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이번 6권은 5권하고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학원 지하에 봉인되어 있는 디아블로스 오른팔을 훔치기 위해 디아블로스 교단은 학원을 점거하고 학생들에게 폭탄 목걸이를 걸어 인질로 삼았었죠. 이 과정에서 가해자들은 물론이고 피해자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간의 추악한 이면(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희생 시키는 짓)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이것만큼은 참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하였었습니다. 그 왜, 위기 상황에서 사람 본연의 성격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물론 자기희생적인 학생들도 있었긴 합니다만. 아무튼 사건이 마무리되고 이제 자기가 살기 위해 다른 학생들을 희생 시킨 학생(이하 가해 학생)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하여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문득 작중에서는 언급이 없지만 필자는 '카르네아데스의 판자(이하 판자)'가 생각났습니다. 두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판자가 하나 있고, 한 사람 분량만큼의 부력밖에 없어 다른 한 사람을 희생 시켜야 하는. 이번 6권에서는 '판자'라는 단어는 안 나오지만 죗값을 치러야 할, 즉 자기가 살기 위해 다른 학생을 희생 시킨 가해 학생 측에서 이와 유사한 논리를 펼친다는 것인데요. 문제는 그 희생 시킨 정도가 너무 심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니까 권력으로 찍어 누르며 암살도 마다하지 않으려 하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5권에서 신규로 등장한 '크리스티나(히로인)'는 그런 악행을 저지른 학생을 규탄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려고 하지만,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현실에서도 돈과 빽이 있으면 고개가 빳빳해지는 일부 부류가 있잖아요. 가해 학생이 딱 그런 부류죠. 그 가해 학생의 뒤에 있는 건 나라를 주무르는, 왕(王)도 어쩌지 못하는 중2병이 충만한 '13의 야검'이라는 이름의 어둠의 범죄 조직이 있었거든요. 그래 놓으니 후작 딸내미(가해 학생) 주제에 공작가(엄밀히 따지면 왕족) 딸내미(크리스티나)를 후두려 패도 문제시되지 않는 말세가 되어 있었죠. 근데 여기서 엉뚱하게도 주인공이 이 '어둠의 조직'에 필이 꼽힌다는 것인데요.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는 6권 핵심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은 힘듭니다만, 이 인간, 지구 나이와 이세계에서의 나이 합치면 30은 훌쩍 넘겼을 텐데, 동정을 떼지 못해서 그러나 아직도 중2병에 심취해서 나잇값도 못하고 싸돌아다닙니다. 아무튼 가해 학생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는데, 크리스티나는 알렉시아 왕녀와 비굴한 강강약약 엑스트라 여학생을 더해 3명이서 가해 학생을 처벌하고 그 뒷배인 13의 야검의 만행을 까발리려 합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주인공은 그런 그녀들에게 대놓고 힌트를 주며 즐기는 여전히 잡몹 위치를 고수중으로 이놈이 진지할 때는 어둠이라는 중2병이 충만할 때뿐이죠.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13의 야검(13명이 주축이라 해서 13의 야검인 듯)은 차례대로 죽어 나가고, 그때마다 니들이 저지른 거 아니냐고 크리스티나 일행은 누명을 써가고, 그럴 때마다 굴하지 않고, 이젠 본연의 임무는 어디 가고 13의 야검 살해 사건이라는 범죄 사건이 되어 진실을 파헤치는 명탐정물이 되어 갑니다. 이 작품은 진지하게 읽으면 손해죠. 이 과정에서 명탐정 코x등 온갖 패러디가 난무해서 읽는 사람을 아연실색케 하는 건 덤이고요. 애초에 섀도우 가든(어느새 구성원이 700명 돌파했음)이 암약 중이고, '어둠'의 단어가 들어가면 좋다고 발발이처럼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주인공이 있고, 이들의 실력은 이세계 먼치킨 계보를 철저히 따르고 있어서 아무도 상대할 수 있는 범죄자들이 없어요. 그보다 그들이 보여주는 희극에 초점을 맞춰 그냥 즐기는 연극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죠. 머리에 든 건 없지만 착하고 예의 바른 '델타'라든지, 곱게 자랐을 왕녀가 시궁창을 기어가며 범죄자 아지트를 찾아가는 장면 등 이번 6권은 꽤 유쾌한 장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물도 있는데요. 공작가에서 태어났지만 권력은 없는 크리스티나가 힘을 원해서 주인공을 동경해가는 장면들, 정의를 주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을 벗어나 범죄자를 단죄하는 꿈을 꿔가는 게 흥미롭죠.

이번 6권에서 눈여겨볼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4권까지였나 은근히 분량이 많았던 오리아나 왕녀는 의지를 갖고 디아블로스 재단과 맞서기로 했지만 가시밭길을 예고합니다. 알렉시아 왕녀(1권에서 주인공에게 벌칙 고백받음)는 주인공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연장선으로 주인공을 지켜준답시고 크리스티나가 주최한 합숙에 끼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귀엽죠. 섀도우 가든은 날로 사업이 번창해서 떼돈을 벌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그녀들이 나라 안팎 진짜로 유명한 장사꾼인 줄 아직도 모르고 있죠. 그런 주제에 돈과 재물을 받아 챙기는 기동 서방질을 충실히 수행 중이고요. 이번 6권에서는 딴짓한다고 주인공의 분량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물론 겉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이야기는 크리스티나와 알렉시아 왕녀에 의해 진행이 되죠. 13의 야검은 이번 5권을 위해서 급조한 티가 좀 납니다. 그래도 주인공을 위한 잡몹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으니 불만은 없습니다. 덕분에 좋은 그림(표현은 텍스트로 되어 있지만,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서)도 볼 수 있었고요. 그리고 4권에서 베타가 지구에서 주워온 '니시노 아카네'의 행적이 드디어 밝혀집니다. 애니메이션 1화에서 등장한 히로인으로 그동안 뭐하나 했더니,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 언급은 힘들지만 이세계에서도 고생하며 살아가려나 봅니다.

맺으며: 이번 회차에서 눈여겨볼 인물을 꼽으라면 크리스티나입니다. 나라를 뒤에서 조종하고 범죄를 저질러가는 악당 귀족들을 어떻게 하고 싶은데 막을 힘이 없어 고뇌하고, 누군가에 의해(?) 그런 귀족들이 죽어 나가자 희열을 느끼는 변태 같은 모습도 보이는 게 흥미롭죠. 결국 힘이란 정도의 길을 걸어선 얻을 수 없고, 주인공처럼 사도의 길을 걸어야만 비로소 쟁취할 수 있다는 약간은 삐뚤어지게 되는, 결국 5권에서 자기가 살기 위해 다른 학생을 희생 시킨 가해 학생도 정도의 길로는 처단할 수 없다는 걸 알아 가게 되죠. 어쩌면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캐릭터는 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이번 6권에서 필자에게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였군요. 아무튼 13의 야검이라는 급조티 나는 범죄 조직을 만들고 주인공을 메인으로 삼았지만 메인 같지 않게 크리스티나 일행으로 이야기를 꾸려 갑니다. 거기에 머리에 든 건 없지만 착하고 예의 바른 델타의 과거 얘기를 외전으로 넣어 놨고요. 다른 섀도우 가든 그녀들도 하나같이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델타는 좀 더 처절한 가정사를 보여주는 게 인상적입니다. 그녀가 왜 이상한 존댓말을 하게 되었는지 나오죠. 그리고 니시노 아카네의 이야기도 외전으로 들어가 있는데요. 주인공에 대해 뭔가 착각하고 있어서 둘이 만났을 때 인식 차이에 따른 개그가 기대된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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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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