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그저 자신의 영지를 지키고 싶었던 티글은 이제 구국의 영웅이 된 것과 동시에 둘도 없는 악이 되어 있었습니다. 티글은 산골짜기 조그마한 지방 영지 알자스를 다스리는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에서 평범하게 자랐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영지와 백작의 지위를 이어받아 그저 주어진 환경에 욕심을 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줄기 때문에 일어난 이웃 지스터트와 전쟁에서 적으로 엘렌을 만난 게 어쩌면 티글에게는 불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국가전복을 시도했던 테나르디에와 가늘롱을 제압하고, 남쪽에서 침입 해오던 무오지넬 대군을 무찌르고, 왕녀 레긴을 왕도로 무사히 인도하여 구국의 영웅으로 등극한 '티글'은 지스터트 왕의 밀명을 받아 '아스발'에 내전에 개입하여 무사히 해결하고, 귀환하다가 사고로 기억을 잃는 등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과도 같은 사람을 잃었고, 마지막 불꽃을 휘날리며 산화하는 가슴 아픈 장면도 보았습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지금은 서쪽에 위치한 작슈타인의 대규모 침공을 막아서고 있는 중...


티글과 엘렌이 이끄는 월광의 기사단은 남쪽으로 침입한 작슈타인 3만 대군을 힘겹게 무찌르고 왕도로 개선하였습니다. 하지만 왕도에 도착한 티글과 엘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왕권을 둘러싼 중상모략이었습니다. 대대로 여제(女帝)를 인정하지 않는 귀족들은 남편이 억울하게 비명횡사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멜리장드(테나르디에 와이프이자 레긴의 사촌 언니)를 중심으로 반란을 꿈꾸고, 티글과 재회한 레긴은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에 그들에게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재회의 기쁨을 나누지 못하는 처참한 현실을 직시합니다.


한낱 지방 영주에 지나지 않는 백작 찌그레기 같은 인간이 구국의 영웅이 된 것에 못 마땅한 인간이 넘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거기에 여제를 인정하지 않는 귀족들에 의해 레긴은 가짜 왕이라 불리고 있는 상황, 이런 이면엔 자신의 입지와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받지 않을까 하는 전전긍긍은 악의가 있었고 이런 악의는 비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영웅은 공적(功績)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자신은 뒤안길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제 온갖 험악한 말이 난무하는 왕궁에서 티글은 자신과 레긴에게 던져지는 비수를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한편 사샤의 사망으로 공석이 되었던 쌍검의 용구 '황염'의 발그렌의 주인으로 '피그네리아(표지모델)'가 선택되어 지스터트 왕도에 찾아옵니다. 방년 25세, 22세에 요절한 사샤보다 3살이나 많습니다. 이럴 적부터 용병으로서 전장에 몸담으며 뼛속까지 용병 기질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나이에 걸맞게(1) 깊이 생각하지 않는 현실만을 직시하여 용구가 자신을 선택한 것에 의문을 표하는 등 좀 산만한 느낌을 줘서 그동안 필자가 대충 예상했던 과묵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군요. 그리고 4권 표지 사샤의 모습과 똑같이 그녀도 뒤로 돌아 있는 모습에서 그녀(피그네리아)도 단명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안겨주고 있는데요.


사샤는 엘렌에게 있어서 바나디스 스승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사샤가 다스리던 영지의 사람들도 엘렌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피그네리아는 과거 엘렌에게 있어서 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을 전장에서 적으로 만나 싸웠고 그 결과 피그네리아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그 일로 엘렌이 몸담고 있었던 용병단은 해체, 그길로 엘렌은 1~2년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엘렌에게 있어서 피그네리아는 가족을 부순 원수와도 같은 존재로 발렌티나와 더블어 최악의 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생겨 버렸습니다.


다시 티글 이야기로 가서, 결국 멜리장드를 위시한 일단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레긴을 폐위하고 멜리장드를 왕위(여제는 안 된다고 하면서)에 올려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귀족들의 반란에 죽었다고 여겨진 가늘롱까지 가세하며 왕궁은 피바람이 몰아칩니다. 간신히 몸을 피하는 레긴의 앞에 멜리장드가 가로막으며 일촉즉발의 위기가 찾아오고, 티글은 결사적으로 그녀를 지켜 나갑니다.


그 와중에 서쪽에서는 작슈타인의 본대 4만 대군이 브륀의 왕도로 진격을 시작 하였습니다. 티글과 엘렌은 작슈타인의 4만 대군을 맞이하여 4만보다 적은 숫자로 격전을 펼치며 분전하면서 어찌어찌 전황을 꾸려가지만 아스발의 1만 대군이 적으로 가세하면서 단숨에 티글과 브륀에 일찍이 없었던 대위기가 찾아옵니다.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전황에서 필사적으로 지혜를 짜내어 싸워가는 티글과 엘렌...

 

뭐랄까 이번 12권은 쉬어가는 에피소드인줄 알았습니다. 보통 큰 사건을 치르면 다음 권은 쉬는 에피소드로 꾸며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쉴 틈이 없습니다. 브륀 내전을 평정하고 아스발에서 내전을 진압하고 기억을 잃어서 한동안 방황하고 무오지넬과 작슈타인을 맞이하여 대규모 전쟁을 치러 왔습니다. 거기에 바나디스와 연관이 있는 마물과의 싸움도 간간이 끼어들면서 피폐해져갈 만도 한데 티글은 그럴수록 빛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에겐 어깨를 나란히 할 동료와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혼자서 끙끙 앓지 않아도 되었다는 게 뭣보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무얼 할 거냐고 엘렌은 티글에게 물었습니다. 티글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레긴의 부탁으로 왕궁에 남길 희망합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좋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온통 적 밖에 없는 왕궁에 레긴을 혼자 내버려 두지 못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3년간 라이트메리츠에 머물기로 했던 약속을 2년 만에 깨긴 하였지만 엘렌은 그를 놔주기로 합니다. 공녀(바나디스)이기에 이성의 남자를 가까지 두지 못하는 엘렌의 마음은... 참 애달픈 상황입니다. 뭐 이들의 요망은 14권에서 이뤄지니 그때를 기약하기로 하고..


이번 12권을 요약하자면 치밀함을 들 수가 있습니다. 티글과 엘렌을 도와주는 척하며 적과 내통하여 전쟁을 부추겨 티글의 가지고 있는 활의 힘을 끌어 내려는 발렌티나의 안면몰수 뻔뻔함과 마찬가지로 티글이 가지고 있는 검은 활의 힘을 알아가고자 하는 마물, 그리고 부처님 손안에서 놀고 있는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추악한 권력 다툼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는 현실을 보는 거 같아 흥미진진합니다.


여담으로 티타는 마스코트가 되어 갑니다. 작가가 상당히 많이 띄워주는군요. 그런데 은근히 비중이 없어서 간신히 공기화는 면한... 


 

  1. 1, 엘렌, 류드밀라, 엘리자베타등 대부분의 바나디스는 어린 나이에 선택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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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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