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볼트 리더를 쓰러트린 주인공 '이그니스'는 레벨 4가 되었습니다. 보통의 모험가가 레벨 3에서 은퇴하는 것에 비춰볼 때 이그니스는 모험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게 되었는데요. 모험가 왕을 동경하여 모험가의 길에 들어선지도 어언 10년,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던 이그니스는 이제 슬슬 은퇴할까 했습니다. 하지만 노예로 팔려가던 실비아와 계약을 이루고 길드 접수원인 마르시아와도 계약을 이루면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결실을 맺은 그는 모험가로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여행을 준비합니다.


모험가인 이그니스에게 있어서 출발의 마을이나 같은 테레시아를 뒤로합니다. 마치 레벨업 하면 당연히 여행을 떠나야 된다는 것처럼, 느즈막에 모험가로서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된 이그니스는 10년이나 동고동락했던 마을 사람들과 쓸쓸하고 호쾌한 이별을 나누고 예전부터 왕도에서 인연을 맺었던 알프 파티이야기했던 광산 마을 리스턴부르그로 향합니다. 이때 마르시아는 수입이 안정적인 길드 접수원을 그만두고 고생길이 훤한 모험가(레벨 1)가 되어 이그니스의 동료로 파티에 참여 하면서 이제야 주인공에게 정식 파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리스턴부르그에 도착한 이그니스 파티에게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신입 환영회라고 해야 할지 마르시아에게 홀딱 반한 호인족(호랑이) 남정네가 찝쩍거리는 등 다사다난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광석을 캐는 던전에서 새로운 마물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여왕(몹)을 쓰러트리기 위해 대규모 원정이 꾸려지는 등 판타지에 걸맞은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그 과정에서 생과 사를 느끼며 살아 있는 것에 축복을, 죽은 자에게 기도를 같은 조금은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왕도부터 몇 달이나 알고 지내오던 알프 파티와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리스턴부르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였습니다. 새로운 마을에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것처럼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니라는 것처럼 겸손을 보이는 이그니스, 전투에 있어서도 갑자기 손에 넣은 힘을 과시하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이런 모든 것이 판타지의 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죽은 자에게 예를 표하고, 모두와 협조를 이뤄내는 주인공 이그니스에게서 모험가로서 관록이 보였습니다.


흔히 이고깽이라는 요소는 이 작품에는 없습니다. 이그니스가 손에 넣은 정령의 힘은 만능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향해주는 정령의 힘은 쓰고 나면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는, 쓰고 나면 틈이 보여버리는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얼핏 여왕(몹)과의 처절한 전투에서 빛을 볼 거 같았던 그 힘은 공략집단이 붕괴할뻔하였던 최후의 순간에 돌파구로만 작용했을 뿐입니다. 이 정도로만 놓고 봐도 먼치킨이 아닐까도 했지만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쓸 수 없었으니 절대 먼치킨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드워프와 술독에 빠져 보기도 하고, 젊은 호인족에게 마르시아를 내놓으라며 시비를 받기도 하고 그러다 친구가 되는, 한때 같은 모험가로서 우정을 나눴던 친구와 이별을 하고, 새로운 인연을 쌓았다고 여겼던 알프 파티와도 시원스러울 만큼 이별을 하였고, 리스턴부르그에서는 또다시 새로운 만남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그니스는 다시 여행을 꿈꿉니다. 하지만 이것은 쓸쓸한 여행이 아닌 그의 곁에는 언제나 실비아와 마르시아가 함께라서 쓸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야기를 처음으로 다시 돌리자면, 기승전결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우선 마르시아와의 관계를 질질 끌지 않고 그날 밤 바로 속전속결로 일(?)을 치러 버리는군요. 일단 노예 신분으로서 말할 위치는 아니지만 실비아는 그런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랫동안 노예로 살아와서 그런지 표현이 서툰 그녀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인간의 온기를 찾아 이그니스의 품을 한없이 파고듭니다. 하지만 흑기사의 몸통에 들어가서 활약하는 그녀의 실력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이런 만남이 오래갈 수 있을까 하는 미묘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실비아와 마르시아는 장수하는 엘프라는 것, 이그니스가 10년 전 처음으로 모험가의 길을 들어섰을 때 마르시아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앞으로 10년 후 과연 이들은 지금과 같이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 뭐 이건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요. 여튼 갑작스러운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면서 가슴 아려오는 장면이 간간이 숨어 있습니다. 한가지 아쉬웠던 건 실비아와 마르시아가 이런 점을 느끼고 고민하는 장면을 넣어 줬더라면 좀 더 애잔했을지 않을까 하는 것이군요. 


이제 와 이런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필력은 그다지 좋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이고깽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처음 몇 장 넘기고 바로 도서를 덮을 만큼 잔잔한 일상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고깽에 지친 독자라면 괜찮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진짜 판타지라며 반길 수도 있고...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57)
라노벨 리뷰 (899)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9)
기타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