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배신당해서 오르크스 대미궁 나락으로 떨어졌던 나구모 하지메, 거기서 자기를 죽이려는 마물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를 깨닫고 '너희들이 나를 부정한다면 나도 너희들을 부정해주겠다'라며 악귀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길을 막고 해치려고 한다면 그게 누가 되었든 다 죽이겠다며 씩씩거리다가 던전 귀퉁이에서 300년이나 봉인되어 있었던 '유에'를 동반자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던전 밑바닥까지 도착한 이들은 그곳에서 7대 미궁중 하나인 '오르크스 대미궁'을 설계한 '오스카 오르크스'가 남긴 족적을 통해서 하지메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단서를 잡고 남은 6개 미궁을 클리어하기 위해 유에와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네 개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첫번째가 새로운 캐릭터 '시아'(표지)인데요. 그녀는 '하루체나 수해'에 모여 살고 있는 아인족​(1)중 토끼족으로서 격세유전(마물에게만 있는 마력 보유와 마력 조작이라는 고유 마법)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아인족은 이런 마물에게만 있는 고유 마법을 불길하다 여겨 배척하고 있었고, 토끼족은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던 시아를 숨겨 키워 왔더랬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아인족 장로들에게 들켜 토끼족은 야반도주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토끼족 3/4이 인간들에게 잡혀가거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남은 부족(토끼족)을 지키기 위해 시아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하지메를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 되는데요. 다짜고짜 하지메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게 상당히 웃겨주지만 사실 이 부분에서 시아가 가진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을 겁니다. 자기 때문에 부족이 거의 멸절 하였으니까요. 이런 자신이 뭔가를 해야된다는 필사적인 마음 때문에 하지메에게 두둘겨 맞으면서도 그의 바짓가랑이를 놓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만...


사실 시아가 버틸 수 있었던 특유의 능청함과 뻔뻔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론 가족(토끼족)의 보살핌도 있었지만, 매사가 긍정적이고 남의 말을 가벼이 흘리고 뻔뻔하게 달라붙은 좋게 말하면 친화력 상당히 높은 캐릭터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필자는 그녀의 성격은 표면적일 뿐이고 이면에 감춰진 그녀의 본모습은 상당히 여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자신의 일 이외엔 관심이 없던 하지메가 이런 뻔뻔함으로 똘똘 뭉친 시아의 부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 했던 것도 이런 뻔뻔함과 이면에 감춰진 아픔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하지메가 어쩔 수 없이 토끼족을 도와주는 대목에서는 악귀가 되었다곤 해도 근본은 어쩔 수 없이 남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착한 애라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두번째로는 코우키를 위시한 하지메의 옛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어느새 오르크스 대미궁 90층까지 내려갈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세계로 소환되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이들도 그럭저럭 용사에 걸맞은 실력을 쌓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이고깽이라고해도 판타지성 용사물이 정도의 길을 간다면 이런 식이다.라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는 것이군요. 물론 전부 다 그런 건 아니다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클래스 모두가 이세계로 소환되었고 이중에 상당수는 히키코모리가 되어 있는 대목에서는 이고깽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거 같아 씁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지메를 나락으로 떨군 원인으로 작용한 카오리는 클래스에서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행동으로 기인하는 잘못을 전혀 인지 못한 채, 자신이 하지메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뒤늦게 깨닫고는 전날 그에게 했던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괴로운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녀를 몰아붙였는지도 모릅니다. 마을 변두리에서 잡 몹을 상대로 자신의 몸을 혹사 시켜가며 훈련에 매진 중인 그녀가 안타깝다면 안타깝고 말암이라면 발암으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하지메가 죽었을 거라 여기지만 그녀만은 반드시 살아 있을 거라 믿고 있는 부분에서 다음 하지메를 만나게 되었을 때 또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 기대와 우려가 됩니다.


그런데 하지메의 무쌍만 보다가 코우키와 그의 친구들 에피소드에 들어가니 괴리감 같은 색다른 맛이 났습니다. 하지메가 나락 100층(미궁 100 포함하면 도합 200층)을 클리어하면서 삶은 계란 으깨듯 몬스터를 죽여가는 그에게 익숙해져 있다가, 미궁 90층과  마을 근처의 몬스터에 쩔쩔매는 카오리의 모습에서 오는 괴리감은 상당히 흥미로웠군요. 그래서 하지메와 친구들이 조우했을 때 파워 밸런스 괴리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매우 크지 않을까 합니다. 비록 이런 유는 방패 용사라던가 여타 작품에서도 있는 클리셰이긴 합니다만... 그건 그렇고 코우키 전신 일러스트는 분위기를 읽는 건지 못 읽는 건지 애매하더군요.


세번째로는 오르크스 대미궁을 클리어 한 하지메가 두번째 대미궁인 라이센에 도전하면서 치르는 전투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하지메의 무쌍에 맞춰져 있어서인지 '아직은' 상대가 얼마나 강하든 어렵지 않게 클리어하는지라 라이센 대미궁 보스전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어딘가 밋밋함을 동반합니다. 파워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듯한... 그래도 하지메 파티에 참여한 '시아'의 폭풍 성장과 거대한 망치를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괴력하며 그녀 특유의 능청함이 더해져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하지메에 의해 종종 미사일이 되어 날아가기도 하고요.


사실 시아는 특이점으로 인해 아인족 장로들의 결정으로 시아를 비롯해 토끼족 전부가 사형에 처해질뻔하였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족 모두가 야반도주하였지만 인간들에게 3/4이라는 동족을 잃어버렸습니다. 자신 때문에, 거기에 같은 아인족에게도 버림받았습니다. 사실 발랄하고 뻔뻔한 시아 덕분에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지만 시리어스가 따로 없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그녀와 부족을 구해준 건 하지메, 하지메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같은 특이점으로서 동족들에게 배척을 당했다는 공통점은 시아로 하여금 하지메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게 하였고 지금은 동료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메는 문득 정신 차려보니 저거 뭐야 같은 기분...


네번째는 꿈틀거리는 어둠과 진정한 용사의 첫걸음입니다. 이 직품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라고 하듯이 라이센 대미궁 끄트머리에서 결국 하지메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걷지 않으면 안 되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하지메의 옛 친구로 보이는 어떤 인물의 사도화가 시작되고, 카오리를 비롯한 하지메에게 운명적인 적대 세력이 생성되었습니다. 이것도 카오리가 등에 매단 나비  날갯짓으로 인한 태풍이 되어간다랄까요.


어쨌건 이번 2권은 상당히 흥미로운 게 많았습니다. 특히 시아가 보유한 격세유전으로 인한 에피소드는 배꼽 잡게 하기도 하고, 안타깝게 하기도 하고, 애잔하게도 합니다. 4차원 속에 살고 있는 시아의 덕분에 시종일관 밝게 진행이 되고, 유에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죽이 맞고, 아닌 척하면서도 시아에게 은근히 무기와 옷을 챙겨주는 하지메에게서 부드럽고 따뜻한 일면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엔 이름도 불러주지 않는 데다 죽자고 떼어내던 하지메와 유에였지만 어느새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잡아주는 등 동료로서 받아주는 장면은 흐뭇하게 하였군요. 


 

  1. 1, 토끼족, 곰족같은 수인을 전반으로한 종족
 
블로그 이미지

현석장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57)
라노벨 리뷰 (899)
일반 소설 (5)
만화(코믹) 리뷰&감상 (129)
기타 (19)