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현자에 의해 이세계로 소환된 애들은 거의 다 죽어 버렸고, 나름대로 쓸만한 능력을 받은 애들만 몇 남았지만 이것도 조금씩 갈려 나가는 중입니다. 애들을 소환한 현자, 현자라고 해서 판타지의 인자하고 박식한 마법사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본 작품에서는 그저 돌+아이일 뿐이죠. 외부에서 침략해오는 미지의 존재로부터 이세계인들을 지켜주는 거 같긴 한데, 이건 정의감으로 행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 장난감이 없어지고 다른 놈들에게 내 장난감을 빼앗기는 게 싫은 어린애 같은 감정이 더 앞서는 그런 종족들입니다. 주인공 반 애들을 소환한 것도 뭐 그런 맥락인데, 살아남으면 현자 자리 준다고는 하지만 살아남는 놈이 있어야죠. 애들도 협동심이나 눈물겨운 우정? 같은 건 이세계에 도착하자마자 개(dog)한테 줘버렸습니다. 능력을 못 받은 주인공과 히로인을 본 공룡이 입맛 다시는데도 구해주기는커녕 놔두고, 오히려 주인공 일행이 먹힐 동안 우린 도망가자 하며 내뺀지 오래였죠.

그 결과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 속에서 신에 필적하는 능력을 얻은 녀석과 현자의 반열에 오른 몇 놈만 빼고 다 죽어버렸습니다. 이것들도 주인공과 적대했다가 거의 다 요단강 건너 친구 만나러 가버렸죠. 반 친구들이 거의 다 죽은 후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이제 몇 안 남은 현자들을 찾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현자의 돌을 이용해 원래의 지구로 돌아가는 여정에 들어섭니다. 오만방자한 현자들이 곱게 현자의 돌을 내줄 리도 없고, 게다가 현자의 몸속에 돌이 들어 있다 보니 꺼내면 현자도 죽어 버리는 사실상 그로테스크한 일들이 일어나죠. 그러고 보면 주인공의 성격이 참 흥미로운데요. 어느 섬에서 반 친구이자 현자 한 명을 요단강 건너로 이송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려고 보니 제도(수도)가 무언가의 공격을 받는데 주인공은 사람들 구해줄 마음은 없어 보인다는 것, 그에게 있어서 누가 죽던 그런 일 따위 알 바 아닌 시크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죠. 남들에게 다 무시당하는 돼지 오타쿠 힐러에게조차 '재수 없는 즉사 치트맨'이라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본 작품은 현실성을 논하면서 읽으면 안 됩니다. 한때 나무야 미안해라는 소리까지 듣긴 했지만, 여느 이세계물과는 궤를 달리하는 게 굉장히 흥미롭죠. 별별 외계인이 다 나오고(현자들은 이들과 싸워댐), 신(神)들은 너무 자주 출몰하여 시장의 흔한 콩나물 같은 존재로 전락한지 오래고, 꼴에 신이라고 힘은 강대해서 이세계를 파괴하고 다니지만 언제나 주인공에 의해 골로 가는 패턴이죠. 반 애들도 힘을 얻은 전능감에 설치다 다 죽어버리고, 주인공을 깔본 이세계인들도 다 골로 가버립니다. 그리고 개그물의 한 장면같이 어찌어찌 현자 돌을 모아서 한데 뭉쳤더니 어린애의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향해 아빠!! 보통 이세계물에서 어린 여자애가 아빠 아빠그러면 주인공은 입이 풀어져서 헤벌쭉 해지기 마련이나 본 작품의 주인공은 시큰둥하게 여자애라고 이름을 걸(girl)로 지어버리죠. 여자애가 싫다니까 그럼 스톤? 현자의 돌이니까 스톤. 결국 돼지 오타쿠에게조차 비아냥을 듣게 되는 장면은 여간 웃긴 게 아닙니다.

주인공의 즉사 능력은 이세계에서 받은 게 아닌 지구에 있을 때부터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입니다. 본 작품은 정상적인 지구에서 애들이 이세계로 넘어가는 이세계 먼치킨 계열이지만, 근본적으로 지구도 이세계와 마찬가지로 능력자들이 살고 암약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죠. 이 부분이 여느 이세계물과 다른 점입니다. 주인공은 그 능력자들 중에서 으뜸이자 유일무이한 존재고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지하 깊숙한 연구소 같은데 갇혀 지냈죠.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이세계는 주인공을 가둬두기 위한 가상의 공간이 아닐까 하는 것이고, 히로인은 그를 붙잡아둘 인질 혹은 트리커(주인공이 유일하게 지키려는 단 한 사람) 역할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번외 편에서 새로 언급되기를, 연구소는 주인공을 봉인 시킬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 걸 보면 연구소에 의해 이미 봉인은 끝났고, 지금의 이세계는 꿈이거나 가상 세계가 아닐까 하는, 그만큼 주인공의 능력은 범 우주적이죠. 이번에도 주인공과 유사한 즉사 능력을 가진 반 친구가 등장해서 주인공과 대적하는 관계일까 했는데 쪽도 못 썼거든요.

맺으며: 현자의 돌도 많이 모았고,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도 알아내는 등 이야기가 속도를 붙입니다. 사실 이런 얘기보다 본 작품은 인간은 힘을 얻으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다들 노 브레이크로 달려가죠. 그러다 종착점은 언제나 주인공 앞이고, 주인공을 얕봤다가 다 골로 갑니다. 사실 원패턴이어서 지루할 수 있으나 그걸 중화하듯 가령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도게자 하나만으로 끝까지 살아남은 돼지 오타쿠의 개그 같은 장면들이 소소한 재미로 다가옵니다. 주인공이 자신과 히로인에게 살의만 가지지 않으면 죽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는 스스럼없이 나대는 것들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죠. 이번에는 현자의 돌을 모았더니 아이가 만들어지고, 그 아이가 이름 좀 제대로 지어 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나, 걷기 힘들어 안아 달라 했더니 주인공이 거부하자 불만을 내비치는 등의 모습들이 앙증맞습니다. 현자의 돌을 줬더니 점점 커지는 등 무슨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흘러가는 것도 흥미롭죠. 하루빨리 지구로 돌아가자고 해놓고, 귀찮은 일은 서로 떠넘겨야 제맛인 장면들도 소소하게 웃음 짓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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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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