 장래 독립 해서도 살아갈 수 있게끔 철저하게 주입식 교육을 해대죠.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개그물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의 심리 묘사를 진지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악의적으로 팔려가 착취 당하고, 그중 둘은 탈출해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들이 자란 집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다시 버림받지 않으려 애쓸 수밖에 없고, 그런 장면은 여주 인생 시즌 1에서는 못 보던 애잔함이 묻어나죠. 물론 작가는 이것도 개그로 승화 시켜놓긴 했습니다만. 인생은 실전이고 한 번밖에 없습니다. 비록 피붙이는 아니지만, 자신이 거뒀고 책임을 지고 있으니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해야 되는 건 어른(전생하며 15세 외모가 되었지만 3인방 평균 나이 90대)으로서 의무죠. 그리고 영세 업체로 위장하고 있으니 귀족이나 기득권들이 쳐들어와 M&A를 시도(이미 전례가 있음) 하면 속절없이 흡수될 수밖에 없는 이세계 위계질서 관계상 그걸 두고 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대륙 자체를 지워 버릴 수 있는 쿄코의 전함(지금은 정지 위성 궤도 올려둠) 치트도 있고, 여주의 여신이 내리는 신벌도 있지만 그랬다간 여주 인생 시즌 1 반복인지라 이번엔 순한 맛으로 아이들의 뒷배를 만들기로 합니다.
여주 인생 시즌 1을 겪으면서 치트를 최대한 자중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용서 못 하는 게 있죠. 애들을 괴롭히는 자, 적대하는 자, 이익을 침해하는 자. 고아원 애들을 악의적으로 팔아넘긴 자와 구입해 착취한 자들은 물리적으로 소멸했습니다(약간 각색). 여주와 아이들만 있다며 얕보고 삥 뜯으러 온 자들은 여주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그런 그녀의 별명은 '악마'. 속옷 한 장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버리고, 사회적으로 매장 시켜 버리죠. 그 과정이 멘탈붕괴급이라 여주에게 당한 사람들은 재가동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술도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니 애들처럼 감정적으로 대갚음해 주는 건 그렇고 해서, 사회 인지도를 올려 스스로 뒷배가 되겠다며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는 등 나이 90대 되어서 그녀들은 드디어 어른이 되었죠. 하지만 작가는 이 과정도 역시나 개그로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이 만든 제품을 제값에 사주고 유통해 주던 상회에서 주인이 바뀌어 이쪽을 무시하고 자기들 이익대로 움직이려 하려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이에 여주의 한마디: '뭉개 버릴 거야'. 여주의 심기를 건드린 자는 물리적으로 소멸합니다.
맺으며: 판타지의 어두운 면, 가령 고아들의 비참한 삶을 보여 주면서도 불쌍한 삶은 살아가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을 개그로 절묘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재주가 좋습니다. 그리고 불쌍하다고 동정하지 말고, 그들에게 동정이라는 슬픔을 느끼게 하지 말라는 듯이. 그래서 작중 여주 3인방은 자신들이 맡은 고아 5명 말고도 여러 일을 하며 다른 고아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밥을 무상으로 제공하기 보다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어 스스로 일어서게끔 보살피는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죠. 그러기 위해 권력자들을 포섭하고, 판로를 개척하고, 상회들과 유대를 쌓고, 그들에게 이익을 주어 뒷배로 삼아 가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눈뜨고 코 베인다는 현실 속담(?)을 현실미 있게 표현하려는지 이세계에는 애들을 속여먹는 사기꾼 천지고 그런 사기꾼에 속지 말자는 공익 캠페인 같은 것도 섞여 있는데, 이번 8권에서는 여주(레이코)가 말빨로 해결해버리는 게 재미있습니다. 아무튼 라이트 노벨이라는 특유의 개그와 나쁜 놈들은 혼내준다는 클리셰 범벅으로 되어 있지만, 그걸 작가 특유의 개그로 승화 시켜놓고 있어서 그리 지루하거나 저렴하다는 느낌을 들지 않게 하는 게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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