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원옥의 장미 공주 1권 리뷰 -삼천포로 향하는 복수극-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40대 아저씨, 블랙 기업에 취직했다가 과로사 했습니다. 신(神)이 나타나 이세계에 어떤 왕비가 임신 중인데 뱃속에 있는 아이가 곧 죽을지도 모르니 그 아이로 환생하겠냐고 헙니다. 마법 재능을 부여하고, 후에 "필요에 따라" 가호도 주겠다고 합니다. 신(神)은 이세게에서 사신과 대적 중인데, 같이 싸울 용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생각합니다. 왕비의 아이라면 속된 말로 금수저는 확정이고, 사신과 싸우면 명예를 얻을 것이고, 왕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을 것이니, 이세계에서 눈부신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흙수저 40대 아저씨는 생각했습니다. 에어리어 88의 주인공 '카자마 신'이 이렇게 계약서 사인했다가 용병으로 끌려갔었죠. 주인공은 주변에 큰 나라들의 틈바구니에 끼인 작은 나라의 "왕녀"로 환생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바랐던 금수저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죠. 불길함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는 은발 은안으로 태어난 주인공은 엄마와 왕궁에서 쫓겨나 변방에서 숨어지내고 있었습니다.
본 작품은 복수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쫓겨나고, 엄마와 단둘이 어렵게 살아가던 주인공이 마침 10살이 되던 해, 쿠데타로 집권한 왕제(왕의 동생, 주인공에겐 숙부)에 의해 본보기로 처형 당합니다. 뭐 여기까지 보면 으레 있는 정치적 희생양에 지나지 않지만 주인공에게 있어서 문제는 처형 당하기까지의 과정이죠.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피를 이었다는 이유로 싸잡혀 죽는 것도 억울한데, 그저 고문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한 달가량 모진 고문을 당했고, 고문을 이기지 못한 엄마는 망가졌죠. 사형에 처해지는 날, 단두대로 향하는 길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돌을 던집니다. 매도를 퍼부어 댑니다. 쿠데타에 성공한 왕제가 정치적 상황과 입지를 다지려면 그저 본보기가 필요했고, 한마디로 주인공과 엄마는 구실 좋은 희생양이었죠.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지던 그때 주인공은 그제야 자신이 전생했다는 걸 기억해 냅니다. 그런 그의 눈앞에 사신이 나타나죠.
그리고 사신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가 되면 가호를 내려준다는 신(神)은 가호는커녕 주인공의 마법 재능을 회수하고 그를 외면해버렸다는 것을요. 이세계는 신(神)과 사신이 대립하고, 인간과 마족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신(神)은 마족과 싸울 사람이 필요했지만, 이미 그 마족은 이미 인간들에게 밀려 쭈구리가된지 오래고, 여차할 때 용사로 쓸 스페어로 준비된 주인공은 쓸모 없어졌습니다. 신(神)에게 버림받고, 숙부(왕제)에게 죽임을 당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고, 그런 자신을 역겹다고 한 사람들이 미워지는 건 당연한 것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사신의 달콤한 말에 기댑니다. 주인공은 최강의 언데드로 태어나죠. 여기까지 읽고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았군요. 근래에 복수물 다운 복수물이 없었던 상황에서 마치 가뭄에 단비 내리듯 이렇게 개연성이 풍부한 복수물의 등장은 흥분을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듯, 주인공은 자신을 비웃었던 사람들을 몰살하기 시작하죠.
근데 작가님, 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건가요? 아니 멋대로 기대한 필자도 잘못이긴 한데, 날뛰다가 왕국 소속 최강 기사 '로렌스'를 뛰어넘지 못해 힘을 키우려 후퇴한 것은 파워 인플레를 지양하려는 의도가 보였긴 한데 말입니다. 근데 80년대 감성의 거대 범죄 조직을 넣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 범죄 조직으로부터 귀족 영애를 호위하는 것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범죄 조직이 왕제와 연루되어 있고, 그 수장을 없애 영혼을 획득하려는 건 좋다 이겁니다. 근데 영애와 소꿉놀이 같은 장면은 복수와 뭔 상관이 있나요. 그리고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 같은 고리타분한 전개는 또 뭔가요. 복수자(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기 보다 원론적으로 그렇게 살면 후회한다느니 행복햐져야지 같은 발암 전개는 뭔가요. 아,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나쁜 사람만 있지 않다는 그런 의미인가요? 주인공은 복수귀지만 아직 인간일 때의 온전한 마음이 남아 있어서 갈등하고, 언젠가 행복을 찾는다 그런 이야기?
맺으며: 무려 450페이지입니다. 그중에 복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대략 300페이지는 되어 보입니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하나의 단어를 놓고 해설을 하는 것인데, 무슨 주석을 다는 것처럼 단어/상황에 대한 설명을 심하게는 몇 페이지식 해대서 질려벼렸습니다(중후반부터는 좀 나아짐). 주인공의 복수심은 초반에만 집중되고 뒤로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구색 맞추기로 들어가 있고, 범죄 조직이 무슨 특수부대 뺨치듯 활약합니다. 일본 작가들 신(神)과 관련된 이야기와 범죄조직 빼면 이야기가 성립 안 되나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복수는 아무것도 낳지 않는다식 신파극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귀족 영애 호위하며 범죄 조직 수장 찾을 때는 그 수장 찾을 의지도 없어 보였군요. 강해져서 왕궁 기사 '로렌스(쓸데없이 일러스트는 고퀄)'를 뛰어넘어야죠? 그거에 대한 방책이나 힘을 키우는 장면은 아예 없는데요? 복수할 마음은 있나? 그냥 범죄 조직 조무래기만 잡아대는데 시간 다 잡아먹고,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수장 찾아가는 장면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체 장르가 뭔가요? 주인공이 왕녀로 환생한 이유는 그저 어른으로서의 경험과 침착함을 주기 위함만이었나요? 외에 환생한 이유는? 정말 이렇게 질문만 해대게 하는 작품은 필자 인생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에 질문, 맞춤법 잡는 건 프로그램 자동으로 하셨나요. 뜻이 바뀌는 단어가 몇 개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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