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거미입니다만, 문제라도? 3권 리뷰 -세상 밖으로의 한 걸음-
특대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엄마를 만났어!! 거대한 빔 포를 쏘더란 말이지? 엘로 대미궁은 괴수 대혈전을 찍는 영화 세트장이었나 싶을 정도로 몬스터 하나하나 우주급 재앙 덩어리입니다. 하층으로 떨어져 다시 상층으로의 여정을 떠난 여주는 중층 마그마 지대에서 돌판에 올려진 주꾸미처럼 구워져가며 어찌어찌 돌파를 목전에 두었는데, 그리운(?) 엄마를 다시 만났습니다. 알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모성애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자기 새끼들을 주워 먹고 있었던 엄마. 머리에 피가 마를 새도 없이 도망가야 했던 여주. 엄마가 자신을 쫓아온 화룡(龍)을 메가 입자포로 일격에 반파 시키는 장면에서 여주가 마음에 품은 감정은 내 엄마가 강하다는 들뜸일까, 공포일까. 그런 엄마의 일격을 맞고도 다시 일어서는 화룡(龍)은 대체 얼마나 강한 것일까. 용(龍)은 이세계 재앙이라고 부를 정도, 천재지변을 일컫는 대명사의 존재. 그런 용을 일격에 반파 시킨 엄마의 능력은? 미래, 엄마와 일전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복선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여주는 무럭무럭 자라서 몇 번의 진화를 거쳤고, 능력을 얻어서 이제 엄마 같은 우주 괴수급을 제외하면 적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접근하면 몹들이 다 도망가 버리는 처지가 되었죠. 그렇게 생각했고, 우쭐(하진 않았지만) 했던 시기가 그녀에게 있었습니다. 여주는 욕구 불만이 쌓여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하층에 다시 갔죠. 그리고 후회만 가득 안게 됩니다. 거기엔 숙적 지룡(龍) 아라바급 지룡들이 진을 치고 어! 왔어? 하며 반겨주고 있었거든요. 이것들 엄마와 동급, 어딜 어떻게 봐도 비벼볼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몇 번의 진화를 거치며 여주도 우주 괴수급으로 성장했으니까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은 있습니다. 사실 이 과정이 참 재미있죠. 여느 이세계 치트물처럼 스킬을 망라하고 고찰해가는 통에 지리멸렬해질 만도 한데 여주 특유의 개그와 긍정적인 성격으로 힘내자 같은 장면들은 마치 어린애가 반찬 투정 안 하고 골고루 주섬주섬 주워 먹는 장면 같아 귀엽게 다가오거든요(물론 필자 주관적인 느낌).
남주 쪽은 아주 난리가 났군요. 당대 용사가 마족의 침공에 대항하다 산화하고, 남주가 차세대 용사로 선정되면서 어깨가 무거워지게 되었습니다. 근데 활약할 시간도 없이 시대의 격랑에 떠밀리는... 그 왜 판타지 드라마에서 자주 써먹는 설정으로 '나라를 빼앗긴'이 있잖아요. 그 일이 남주에게도 일어납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식상한 설정이긴 한데, 이 작품이 집필될 시기엔 아직 신선한 설정이었겠죠. 2권에서 음침한 싹수를 보였던 야망의 반 친구에 의해 남주는 나라를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힘들고 무섭다고 주저앉아 있기 보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길을 찾아가려는 남주가 꽤 흥미롭죠. 근데 왜 내 편만 되면 다들 약해지는가 하는 의문점이 남습니다. 신(神)에 필적하며 세상의 이치와 근간을 알고 있으며 그에 따른 힘을 보유하고 있을 거 같았던 선생님은 왜 쪽도 못 쓰는 걸까. 그리고 적은 왜 이리 강한 걸까. 이런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주변 사람들, 누명 쓰고 도망치는 남주라는 클리셰는 좀 마이너스군요.
그리고 밝혀지는 이세계 시스템. 교회에서 '금기'라는 스킬을 매우 싫어하고 가지고 있는 사람을 즉결 처분하는 이유가 그저 악(惡)하기 때문에 그런 건가 했습니다만. 생각해 보면 애초에 이런 설정이었다면 이 작품은 3류였겠죠. 금기의 스킬을 만렙 찍었던 여주 앞에 어느 꺼먼 남자와 D라는 이세계 관리자가 접촉해옵니다. 여주가 상식 밖으로 성장하다 보니 제거하거나 좀 자중하라고 찾아온 듯한데, 자세한 건 스포일러니까 넘어가고요. 언급할 수 있는 건, 금기를 찍으면 이세계라는 존재와 근간을 알아버리게 되고, 그건 곧 신(神)의 뜻에 반하니까 교회에선 없애려 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됩니다. 교회는 신(神)을 받들고 있으니까요. 결국 이세계는 상자 정원이고, 상자 정원을 가꾸는 건 신(神)이고, 신의 유희에 따라 이세계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뭐 그런 뭐 같은 세상이라는 게 밝혀지죠. 그러니까 여주의 성장도 남주가 누명을 쓰고 도망 다니게 된 것도 다 신에 의해 의도된? 그동안 흥미로웠던 주제들이 김이 팍 빠지는 순간이었군요. 그러니까 등장인물 모두가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니까 흥미로울리 없죠. 요컨대 남주 인생을 곱창 낸 야망의 반 친구를 없앤들 카타르시스가 생길까 하는 문제점이 있으니까요.
맺으며: 작가가 용(龍)으로 마치 SF를 보는 듯한 현란한 장면들을 연출하는 능력은 좋았습니다. 반어법은 아니고요. 아니 반은 반어법이려나. 아무튼 여주와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들은 제법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요. 그동안 여주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했던 지룡(龍) 아라바와의 인연도 결판낼 때가 왔죠. 남주 쪽은 갑자기 차기 용사로 선택되면서 겪는 감정 변화도 볼만했습니다. 전장에 서야 한다는 것, 고등 생명(예로 인간)을 해쳐야 된다는 불안과 거부감, 공포심을 잘 표현하고 있군요. 그리고 그런 남주를 바라보며 지구에 있을 때 남자였고 이세계로 오면서 여자가 된 반 친구(히로인)가 남주에게 이성으로 호감을 느껴 가는 장면은 희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서술 트릭으로 긴가민가 했던 현재의 마왕은 혹시 여주가 아닐까 했던 궁금증은 싱겁게 풀려버렸습니다. 사실 좀만 생각해 보면 여주는 인간화를 바라고 있고, 인간과 교류를 원하고 있으니 굳이 인간과 적대 관계가 될 필요는 없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이번 3권에서 모험가들을 도와주고 그들이 떨어트린 말린 과일에 환장하는 장면도 꽤나 희극적으로 다가오죠. 하지만 적대한다면 가차없다는 메시지도 던지기도 합니다. 이번 3권에서 여주만 특정해서 평가하자면, 사람들에게 공포로 각인되어 가고, 인간의 틀을 벗어난 미궁의 악몽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인간들끼리, 인간과 마족들로 인해 어지러운 세상에서 그녀의 등장은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칠까 같은 흥분을 불러왔군요. 마지막 페이지 여주가 처음으로 지상 햇빛을 받는 일러스트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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